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지 않으면 뺀질거리는 관리실장에 대한 사색

뺀질거려 놓고 거짓말이나 하지 않으시면 참 다행이로다

by 최류

지금 내가 바꾼 관리실장은 말없이 참 반듯하신 분인데, 내가 처음 이 신흥동에 왔을 때 관리실장은 동네에서 뺀질거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일해주실 사람 구하기도 어려워서 몇 년째 이 분을 계속 관리실장으로 모시고 있었다. 이 못 사는 동네에서 여러 채의 원룸 건물을 최저시급으로 관리해줄 나이들고 정정한 남자를 찾는 일 또한 제법 고역이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소유한 건물은 이 동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 관리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이 신흥동 동네에 왔을 때, 손님들을 워낙 많이 봐서 사람 얼굴만 봐도 신수가 훤하다는 신흥동 유명 떡볶이집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고 나를 마음에 들어하셨던 모양이다. 그분은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아서 대뜸 이렇게 말을 건넸다.

"관리실장님 바꾸실 때가 된 것 같아요."


"네? 아 뭔가 사고라도 치셨나요?"


"그게 아니라, 외람되지만 내가 매일 여기 가게 운영하면서 보는데, 너무 놀아요. 괜찮은 사람 있으면 바꿔요."


사람을 워낙 많이 대해 봐서 사람 얼굴만 바도 관상이 훤한 나 또한 떡볶이집 사장님의 말씀을 바로 캐치했다. 수십 년 째 떡볶이 장사를 하며 이곳에 소유한 건물을 3채로 늘려온 사장님은 역시 사람에 훤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 얼굴만 봐도 훤한 사람은 돈줄이 자연스럽게 트이게 되는데, 왜냐하면 돈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오고 사람을 통해서 나가며 또한 사람을 통해서 줄줄 새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이 중 돈이 줄줄 새는 사람만 막아도 돈은 크든 작든 자연스럽게 고이고 모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장사를 통해서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골이 나도록 사람들을 매일 수십, 수백명씩 만나서 쌓인 빅데이터가 자연스럽게 통찰력으로 이어졌다.


"새벽 2시만 되면 전화가 와서 못 살겠어요."


처음 만난 관리실장이 나한테 한 말이었다. 그는 만나기만 하면 나에게 새벽 2~3시에 사람들이 보일러를 꺼달라 또는 틀어달라,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 뭐가 고장났다, 전화를 해댄다, 무려 새벽 2~3시에! 라고 했는데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레퍼토리를 만날 때마다 써댔다. 그러니 실제로 새벽 2~3시에 누가 전화가 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웠다. 일부 세입자들은 내 번호를 알고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세입자들은 정말 큰 일(예를 들면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의 한밤중의 큰일) 정도가 아닌 이상은 나한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매너가 있다, 생각보다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 라는 것이 이곳 세입자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로 심한 친구간의 주먹다짐이나 부부싸움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서, 대부분은 칼을 들지 않은 채 누구 한 쪽 포기하지 않은 고성방가를 동반한 주먹다짐이라 결국 경찰에서 연행을 해갔지만, 그 외에는 남이 사는 방 앞에서 피우는 줄담배를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방이 대부분이었다. 원룸 건물들인데다가 자기가 사는 원룸에는 애착이 별로 없는 단기 세입자들이 상당수인 곳이라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미리 심심한 양해를 구해본다.

예전의 관리실장은 시어머니께서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면서 여러곳의 건물들을 관리하실 때에는 팔자가 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신흥동으로 이사와서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미리 구축해놓은 평화로운 삶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는 거지만, 유일하게 문제가 있는 건물들인지라 나를 일부러 이곳에 시어머니께서 체스판의 폰을 마음대로 움직이듯 가져다놓으신 듯 했다. 어쨌거나, 관리실장은 일하지 않고 담배나 피며 동네 사람들과 수다나 떨 용도로 자신이 관리해야 할 건물들 사이에 플라스틱 의자들을 몇 채 갖다놓은 상태였다. 나는 이사오는 첫 날 저 새빨간 플라스틱 의자들이 도대체 무슨 용도인지 궁금해했으나,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주변 건물주들의 밀고(?)가 있기 전까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는 세입자들과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기도 했고, 근처 건물들 관리인들, 내지는 가게 사장님들하고 수다를 떨어대곤 했다. 몇 년째 지속되어온 그 사실을 왠만한 주변 건물주들은 잘 알고 있었고, 건물주들의 나름 높은 위상상 관리인들과 가게 사장님들(이른바 상업적 세입자들)과는 겸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공간 속 서로 같은 인간임에도 계층에 따라서 서로 공유되는 이야기의 색채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 개의 계층 속 비공식 커뮤니티에 알게 모르게 끼워져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러한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서 정의된 다수의 공통사가 어찌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타고난 웃상, 시어머니처럼 실제 건물주는 아니지만 그 역할을 대리하는 며느리, 그리고 나아가 여러 계층을 아우르는 대화술과 천주교로 깎고 다듬어 만든 겸손함으로 몇 달 안에 여러 개의 계층 속 비공식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내 기준으로 대부분의 가십은 신경쓸 가치도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중요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일부러 그래, 너희들이 하는 말은 중요해. 저희들이 느끼는 감각은 중요해. 라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한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모든 세입자들과 관리실장이 홀딱 속아넘어가기에 적합했다. 어쩌면 컨트롤이 안되는 하위계층을 제어하는 것에 대한 재능을 흘겨 보시고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보내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분은 70 평생 세상 모든 것을 시적이면서도 정확하게 통찰하시는 분이시니깐 말이다.


대부분의 삶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채로 그 무거움을 삶 속 통째로 지고 가는 하위 계층과는 달리, 어느 정도 삶의 중대한 문제가 해결된 중간 계층과 그로부터 지극히 자유로워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위 계층, 그 모든 계층에 나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내적으로 성숙해서 일수도 있고, 끊임 없이 비효율적인 인간에 대햔 이해와 수용을 이어가고자 평생에 걸쳐 이해하고자 노력해서 였을 수도 있고, 내가 지극히 돈이 많아서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다는 다층적인 생각을 나는 늘 하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늘 "새벽 2~3시에 전화를 해서 못살겠어요."를 입에 달고 살던 관리실장은 건물 관리를 제대로안 하고 줄담배를 피우며 근처 가게 사장님들(특히 도박장 사장님들)과 수다나 떨며 동네 마실을 거들먹거리며 다닌 것, 일 다 한 척 하고 집에 들어가 쉰 것, 세입자의 요청사항을 자신이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넘기거나 시어머니와 세입자가 이중으로 요청한 일을 1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결국 나에게 잘 처리되었다고 거짓말을 뻔뻔하게 한다. 그러나 십중팔구는 세입자에게 해결이 1도 안 되었다고 바로 나한테 전화가 온다. 관리실장이 아닌 건물주 대리인이 나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관리실장이 해결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고의적이든 무의적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신흥동에 온지 1년만에 이 관리실장이 자기 새벽에 전화오는 것 때문에 못 살겠다고, 월급 안 올려주면 그만두겠다고 하는 걸 그냥 바로 그러시라고 하고 잘라버렸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내가 직접 건물들 관리를 하며 월급이 어느 정도 책정되어야 사람들이 기꺼이 와서 일해줄 것인지를 계산했다. 나는 한동안 우리 남편의 인테리어 기술자 일당직으로만 소득이 책정되고 있었기에 시간적인 여유도 24시간 풀로 가능했고 남편을 돌봐주고 챙겨주는 시간 외에는 늘 심심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어쨌거나, 최저시급으로 이곳에 올 사람은 없다. 그러나 250, 300만 원의 월급이면 올 사람은 충분히 다분하다. 전의 관리실장은 그 250~300만 원의 월급을 이끌어낼 지적/행동적 인식이 부족해서 이렇게 무일푼으로 아무런 칭찬도 없이 쫓겨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보다 제법 무른 나라는 인간의 생각이 든다.


지금의 관리실장님은 내가 10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분당 서현동의 시범단지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으로 오래 근무하신 분이다. 처음에 이사 올 때 4억 밖에 하지 않던 이 시범단지 현대 아파트는 지금 리모델링이나 재개발을 앞두며 20년 만에 30억 가까이(무려 8배 가까이) 튕겨올랐다. 언제나 모든 인간의 만사는 20~30년 전 내가 저지른 짓들이 다 잊을 즈음이 되어서야 내게로 부메랑 같이 되돌아온다는 치명적인 사실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이든, 부정적인 영향이든, 나와는 1도 상관 없는 제3~10자의 인생에서든 말이다.


그리고 관리실장은 확실히 차단되도록 바뀌어서, 지금 관리실장님은 내게 어릴 적 묵묵히 산더미 같은 낙엽과 구린내 나는 은행나무 열매, 매일 수십 톤씩 나오는 아파트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관리하시던 그 모습 그대로, 이 동네의 새벽 모든 캔들을 모으신다. 그것을 사람 키가 넘게 다섯 번들씩 모으셔서 파는 것이 그분의 소소한 재미다. 나는 한 두달에 한 번 파이프를 피우러 나왔다가 새로 오신 관리실장님이 잠시 임시로 쌓아둔 그 무수히 다양하고 풍성한 캔들의 산을 보며, 사람 바꾸길 정말 잘했다고, 내가 살아온 40년 평생의 순간 동안 책과 전공 공부에 몰두하기 보다 장사와 영업을 택하고 매일 수십 명씩 사람들의 얼굴과 태도를 보아옫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스로가 지극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신흥동 건물들을 시어머니와 대신해서 내가 관리하고 있는 동안 꾸준히 내 안에서 떠오를 집 아랫목에서 꾸준히 키워먹는 무한한 노랑 콩나물과 같은 자기자존감과 같은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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