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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Sep 14. 2015

내게 아픈 건 남에게도 아프다

며칠 전 무한도전에서 일본 하시마 섬 이야기를 접했다.

일제 점령기에 한국에서 징집되어 타국의 노동 착취 현장에 내던져졌던 어린 소년들의 이야기.


좁은 갱도를 따라 들어가며 채굴을 하려면 몸집이 작아야했기에 일본은 어린 소년들을 끌고갔고, 도망쳐나올 수도 없던 감옥과 같은 섬에서 어린 그 아이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면서, 여름도 겨울도  뜨거운 더위 속에서 거의 하루 종일 노동해야했고, 식사랍시고 배급해 주었던 무슨 콩찌꺼기 비슷한 것 조차도 많이 주질않아 늘 너무나 배가 고팠었다고 증언하시던  80세 90세 된 생존자 할아버지들. 얼마나 엄마가 보고싶고 매일매일이 무서웠을까.


해맑기만해야 할 10대 소년의 시간을, 밝고 아름다와야 했던 20대 30대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조차 모르고, 어두운 탄광굴에서 그저 살아있으니 살아있어야 했었을 분들. 지금은 대부분의 이들이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채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일본이란 나라의 잔인함에 대한 분노도 참을 수 없지만,  자국민을 지켜내지 못하고 마치 승냥이떼에게 자기 형제 디밀어 던져주며, 옜다 이거 먹고 나한테만은 덤비지말아라 한  같은 그당시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더 참을 수 없다. 아무리 일본 점령기였다해도.


배고픔은, 고통은, 힘있는 ‘그들’만 느낄 줄 아는 것이고, 힘없어서 던져지는 대로 던져져야 했던 그 어린 ‘소년’들은 못 느끼는 거라고 아니 느껴져도 내가 고통스러운거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얼마 전 내 샾에 하수구가 역류하는 문제가 생겼었다.


내 샾 옆 가게는 이 지역에 여러 군데 분점을 낼 정도로 유명한 레스토랑인데 이집  하수 시스템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바로 옆인 내 샾까지 각종 오물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곳 주방에서 버려진 오물에 화장실 오물들까지 다 역류하게 되면서 그쪽도 내 가게도 냄새에 오물에 아주 큰 난리가 났었다.  


건물 관리인들이며 기술자들이 다 도착해서 문제가 일단락될 때까지, 그쪽 가게도 내 가게도 어쨌든 모두 퍼낼꺼 퍼내고 닦을꺼 닦아내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옆 가게 미국인 오너가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 가게를 들여다보며 입구에 서서 한단 말이,


“어우~ 넌 여기 어떻게 있는거야. 그냥 ‘쟤들’보고 하라하고 넌 나와 있어. 냄새가 어우~  It makes me sick!”


그 말을 하고있는 그 오너 뒷편에선, 그를 sick 하게 하는 그 똑같은 냄새를 맡아가며 그의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오물들을 걷어내고 있는 멕시컨 아저씨들의 모습이 보였다.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컨 분들의 모습은 많은 경우에 신 노예계급이나 다름없다. 힘든 일 마다안해야하고 더러운 마다안해야하는.


그 미국인 오너에게 ‘쟤들’은, 어떤 냄새를 맡아도 역겹지않고 더러운 오물이 닿아도 상관없는 그런 류의 ‘쟤들’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아니면 ‘나’는 역겨우면 안되지만 ‘쟤들’은 내 돈받고 일하는 애들이니까 똥물을 뒤집어쓰건 하수물을 뒤집어쓰건 일말의 미안함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얼마 전 이곳 한국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가 보게 된 장면이다.


라면 제품, 면제품들을 파는 통로였는데, 못되게 생긴 한국인 종업원이 한국말로 짜증을 내며 같이 일하는 히스패닉 종업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그거말고 oo 라면 갖다노라고!”


그 옆에 섰던 그 사람은 이게 뭘 하라는 건지 몰라 두려운 얼굴 가득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가만 보아하니 둘다 영어가 안되는 사람들인데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을 이 한국인은 그런 그에게  무작정 한국말로 소릴 지르며 그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내가 카트를 밀고가며 그와 눈이 잠깐 마주쳤을때 내가 oo 라면을 가르키며 손짓을 해보였다.  그가 내 말을 알아듣고 얼른 저 상황을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30초이건 1분이건 사람이 사람을 두렵고 무섭게 만드는것도 학대다. 그 한국인도 반대입장에서 가령 못된 미국인이 알아듣지 못할 영어로 화를 내며 소리 질렀으면  잠시라도 두려웠을거면서, 오히려 이 미국 땅에서 외국인의 삶을 살고있으니 더 이해할 만한 자가 더 가해를 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을 돌아보면 이런 힘없는 자의 억울함과 힘있는 자의 무자비함의 이야기는 끝도 없다.


과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도, 과거 우리나라 역사속 하인들 백성들의 이야기도,


또한 지금을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급 제도인,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야기도,


하다 못해 작은 개인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도 결국은,


남도 나처럼 아플 수 있다는 걸 망각하거나 일부러 아프게 하고자하는 무자비함에서 시작된다.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프고, 내가 목이 마르면 남도 목이 마르고, 내 육신이 지치면 남의 육신도 지칠수 있으며,


내 살에 아픈건 남에 살에도 아프고, 내 맘에 아픈건 남의 맘에도 아프고, 내게 참혹한 상황은 남에게도 참혹한 상황인 것인데.


‘나한텐 아프니 니가 해라’  라는 무자비함이 혹은 ‘나 아파봤으니 너 안아픈 꼴 못본다’ 라는 적개심이, 작게는 가정을 병들게하고 크게는 사회를 나라를 병들게하는 것같다.


우리가 동화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니, 어떤 식으로든 힘든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힘든 고생을 누군가는 해야한다면,


차라리 ‘10’이라는 고통을 서로 모두 나눠서 ‘0.15’의 고통으로 다같이 아프다면 좀 낫지않을까. 힘없는 누군가에게 그 ‘10’의 고통을 다 떠 넘기고 힘있는 나머지들은 아무 일 없는 양 웃고 살지말고 말이다. 우리는 다 똑같이 목마를수있고 아픈걸 느낄 수 있는 ‘사람’ 들인데.


 

내게 아픈건 남에게도 아프다.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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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amie:

플라워 샾 오너 in California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AIFD) member

Certified floral design judge/evaluator

&

Wine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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