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인같은 남자 Jan 25. 2024

6. 나의 첫 하우스 메이트

Thanks to...

런던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마치고 당분간 살게 된 홈스테이에는 나를 제외하고 또 한 명의 식객이 있었다.

오늘은 나에게 처음이기에도 놀랍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마웠던 나의 첫 하우스 메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의 첫 하우스 메이트는 나보다 3살 많았던 나이지리아 출신의 흑인 친구였다.(우리나라였다면 형이라고 호칭정리가 되었겠지만, 그냥 우리는 모두 친구..)

처음 이 친구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고단했던 첫날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몽롱한 정신으로 내려간 1층 식당에서 처음 그 친구를 만났다.

처음 본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은 처음에는 딱 한 가지만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짜.. 흑인이구나.'

그동안 내가 영화에서 보던 흑인은 이 친구의 피부색에 비하면 짙은 구릿빛의 피부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라고 해봐야 당시 얼마나 만나봤겠는가. 하물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외국인라고 해봐야 중국인 유학생이나 동남아시아 국적의 친구들이 정말 드물게 보이는 정도였던 터라 내가 알고 있던 흑인이라는 인종을 생각했던 기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당시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그리고 그 당시의 느꼈던 감정들을 최대한 살리고자 함이니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동안 새로운 것들에 대해 나름 소위 말하는 오픈 마인드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미 처음 그 친구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흑인의 기준부터 잘못되었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에서 내가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좁은 것일까.
바라보던 우물 안 하늘을 보며 그것이 전부라 생각한 오만..
세상은 넓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그 친구를 나이지리아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영국에 공부하러 온 학생이었다. 영국에서 금융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많은 것을 배워 나중에 돌아가 선진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림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에 나와 같은 나이의 동생이 있다고 했었다. 아마도 이후에 그가 나에게 건네었던 호의들은 타국에 공부하러 온 같은 외국인으로서의 동질감과 함께 고국에 있던 내 또래의 동생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친구는 자신의 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부르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편하게 Henry로 부르라고 했었다.

Henry의 도움으로 집 근처의 매장에서 노키아 휴대폰(단순히 텍스트와 전화만 되는.. 심지어 흑백이었다.)을 구입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Vodafone Pay as you go 유심과 선불 금액 충전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월마다 정해진 금액을 내고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서비스는 비싸다 보니 꼭 필요한 경우 연락만을 위해 선불 충전을 해서 사용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등원하려면 어떤 노선의 버스를 타면 학원 바로 앞에 도착하는지, 동네에서 어떤 가게에서는 무엇을 판매하고 어디가 좀 더 좋았는지 등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런던에 도착한 지 아직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와 함께 혼자서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렸을 일들도 그 친구 덕분에 쉽게 알 수 있었고, 처리할 수 있어 너무 고마웠다.

그 친구의 호의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처음 학원에 가던 날, 혹여 내가 잘못 탈지도 모른다며 본인 수업시간 보다 몇 시간 빨리 등원하면서까지 버스 타고서 길 안내를 해주었고 학원에 등록하고 내부 시설 이용하는 방법 등도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호의가 조금씩 나에게는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도와주고 본인의 시간까지 희생해 가며 안내해 주고 기다려준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감사했지만 당시 나는 뭔지 모르게 좀 불편함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당시 서로 수업 시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내가 행여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지 모른다며 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귀가하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고마웠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왜 자꾸 나한테 간섭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 친구에게 조금씩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당시 같은 반에서 수업받았던 친구가 "Henry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주변에서도 좀 과한 호의라는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Henry가 베풀었던 호의는 단순히 낯선 땅에 이제 막 도착한 동생뻘 외국인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변의 그런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그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날은 내가 수업받던 Class에서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같은 반 학생들이 함께 학원 근처 템즈강변 산책하고 바로 길 건너에 있는 Pub에서 맥주 한잔 하는 일정이 소위 말하는 번개로 잡혔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이후 진행될 계획이었고, 처음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친구들과 영국 Pub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기회라 너무도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당시 Class에는 일본, 중국, 러시아, 터키, 이탈리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핀란드, 벨라루스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있었다.)

거리를 두려고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Henry의 호의가 감사했기에 미리 Class에서 외부 활동 일정이 생겼으니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먼저 귀가하라고 했으나, 그 친구는 본인은 도서관에 있을 테니 일정이 끝나면 연락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참 너무도 답답했다.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닌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싶었지만 다시 언제 끝날지 모르고 Pub에서 이후에 또 이동하게 될지도 모르니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완강히 괜찮다며 끝나고 들어갈 때 연락하면 같이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친구의 답답함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호되게 이야기했다.

"내가 일정이 있고 기다리는 게 부담되니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 거다. 나도 20대 중반 넘어선 성인이고 네가 나한테 이 정도로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많이 도와준 일은 고맙지만 이 이상은 더 이상의 도움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부담된다."

그 말을 듣고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를 껌뻑이다가 "Sorry.."라고 하고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학원을 빠져나갔다. 당시에는 솔직히 통쾌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홈스테이 하우스에도, 학원에서도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할 뿐 더 이상 나에게 간섭하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친구는 어학원을 떠나 런던 소재 대학원에 합격했다며, 공부를 위해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긴다며 짐을 정리하고 주인 할머니 그리고 나에게 인사하고선 홈스테이 하우스를 떠나갔다.


어학연수 시절을 돌이켜보면 다양한 친구들과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중 Henry에 대한 기억도 항상 잊히지 않고 생각난다. 그때는 그의 호의가 부담스러웠고 답답했기에 별로 연락처라 SNS를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내가 조금 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면, 갑자기 호되게 이야기하기보다 내가 불편했던 점에 대해 좀 더 조리 있게 이야기했다면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절보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나름 내가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도록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당시에 홈스테이 하우스에서 제법 생활하고 난 이후 안 일이지만, 내가 살았던 동네(Catford)가 런던에서는 우범지역이었다. 대부분 흑인들 혹은 중동계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로 그 동네에서 당시 동양인 거주자는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렇게도 내가 귀가할 때 같이 가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 본다.


많이 늦었고, 전할 수 없지만..
그때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어. 너의 호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고마웠다.
Thank you Henry.. Take care.


 

이전 05화 5. 런던에서 첫날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