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e Sep 19. 2015

트리플 A형도 꽃집을 한다

Yes, We're Open!

혈액형에 관련된 웃픈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다.


오래전에 들은 것 중에 가령 이런 이야기..


O형, B형, AB형, A형 혈액형의 사람들이 다 같은 방에 있었다.

갑자기 B형이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하니 방을 뛰어나가버렸다.

그러자 O형이 어 쟤 왜 저러지? 무슨 일인가 알아봐야겠다! 하며 달려 나갔고,

이를 본 AB형은 왜 저래.. 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하던 일을  계속했다.

A형은 이때 조용히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혹시 뭐.. 불편하게.. 해서 쟤들이 나간 건.. 아닌가..


이 얘길 들으며 그때 정말 한참을 웃었었다. 그러면서도 A형에 대해 살짝 애잔해지는 마음이란..


A형 중에도 A형 같지 않은 A형들이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A형들은 일상이 늘 조심이다.

혹시 이럴지 모르니까 이건 좀 조심하고 혹시 저럴지 모르니까 저것도 좀 조심하고

아 그러다가 내가 너무 조심하는 게 다른 사람을 조심하게 할 수도 있으니 그 사람이 조심하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더 조심하고.. ㅎㅎ~


내 초등 중등 시절,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셨기에 우리들 학교 행사에 잘 참석하지 못하셨었다. 운동회라든가 경연대회, 학급 내지는 학년 행사에도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도시락도 싸오고 그러는데 난 항상 엄마가 아닌 누군가가 오거나 아무도 오지 않거나 해야 했던 게 참 창피하고 싫었었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도 난 항상 '이담에 결혼하면 애들이 다 클 때까진 정말 애들하고만 있을꺼야' 되뇌곤 했는데, 그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딱히 능력이 없어서 아무도 내게 '제발 와서 이 일을 해달라!' 절규하지 않았기에, 결혼하고나서 의도했던것 보다도 더 애들만 기르면서 있게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래도 애들을 기르며 맘속에 이런 기도를 늘 했었다. 애들이 자란 언젠가가 되면, 그땐 내가 너무 좋아서 가슴 뛰면서 하는 일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대학 졸업하고 내가 했던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말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어떤 일.


그 후 애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난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하는 일을 찾았고, 그렇게 플라워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웨딩 일을 시작했고 내 플라워샾까지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하필이면 그렇게 일생 가장 과감한 실행을 하려 했을 때가 미국 경기가 아주 바닥을 친 때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알게 된 플로리스트 친구들이 많이 말렸었다. 꽃집 운영하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 거라고.. 오너가 장난인 줄 아냐고.. 그냥 프리랜서만 계속하는게 훨씬 낫다고..


사람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게 결정적일 때 참 맞는 말이다. 모두 다 부정적 예견으로 날 압박하고 있을 때, 넌 잘할꺼야 해! 하면서 힘을 준 플로리스트 친구들과 울 남편 그리고 내 아이들의 말에만 내 귀를 열고 난 과감히 빌딩 리스에 싸인을 했었다.


플라워샾도 모든 사람을 상대로 해야 하는 소매업이다 보니, 손님을 상대하려면 또 가게를 계속 돌아가게 하려면, 움츠려선 안 되는 진취적인 O 형도 돼야 했고, 온몸이 너무 힘들어도 끝까지 묵묵히 일을 해내야 하는 AB형이 돼야 하기도 했고, 늘 좀 더 나은 플라워샾을 만들기 위해 기발하고 창조적인 발상을 계속 해내야 하는 B형이 돼야 하기도 했으며, 그런가 하면 하나하나 일들을 세세히 살피며 꼼꼼히 검토하는 A 형 본연의 일을 한건 외려 내겐 너무나 쉽고 내츄럴한 일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시작한 내 꽃집이 어느새 수년의 시간이 흘러 리스를 재계약하는 시간이 됐다.


아침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어제 문 닫으면서 표시했던 "Closed" 싸인을  "Open"으로 바꿔 주는 일.


몇 년째 같은 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항상 감사하다. 내가 '오픈'할 수 있는 내 가게가 있고 아직도 내가 이 일을 가슴 뛰며 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까지 이렇게 기뻐하며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오늘 즐겁고 지금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 난 이 일을 몇년 더 하기위해 리스 재계약을 하려고한다.


A형 중에서도 그야말로 트리플 A형인 내가 플라워샾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젠 내가 무슨 혈액형이었는지 가끔씩 내 혈액형 정체성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ㅎ



꽃집 언니의 티타임 매거진


와인 plus 매거진


웨딩 플라워 plus 매거진


작가 Jamie: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AIFD) member

Certified floral design evaluator/judge

&

Wine specialist

매거진의 이전글 90세 할머니는 어디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