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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Sep 05. 2015

와인,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그리움 한 자락

"넌 뭘 하면 전문가가 되는구나~ 대단해~"


얼마 전 카톡으로 한국에 사는 친구랑 오랜만에 얘길 나눴다. 내 중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창이기도 한 친구 L.

이 친구의 온 가족이 우리들 대학 다닐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상황이라 지금 이 친구는 결혼해서 한국에 살지만 그래도 미국에 자주 다녀가고 해서, 각자 사는 곳은 달라 아직까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져오는 친구인데,

  

내 샾은 잘 되는지 가족들은 어찌 지내는지부터 이런 저런 얘기하다

"참, oo 아, 나 와인 전문가 길 가고 있다고 말했었니. 와인이 너무 좋아 시작했다가 점점 더 좋아서 이젠 아예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버렸지, ㅎㅎ~"

"정말~ 어머 꽃이 좋다고 플라워 디자인 공부해서 결국은 미국 땅에서 꽃집까지 내더니 이제 와인 전문가까지? 야~ 넌 뭘 하면 전문가가 되는구나~ 대단해~"


카톡으로 얘기하고 있는 거였는데도 마치 친구가 곁에서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 잘했어! 하는 친구에게 히잉.. 그치.. 하면서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맘까지 드는 걸 보니 와인을 공부하면서 힘들긴 힘들었구나 싶기도다. 아직 원래 가고 싶은 길에 절반 정도나 갔나 싶은데도..  생각해보면, 와인도 생소했는데 그 생소한 와인에 대해서 영어로 배워야 하는 게 더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또 계속 공부해나갈 걸 생각하면 더더욱 쉽지 않을 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런데도 이길이 너무 좋으니 팔자가 있다면 운명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Destiny~?


이렇게  심장을 뛰게 하는 와인들,  피를 끓게하는 와인들을 많이 마셔보게 될수록 와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내겐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이십 년이 훌쩍 넘었고 아빠는 돌아가신지 어느새 십 년이 넘어가는데 물론 살면서도 가끔씩 생각나는 두 분이지만 와인을 대하면 대할수록 더 생각나는 두 분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셨고 평범한 그 시대 가장이셨고 아주 무뚝뚝하지도 아주 살갑지도 않은 그런 분이셨는데, 건장한 체구를 가지셨던 아버지가 어찌 보면 체구에 걸맞지 않게 "냄새"에 참 민감하셨다.


어 이거 무슨 냄새지? 하며 집안 여기저기 킁킁 냄새 맡고 다니시며 그리 악취도 아닌 그 무언가를 찾아내시곤 하시던 모습이 내 기억에 선하다. 에혀~ 아주 우리 집엔 뭐가 잠시라도 있을 수가 없어~ 라며 나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살짝 불만을 내비치던 엄마의 모습도 생각나고.


내가 아빠의 그런 성격이랄까 감각을 물려받아서 나도 냄새에 참 민감한 편이다. 어려서는 어땠는지 기억 안 나지만 대학시절에는 내 별난 냄새타령 때문에 친구들의 구박도 한몸에 받았었다.


"킁킁, 얘들아 이 까페 저쪽에 앉자 이쪽 무슨 냄새난다 누가 뭐 쏟았었나 봐, 다른 쪽으로 가자"

"아 냄새 참~ 잘 맡아~ 알았다 알았어 저쪽으로 가자"


그런가 하면 계절이 주는 냄새도 있었다.

특히 가을 냄새.

한국의 가을에는 냄새가 있었다.

지금 한국에 간다면 그 냄새가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얘들아 가을 냄새가 나. 정말 가을 됐나 봐"

"더운 거 지났으니 이제 가을 되는 거지 무슨 가을 냄새?"

ㅠㅠ


결혼 하고 나 남편에게 나는,


"무슨 냄새? 나는 안 나는데? 아 난다~ 우~ 완전 개코개코~"

이렇게 가끔은 냄새를 잘 맡는 경이의 대상이기도 했고,


"무슨 냄새가 난다 그래~ 아 진짜 예민해 예민해~"

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그랬듯, 혼자 투덜거리듯 불만을 살짝 내비칠  밖에 없는, 가끔은 성가심의 대상이기도 했었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냄새에 민감한 내 코 때문에 좀 기죽어야 하는 때도 더러 있었고, 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부다 하고 자책 아닌 자책을 해야 하는 때도 있었는데,


아. 이 와인을 공부하면서,

향을 냄새를 잘 맡고 잘 분별해내는 게,

예민한 나의 단점이 아니라 공부에 도움되는, 

아주 큰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될 줄이야.


와인 전문가로서의 길을 가는 지금은 내가 무슨 냄새가 난다 하면,

아 그래? 어디서 나지? 하면서

절대 부정적인 반응을 안 하는 남편을 보며 좀 웃기기도 하고, 

아흑, 이런 줄도 모르고 내 예민함을 탓했던 지난날이 억울(?) 하기도 하고.


와인 향을 맡고 그에 대해 얘기하고 그럴 때마다 나와 같은 억울(?)한 시간을 보내다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와인을 좀 더 일찍 시작했었거나 아니면 지금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많은 이들이 이해 못할 와인의 향에 대해 왠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 같고

이 와인 저 와인 맛보게 해 드렸을 것 같아서,

가끔 아버지가 생각난다, 와인을 대할 때마다.



외할머니


나의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 셨다. 딸 둘 밖에 없던 외할머니는 선생인 딸의 도움 요청으로 손주들을 가끔씩 돌봐주시다 아예 같이 사시며 우릴 돌봐주시는 게 전업이 되어버리셨었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유머러스하신 분이었고 옛날 얘기를 그렇게 잘 해주실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들은 콩쥐팥쥐 얘긴데도, 그리고 나이가 조금씩 더 드시면서 항상 다른 동화랑 섞이는 부분이 생겨났었어도, 우리는 항상 자기 전에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드는걸 아주 좋아했었다.


할머니는 또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신 분이셨다 손도 빠르셨고.

평범한 그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그닥 사근사근한 성격이 아니었던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가 만든 열무김치며 봄동김치며 칼국수며 드실 때 만큼은 항상 말씀하셨었다. 이런 맛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사먹는 맛이라고.

그러면 또 사람 좋은 우리 할머니는 아버지가 맛있다고 했던 반찬이나 음식은 기억하셨다가 꼭 다시 해주시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이 자주 생각나는 건지 난 지금도 가장 그리운 게 할머니의 봄동 김치(할머니는 하루나 라고 하셨는데 그게 내 생각엔 지금의 봄동 같다..)랑 두부찌개. 가끔 할머니가 해줬던 두부찌개가 생각날 때마다 지금까지 아무리 온갖 다른 레써피로 시도해봤지만 절대 한 번도 할머니의 그 맛을 내보질 못했다..


이렇게 음식 솜씨 좋았던 우리 할머니가 가끔 김치를 담그실때면 마지막엔 항상 우리를 하나씩 부르시곤 했다. 늙으니까 간을 모르겠다고 하시며.

"큰애야~ (우리 언니)"

"o o 아~ (이건 나)"

"ㅁㅁ 아~ (이건 내 여동생)"

뭐 막내는 좀 어렸어서 그다지 맛 판정단에 낀 적이 많지 않았고.


우리가 좀 짜다든지 싱겁다던지 하는 하나의 의견에 모아질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각각 의견이 분분할 때도 있었다. 할머니 좀 짠데? 할머니 난 좀 싱거운데? 이러면서 의견이 갈리면 할머닌 항상 내 편을 들어주셨었다.

"넌 짜고 넌 싱거워? 어쩌냐 그럼? 에이~ oo 이가 간을 잘 보더라. oo 이가 싱겁다니 싱거운 걸로 할란다~"

이러면서 소금이나 젓갈을 더 넣으시곤 하셨었다. 우리 언니는 기억 못하는 이 장면들이 나는 생생한걸 보면 날 믿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에 내가 많이 기뻤었는지도 모르겠다.


와인을 공부하면서 맛을 보고 얘기해야 하는 때가 종종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텐데, 가끔은 이 맛. 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내가 느끼는  .이 맞는 건지 살짝 자신감이 없을 때가 있다. 특히나 이 와인 업계에서 오래도록 일해온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한 맛을 그래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힘은 내 입맛을 믿어 주셨던 할머니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날 믿어서라기보다 음식 잘 하셨던 할머니가 날 믿어주셨었다는 나의 아주 저 깊은 곳에 있는 아주 작은 기억이 나에게 이렇게 큰 힘을 줄 줄은 정말 몰랐었다.


할머니에게 맛난 음식을 많이 얻어먹고 자라서인지 지금도 나는 음식에 호기심이 많고 음식에 편견이 거의 없다. 처음 보는 음식은 먹어봐야 하고 가끔은 그 음식을 먹어보러 가는 혹은 그 재료를 사러가는 먼 길이 너무나도 가슴 뛰게 즐겁다. 흔히 볼 수 없는 버섯들 채소들 치즈들을 보는 것도 글로 읽는 것도 너무 기쁘고 알게 되는 게 너무 재밌다.


좋은 와인을 벼르고 벼르다가 사는 것, 신선한 재료를 한국의 장터 같은 이곳 farmer's market 에서 사는 것, 훌륭한 직업의식과 기술을 가진 쉐프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맛보는 것,

비싼 명품들에도 고가의 보석들에도 그닥 큰 관심이 없는 나의 유일한 사치. 고 유일한 소비생활.이다.


.

.

아버지에게 냄새에 예민한 코를 물려받았고

할머니에게 맛을 아는 미각을 선물 받았다.

와인을 공부하면서 이 선물들이 너무 귀하다.

두 분 다 지금 계셨으면 더 맛있는걸 서로 기뻐하며 나눌 수 있었을텐데..



와인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할머니를 만난다.




꽃집 언니의 티타임 매거진


와인 plus 매거진


웨딩 플라워 plus 매거진


작가 Jamie:

플라워샾 오너 in California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AIFD) member,

AIFD Certified floral design judge/evaluator,

&

Wine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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