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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같은 남자 Jan 14. 2024

3. 마지막 휴학

익숙한 모든 것들과의 정리 그리고...

어학연수를 갈 나라를 선정하고 나니 벌써 마음은 영국에 가있는 듯했다.

출발까지 남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마무리해둬야 하는 일들과 가기 전까지 미리 준비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한국에서 자리를 비운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마무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지막 한 학기 남아 있던 학교에 휴학신청을 하는 일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남은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떠나기 위해 과 사무실에 휴학계를 제출하기 위해 방문했다. 방문한 학교에선 동기들과 선, 후배들이 취업 시장의 바늘구멍을 통과해 보겠노라 이를 갈며 도서관에서 자격증 준비, 어학 준비 등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중요한 마지막 학기를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맞는 일일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뭔가 거창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이 지나 돌아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던 만큼 당장의 눈앞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불안함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은 이렇게 마지막 학기를 휴학하기로 마음을 먹기까지의 과정은 마냥 편안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취업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K-대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역시도 보통의 여느 학생들과 같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로, 휴학을 마음먹고 어학원에서 출국하기 위한 날짜와 국가까지 정했으면서도 끊임없이 이렇게 다녀오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인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녀오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당시 내가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항상 털어놓고 고민 상담을 하던 지도 교수님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것 같다.


이 선택이 맞는 선택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눈앞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있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연락드려 면담이라는 빌미로 답답했던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교수님. 마지막 학기인데 이렇게 휴학하고 다녀오는 게 맞는 건지 계속 고민됩니다.. 동기들도 그렇고 다들 취업준비한다고 자격증 하나, 봉사활동 하나 더 하려고 안달인데... 물론 나도 고민해서 휴학하고 어학연수 가서 여러 경험도 해보고 어학 자격도 딸 계획이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시던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


도전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도전해 본 것과 도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인생에서 1~2년 지체된다고 삶의 방향이 잘못되는 법은 없다. 도전해라.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욱한 해무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길에 저 멀리 등대 불빛이 보이는 것처럼 조금은 마음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그래. 이미 마음먹은 일이라면 도전해 보자. 어학성적을 원하는 대로 못 따오더라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본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는 큰 자산이 될 일이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중요한 시기인 마지막 한 학기를 휴학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생각했으니 최대한 내가 생각해 온 방향으로 일이 되도록 해보자는 마음으로 과 사무실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나왔다.


휴학을 하고 나서는 장기간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과 그것들을 가져가기 위한 캐리어를 구매하고 짐 정리를 하나하나 시작했다.

그동안 여행 가는 동안 가지고 다닌 캐리어가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장기간 생활을 하러 가는데 필요한 옷가지와 편의용품, 전자기기 등을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필요한 것들을 전부 현지에서 조달하기에는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만큼, 정말 어쩔 수 없이 현지구매를 해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챙겨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현지에서 조달해서 짐을 줄여서 가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당시 나는 챙겨가기로 했었다.)

이민용 캐리어를 구매하고 처음 받아봤을 때는 이렇게 큰 캐리어가 존재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이후는 상상하는 바와 같이 그  큰 캐리어를 충분히 채우고도 가져가야 할 짐이 남아 백팩에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여분의 가방에도 짐을  채워야만 했다.


이렇게 짐 정리까지 하고 나니 출국일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제 한국에서 사용하던 번호는 잠시만 안녕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고, 집 근처 SKT 매장에 방문해 일주일 뒤부터 해당 번호를 장기 정지 신청을 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 연락처는 따로 작은 수첩에 정리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현지에 가서 생활비 및 긴급한 자금 등을 전달받기 위해 시티은행에 내방해 계좌를 개설했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받는 방법들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어학연수 갈 때는 시티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필수 아닌 필수였었다. 국내 은행은 외국에서 사용할 수가 없었고, 어학연수로 들어가는 비자는 별도 계좌 개설이 쉽지 않았기에 전 세계적으로 지점이 운영되던 시티은행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계좌 개설과 사용할 입출금용 카드를 받아 여권과 함께 잘 챙겨두었다.


하나씩 정리하고 준비하면서 점차 나의 마음은 이미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이야 해외 출장도 다녀오기도 하고, 가족 여행으로도 해외여행을 종종 나가고 있지만 당시에 해외여행은 가까운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던 나로서는 나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준비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는 모든 것이 달라진 곳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여행과는 다르게 다가왔었다.


새로운 사람들, 도전과 경험의 설렘 그리고 두려움



앞으로 그동안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도전하게 되고,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비단 그것은 경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책과 영상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시차라는 것을 접하게 될 터였다. 내가 지냈었던 런던과 한국의 시차는 9시간(서머타임 적용하면 8시간)이었다.

한국에서 한창 생활하고 있는 시간일 때 런던은 새벽이거나 아침시간이 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다양한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자세한 이야기들은 이후 풀어나갈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새로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은 나에게만 도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정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준비하느라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새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부모인 나도 아이들이 잘 적응할지, 내가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기보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경험하고, 공부하게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설레었었다.

그 나라에는 무엇이 있는지, 주말이나 쉴 때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등을 상상하며 출국 전까지 준비하는 기간 동안 두려움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출발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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