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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같은 남자 Feb 14. 2024

7. 진저쿠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는 다른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살아온 방식이 무조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그 방식과 다른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나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과는 다르게 현실의 삶을 현지인들과 부딪히여 살아가는 일이다 보니 단순히 다르구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기도 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다른 점을 크게 느끼고 새로운 것을 경험했던 일 중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음식에 대한 일이었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처음이자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는 기억은 진저쿠키 그리고 오렌지 마멀레이드 사건일 것이다.

홈스테이 하우스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2주 차부터는 이제 슬슬 나름 단순 여행객이 아닌 런던에서 살아가는 거주민이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그들의 사회에 들어가 보고자 도전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때마침 집 근처에는 Lidl이라는 마트가 있었고, 첫 도전은 방에서 사용할 생필품 구매를 위해 마트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영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마트가 있고, 제품의 질에 따라 마트별로 가격이 달라 일종의 등급이 구분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체감했던 등급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았던 것 같다.


최상급 : M&S(막스 앤 스펜서)

상급 : Tesco, Sainsbury(테스코, 세인즈버리)

중급 : Morrison(모리슨)

저렴 : Lidl, Aldi, Asda(리들, 알디, 아스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등급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집 근처에 보이는 마트라고는 리들이었기에 당연히 우리나라 이마트나 롯데마트 정도를 생각하고 들어갔었다.

처음 방문했던 영국 마트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영국 물가가 비싸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후에 마트 등급에 따라 가격과 질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듣은 바로는 런던 물가가 가히 살인적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건 웬일인가. 공산품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신선식품인 과일 가격도 한국보다도 저렴했다. 생활비를 아껴야 했던 학생 입장에게는 너무도 좋은 가격이었다.

마트에 방문했던 이유는 입이 심심할 때 먹을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다양한 종류의 초코바와 감자칩도 있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진. 저. 쿠. 키.

하지만 진저쿠키고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던 영어문맹 수준이었던 나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골랐다. 맛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어하는 생각이었지만 오판이었다. 두 번째로 구매했던 제품이 식빵에 발라먹을 잼을 사고자 했던 찰나 발견한 오렌지 마멀레이드였다. 당시에는 마멀레이드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딸기잼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구매를 했었다.


그렇게 구매해 온 진저쿠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준비해 두고 노트북으로 지난주 방영했던 무한도전을 볼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름 경건한(?) 마음으로 먼저 진저쿠키를 영접했다.

잘 포장된 포장지를 한 꺼풀 벗기고 나니 잘 구워진 갈색의 쿠키가 나타났다. 쿠키 한 개를 잘 집어 입에 한입 베어 물자 진한, 정말 아주 진한. 아니 찐한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런 향의 쿠키를 난생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너무도 충격적인 맛이었다. 잠시 진저쿠키를 옆으로 미뤄두고 식빵을 꺼내곤 오렌지 마멀레이드 병뚜껑을 열었다. 향긋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향이 물씬 코 끝을 자극했다. 오렌지 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빵에 꼼꼼히 펴 발랐다. 잼이겠거니 했지만 바르면서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오렌지 껍질 같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잼이라기보다는 유자차를 마실 때 쓰는 유자청과 비슷해 보이며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마멀레이드를 잘 펴 바른 식빵을 입에 무는 순간, '아 이건 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잼과 같은 맛이 있었지만 오렌지 껍질이 입에서 씹힐 때마다 느껴지는 그 특유의 쌉싸름함과 향이 입 안에 퍼졌다. 그래도 그나마 먹을 수는 있었기에 식빵 한쪽을 다 먹었을 무렵.. 혀가 아려왔다.

그리고 진저쿠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한동안 내 책상 서랍 한편에 조용히 자리하게 되었었다.

몇 번 더 도전해 봤지만.. 당시 구매했던 제품이 많이 저렴해서 질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맛과 향에 크게 놀랐던 탓인지 도저히 입에 맞질 않았기에 이후 버려지게 되었다.


진저쿠키와 오렌지 마멀레이드
모든 것이 미숙했던 그때가 떠오르는 매개체이자
다시 한번 맛보고 싶은 추억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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