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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같은 남자 Mar 20. 2024

8. 어학원. 그 첫날의 기억

처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순간도 처음 경험하는 누군가에게는 그의 삶에서는 처음이기에 특별한 순간이 된다.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처음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 중에는 처음 학원에 도착해 들었던 첫 수업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런던에는  다양한 종류의 어학원이 존재하고 있었고, 커리큘럼도 저마다 장단점이 있었다.

당시 나는 어학원을 선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알아봤던 점은 한국인 학생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많이 확인했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은 편인 어학원들은 한국인 학생 비중이 높은 편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너무 그 비중만 따지기에는 부대시설 및 학업 커리큘럼등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결국 최종 결정한 어학원은 Embassy CES London이라는 어학원이었다.

어학원은 템스강 남동쪽 지역인 그리니치(Greenwich)에 자리하고 있었다.

홈스테이 하우스에서 학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로변까지 10분 정도 걸어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언제나 학원 앞까지 한 번에 날 데려다주었던 영국 하면 떠오르는 199번 빨간 2층 버스.

가끔 운이 좋으면 버스 2층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인 거리도 나에게는 특별했고 지금은 그 특별한 순간순간들이 추억이 되었다.

그런 일상의 순간들을 눈과 가슴속에 담으며 가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학원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곤 했다.

어학원 가는 2층 버스 안에서(2010)
버스에서 바라본 길가 펍에 앉아 있는 사람들(2010)

어학원에 처음 등원해서 사무실에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기도 하고, 학원에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학생증 발급에 필요한 사진을 촬영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에 교통카드도 필요했었는데 학생증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Oyster Card(오이스터 카드, 교통카드이다.)를 발급 신청을 해두었다.

그리고 잠시 학원 도서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사무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도서관에 들어서자 나와 같이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대기하고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또래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앞으로 펼쳐질 런던에서의 일상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말을 붙여보고 싶지만 다들 선뜻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그것도 다른 국적의 또래에게 말을 거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는지 나를 비롯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는 못하고 서로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바라보고 있을 무렵, 사무실 직원이 들어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학원 내부를 간단히 돌아다니며 도서관, 카페테리어, 강의실 및 매점과 기숙사 등의 시설을 소개해주었고 생활하면서 주의해야 될 사항들과 문의사항 등은 어디에 문의를 하면 되는지 등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나자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기에 간단하게라도 점심 식사를 해야 했기에 밖에 나가기보다 학원 내부의 카페테리어에서 식사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학생들이 선 줄을 따라 뒤에 섰다.

음식을 담는 플레이트를 들고 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한 후 마지막에 전체 금액을 정산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당시 나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방식이다 보니 앞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똑같이 담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은 내가 원했던 것과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낯선 이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어학원에서의 첫 점심 식사를 마치고선 대망의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향했다. 들어선 교실에는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앞으로 함께 수업을 듣게 될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수업에서 처음 만나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나의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잠시 후, 강사가 들어왔고 먼저 자기소개를 한 후 학생들의 자기소개 차례가 이어졌다.

이탈리아, 터키, 에콰도르, 콜럼비아,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어로도 하기 힘든 자기소개를 아직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려니 이렇게 곤욕스러웠던 적이 있나 싶었다. 

"He.. Hello. My name is... Just call me Jun."

(한국에서도 친구들이 부르던 호칭이었는데, 외국 친구들에게는 항상 준이라고 부르라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그렇게 런던에서 드디어 시작했던 첫 수업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워졌고, 앞으로의 다양한 추억들의 시작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은 언제나 설렌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두려움 뒤에는 설렘이 있다.

처음의 기억이 풋풋하고 언제나 기억 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설렘의 향수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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