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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holism Dec 02. 2023

살이 달콤한 대하 시즌, 녹진한 샤르도네

와인이 필요한 모든 순간


대하 구이와 어울리는 와인

아버지는 사시사철을 제철 음식으로 사시는 분입니다. 당신이 프로페셔널 농부여서 더 그러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꽤나 유난스러운 집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레 봄에는 두릅, 새조개, 멍게 비빔밥을 먹어야하고, 여름에는 농어회와 온갖 제철 과일을 먹어야하며, 가을 초입 송이버섯과 무르익은 가을의 대하구이 없이 가을을 보냈다 할 수 없고, 대방어를 여러 마리 잡아야 겨울을 제대로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랐죠.


며칠 전 친정 호출을 받고 끝물 대하구이를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여름부터 바쁘게 살아온 일정 때문에 자칫 대하 철을 놓칠 뻔 했는데 막차라도 탔으니 그래도 제대로 가을을 보내긴 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와인을 그리 즐기시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와인 일을 하다보니 암묵적으로 반주 준비는 제 몫이 되었네요. 지금은 대하에 어울리는 와인을 무의식 중에도 집어낼 수 있지만, 아직 와인을 좋아만 하던 시절에는 그게 참 어려웠어요. 그 때는 지금 함께 일하는 대표님이 와인을 골라주셨었죠. 새우가 해산물이니 화이트 와인이면 되겠지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며칠 전 제가 선택한 와인은 모 부회장님 와인으로 유명한, 미국 산타 리타 힐스의 샤르도네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화이트 와인 포도

화이트 와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품종을 꼽으라면, 단연 첫 번째로 꼽힐만한 품종이 ‘샤르도네' (chardonnay-미국식으로는 ‘샤도네이’라고 읽어요)입니다. 미국에서는 레드, 화이트 등 모든 와인 가운데 소비량 1위를 기록하는 품종이기도 하죠. 미리 고백하자면, 저는 이 품종 와인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항상 대하 시즌에는 꼭 샤르도네를 찾게 되어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세상 모든 샤르도네와 대하구이가 잘 맞는건 아니니 글을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와인 안주를 찾는 방법


와인 수업을 듣는 분들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수업에서 다루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소개할 때죠. 와인을 즐기는 분들 중 99%는 식도락이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입니다.(1%의 예외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죠.) 그런 분들께 함께 페어링하면 배가되는 조합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죠.


와인에는 스테이크, 치즈나 샤퀴테리만 곁들여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페어링 원리를 잘 이해하고 적용하면 내가 일상에서 즐기는 음식이 훌륭한 와인안주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페어링은 고려할 요소가 꽤나 복잡해 서로를 상승시키는 조합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두루 적용해볼 수 있으니, 세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끼리끼리

와인과 음식은 비슷한 것끼리 매칭합니다. 달콤한 케이크는 단 맛 없는 드라이한 와인이 아니라, 스위트한 와인과 더 잘 어울립니다(디저트엔 아메리카노가 잘 어울리니 드라이 와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신다면, 꼭 한 번 실험해보시길 추천해요. 쓴 맛이 매우 도드라집니다 후후.) 새콤한 맛이 일품인 이탈리아 와인은 경쾌한 산미를 가진 이탈리아 음식-특히 토마토소스-와 찰떡궁합이죠.


와인이 음식보다 조금 더 도드라지게

이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와인보다 음식을 중시하시는 분들은 그 반대 조합을 원하기도 하죠. 하지만 좀 더 보편적이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조합와인이 주인공이되는 조합입니다. 음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조합은 와인의 풍미를 느끼기 어렵고, 그저 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풍미의 강도 뿐만 아니라 무게감에 대해서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묵직한 음식에 가볍고 산뜻한 와인은 그야말로 미스매치죠. 오늘은 이게 포인트예요.


신맛과 짠맛 - 와인을 부르는 주문

새콤한 맛과 짠맛은 와인이 가진 드라이함과 쓴 맛, 신 맛을 부드럽게 합니다. 한편 과일 풍미는 더 잘 느껴지게 하죠. 그래서 이 풍미를 가진 음식들은 대체로 와인과 잘 어울려요. 반대로 단 맛과 감칠맛(여기서는 주로 간장이나 된장 같은 소스에서 느껴지는 맛을 말해요)은 와인의 드라이함, 쓴 맛, 신 맛을 폭발시키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그런 음식과 매칭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와인을 골라야 합니다.



새우 구이는 어떤 음식일까


이제 기본적인 사항은 체크했으니 본격적으로 새우 구이용 와인을 찾아볼까요?

갑각류인 새우는 해산물이지만 멍게나 굴처럼 시원하고 가벼운 느낌보다는 녹진하고 진한 맛을 가지고 있어요. 대하는 보통 소금구이로 즐기니 짭짤한 맛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겠죠? 그럼 우선 세 번째 원칙은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새우 구이는 향도 진하고, 무엇보다 입 안에서 무게감이 상당한 음식이죠. 그럼 이제 두 번째 원칙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바로 음식의 강도에 맞는 와인 찾기죠.


무거운 음식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해산물에 레드가 맞냐 화이트가 맞냐 하는 문제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우니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단순하게 ‘화이트’ 와인으로 범위를 좁혀보겠습니다. 화이트 와인 안에서도 아주 다양한 장르가 있어요. 아주 많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우선 가볍게 세 가지 기준으로 장르를 나눠볼게요.


- 가벼운 와인 vs. 무거운 와인

- 고유의 향이 강한 와인 vs. 중립적인 향을 가진 와인

- 오크 향이 강한 와인 vs. 오크 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와인


먼저 가벼운 와인과 무거운 와인, 이 중에서 새우와 어울리는 와인은 어떤 것일까요? 새우의 진한 향과 무게감을 떠올리면서 페어링 원칙에 적용해보면, 단연 ‘무거운 와인‘이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고유의 향이 강한 와인은 꽃이나 향수같은 향이 주를 이루는 장르의 화이트 와인을 말해요. 게뷔르츠트라미너나 비오니에 같은 품종들이죠. 이런 향 강한 와인들은 향신료가 많이 쓰이는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만 담백한 새우 구이에는 중립적인 것을 고르는 것이 좋겠네요.


끝으로 오크향, 발효가 끝난 와인을 오크 통안에 숙성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들 많으실거예요. 하지만 모든 와인이 오크통을 거쳐 나오는건 아니랍니다. 상대적으로 레드는 오크를 쓰는 경우가 더 많지만, 화이트의 경우에는 너무 가벼운 와인이나 고유의 향이 두드러지는 와인에는 오크를 잘 쓰지 않아요. 사용하더라도 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 하죠. 오크 향이 와인을 압도해버리거나, 품종 고유의 향과 부딪혀 불협화음을 낼 수 있으니까요. 반면 와인이 좀 무겁고, 두드러지는 특정 향이 없는 중립적인 스타일이라면 오크 통에 숙성을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크를 사용한 화이트 와인은 복숭아, 레몬, 지역에 따라서는 열대과일 같은 풍미와 함께 바닐라나 토스트같은 향이 풍성하게 더해지니 상큼하면서도 고소하고 녹진하기 마련입니다. 과실풍미만 느껴지는 와인들에 비해 향이 다채롭고 무게감도 있어 새우구이에 찰떡같이 어울리죠.



드디어 여러 선택의 관문을 지나 새우 구이와 페어링할 와인은 ‘무게감 있고, 중립적인 풍미를 지닌 품종이되, 오크가 주는 바닐라, 너티한 풍미를 담은 와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와인은
바로 ‘샤르도네‘입니다.



샤르도네는 도화지 같은 품종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는대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유연한 포도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오크통 숙성 뿐만 아니라 앙금접촉, 젖산 전환 등 다양한 양조 방법을 적용할 수 있어서 같은 품종인데도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으니 아주 매력적이라 할 수 있죠.


자, 그럼 이제 샤르도네 중에서도 오크를 사용한 무게감 좀 있는 스타일로 골라볼게요. 아직도 안 끝났나 싶으시겠지만, 이제 와인 산지만 고르면 끝입니다. (웃음)


읽으시는 분들이 새우 구이를 파워풀한 뫼르소랑 드시겠다고 하면, 좀 아깝긴 한데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퓔리니 몽라셰 마을에서 온 샤르도네는 아껴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라면 미국 샤르도네를 고를 것 같아요. 다만 오크가 너무 노골적이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산지에 따라 와인 스타일이 또 달라지기 때문에 뫼르소는 괜찮고, 미국이 더 끌리고, 퓔리니 몽라셰는 아깝습니다.


뫼르소는 샤르도네의 본산인 부르고뉴 안에서도 가장 파워풀한 샤르도네를 만들고, 퓔리니 몽라셰는 뫼르소에 비해서는 훨신 섬세한 샤르도네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뫼르소는 사실 안주 없이 그냥 먹는 것도 좋긴 한데 양념 세게 안 한 고기 튀김 종류(중식당에 탕수육말고 그냥 고기튀김같은 메뉴요)나 연어같은 좀 녹진한 생선요리랑 먹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 쓰니 연어 빠삐요뜨에 뫼르소가 생각나서 침이 넘어가네요) 한편, 미국은(세부 산지마다 매우 다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러프하게 묶어서 다룰게요) 훨씬 찐한 스타일을 만듭니다. 부르고뉴에 비해 따뜻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알코올도 향도 버터리한 느낌도 훨씬 ‘찐’하죠.


드디어
제법 맛이 강한 해산물인 새우 구이에는
찐한 미국 샤르도네가 베스트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새우구이랑 마신 고기 샤르도네가 어땠냐구요?

달달하니 입에서 녹습니다 녹아요. 잘 익은 따끈한 새우를 꼭꼭 씹어서 입안에 풍미가 가득할 때 와인을 한 모금 곁들여주니 너무 달큰하더라고요. 스윗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맛있는 감칠맛 느낌, 아시죠?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그래, 호불호를 떠나서 새우엔 이게 진리야’


사실 저는 미국 와인들을 그리 즐기진 않습니다. 과실 풍미가 강조되고, 알코올이 강하고, 오크 뉘앙스가 강한 신대륙 와인들에 비해서 좀 더 섬세하고, 약간 더 그늘진 듯한 느낌을 가진 유럽의 와인들을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도 취향보다 음식이 먼저일 때가 있죠. 새우가 바로 그런 음식입니다. 미국 샤르도네와 함께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새우 이야기만 계속 했는데 사실 대게나, 랍스터 같은 갑각류엔 다 잘 어울릴거예요. 돈까스나 수육에도 꽤 잘 어울리죠. 붉은 육류가 아닌 닭, 돼지같은 흰 육류에는 레드와인보다 무게감 있는 화이트가 더 잘 어울립니다.




글을 쓰는 중에 고기 샤르도네를 한 번 더 마실 일이 있었어요. 이번엔 방어회, 그리고 밀치회와 함께였는데 새우만큼의 감동은 없었습니다. 와인이 좀 더 도드라져서 느끼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었죠. 방어는 꽤 기름진 생선이라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균형이 너무 와인쪽으로 기운 모양새였습니다. 새삼 페어링에서 무게감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한번 경험할 수 있었네요.



뭐 별거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길게 썼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낙이라 슥슥 넘기며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든 직업에는 별거 아닌 듯해도 한 끗의 디테일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후후. 다음 주에도 또 이렇게 별거 없어 보이지만, 디테일이 녹아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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