오른손잡이의 뒤늦은 깨달음
아앗...
왼손으로 물건을 들다 파앗하고 손목이 찌릿해지는 아픔에 들고 있던걸 거의 떨어뜨릴뻔했다.
요즘 통 왼손을 못 쓰겠다.
정확히 표현하면 엄지와 검지 사이를 잘 못 벌리겠고 좀 힘을 무리해서 주게 되면 손목 안쪽이 파앗하고 전기 오르듯이 아파온다. 물건을 잡거나 들을 때 이 두 손가락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미처 몰랐고 그 손가락 근육들이 손목까지 연결되어 같이 일한다는 걸 생각할 필요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어쨌든,
난 오른손잡이인데 문제가 생겨도 오른손이 먼저 생겨야 하는 거 아닌가?
뭐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해서 내 생활 습관을 살펴보기 시작했더니,
오른손잡이라 오른손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왼손이 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꺼낼 때도 오른손으로 먼저 잡긴 하지만
오른손은 다시 문을 닫거나 어떤 디테일한 일을 해야 하기에
그동안 그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어야 하는 건 왼손이었고,
오른손이 뭔가를 하는 동안 그걸 지탱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왼손의 몫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리더를 위해 자기 몫의 일을 수행해내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같이..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아 나는 내게 왼손 같은 역할을 해준 사람들의 고마움을 다 표현하며 살아온 걸까 내지는,
오른손 같은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고 안 힘들었겠어 무언가를 계속 진두 지휘해야 했을텐데. 라고도 생각을 해줘야 할 텐데, 왼손이 아프니 괜스레 왼손들의 수고를 대신해서 항변해주고 싶다. 다소 뜬금없이.
남편들, 와이프들의 헌신을 그대들이 아는지.
잘 나가는 사람들, 그만 못한 사람들의 눈물을 그대들이 아는지.
상사들, 아랫사람들의 수고를 그대들이 아는지.
오른손들, 니들이 왼손의 아픔을 아니.
.
.
.
그나저나 왼쪽 손목이 다시 아파온다.
아무래도 당분간 오른손이 좀 힘들어져야 할 것 같다, 왼손이 다시 괜찮아질 때 까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왼손에 무리가 안가게 신경 써줄걸..
@winefl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