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깽이들을 사랑하고 챙겨주는 불운한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신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 이 동네에서 산지 5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지난 4년 동안 이 동네를 지극히 혐오했었다. 대한민국 전국에서 제일 저렴한 사창가와 나이트, 애들만큼이나 흔하게 보이는 노래방 도우미들, 가장 저급한 대중문화와 더불어 꼬이는 저급한 취향의 매너 1도 없는 사람들, 당연하게 도박장이 성행하고 그곳에서 눌러살다시피하는 새까만 줄담배 개저씨들,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아 모인 가출 청소년들이 내가 관리하는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욕을 해대는 풍경들.
이러한 사람들과 문화, 삶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상위계층 출신의 나는 처음 몇 년 동안 내가 돌보는 이 건물들, 이 세입자들 사이에서 이 동네, 신흥동이라는 동네를 지극히 혐오했었다. 한 번 섹스하는데 3만 원이라는 화대만 지불하면 되는 이 최악의 싸구려 사창가가 존재하는 동네에서, 당연하게 버젓이 노래방 도우미가 돌아다니고 사정을 하게 해주는 마사지가 성행하는 이 동네에서, 도박장이 당연하게 성행하고 유행하는 이 동네에서, 나는 지극히 뚜렷하고 깊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이곳은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대놓고 발기한 페니스를 드러내는 바바리맨처럼, 그렇게 깊은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동네였었다.
나는 그렇게 수 년을 이 동네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채, 그러나 그것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코스프레를 하며 살았다. 그러나 나는 유명 떡볶이집 건물주 사장님처럼, 여러 개의 가게를 차려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들처럼, 그들이 지닌 무한한 여유와 낭만을 나름 동경하고 있기도 했다. 때로는 그 여유로움과 낭만, 그 넉넉한 영혼적 마음 그 자체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물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기 때문에 그저 멀리서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접근이 현재 나의 삶의 가장 큰 테스크인 '비효율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대한 관문 중 하나이리라 속으로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께서는 나를 올바르고 타당한 길로 이끄시는 법이다.
내가 그 장면을 보게 된 것은 새벽 2시, 어둑하니 상권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른바 '오징어배 불'이 꺼지지 않은 핫한 신흥동의 밤이었다. 파이프를 피는 내 옆으로는 노래방이 2개인가 있었는데, 1시간 동안 연초를 뻐끔뻐끔 피는 동안 늘씬하게 다리를 드러낸 하이힐을 신은 노래방 도우미들이 무려 5번이나 희고 검은 신형 카니발을 타고 나타났다. 하도 새벽에, 한밤중에 파이프를 1시간씩 피우러 나와서 그 모습을 직관한 나로서는 이제 더이상 별 생각 없는 상황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녀들은, 그리고 때로 그(!)들은 내가 뻐끔거리며 앉아있던 말든 기묘한 순수함을 풍기며 내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그 때 내 눈에 띈 것은 어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 한 사내였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의 등, 정확히는 엉덩이골을 여실하게 직관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눈과 뇌에 좋지 않은 그림이었다. 깊이 패여있는 Y자의 엉덩이골에 나는 속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그 마음이 누그러 들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추한 몰골로 쪼그려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그의 손 끝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 끝에는 한 주먹이 될까 말까 한 작은 아기 고양이, 아깽이가 둘 매달려 있었다. 직접 손으로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세 생명은 츄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맛도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굳이 Y자 엉덩이골을 대놓고 드러내며 츄르를 두 갓 태어난 생명체에게 공급해야 했을 정도로 진심이었던 것이다.
두 아깽이는 사이가 좋게도, 서로 번갈아가면서 미세한 츄르의 끝을 핥아대고 있었다. 나는 굳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어떻게 츄르를 부드럽게 섬세하게 주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의 손끝은 엄청난 엉덩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 조심스럽게 달려 있는 아기 고양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가만히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아기 고양이를 확인하는 순간, 내 깊은 안쪽에서는 귀여운 안도감과 함께 뭔가가 돋아났다. 바로 이 동네에 대한 혐오감을 지우는, 진리만이 남은 신적인 사랑과 같은 무엇 말이다.
아기고양이들은 그 이후에도 약 3달 간을 내가 살던, 내가 관리하는 시어머니의 원룸 건물이 있던, 골목에 살았다. 알고 보니 관리실장의 사무실에 엄마 고양이가 몰래 숨어들어가 새끼를 낳은 것이었다. 다섯을 낳았지만 셋은 금방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남은 두 마리가 나에게 이 동네에 대한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 그러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보증금 없는 월세라고 하는 것은 전국 모든 곳에서 가장 피폐하고도 어려운 삶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게 만드는 조건이다. 개중에는 머나먼 타국에서 건너온 외국인도 있었고 범죄자도 생각지도 않게 많았다. 성범죄자도 내가 검색해본 결과로 2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대놓고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모두가 조용하게 최대한 옆집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입을 다물며 살아갔다. 때로는 심하게 패워대는 줄담배로 서로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적어도 집주인과 집주인의 대리인인 나 사이에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가 살고, 출소한 범죄자가 살고, 성범죄자가 살지만, 그래도 상당수가 평범한 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아니, 혹시나, 작은 것들에서 만족감을 느꼈기에, 매일 일하는 삶에서 보람을 느꼈기에 굳이 그 이상 얻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인 이 골목, 이 동네에서 애정을 갖게 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을 이 작디 작은 사랑스러운 생명체 둘은 해냈다.
치즈 엄마냥이를 따라서 자식들은 치즈를 넣은 고등어였다. 아마도 아빠가 고등어였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매일 같이 골목으로 나와서 하찮게도 뛰놀았다. 점프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계단에서 떨궈지는 그들의 모습은 크나큰 미소를 가져다 주었다. 비록 고양이들이 주로 노는 장기숙박용 모텔에서는 그 귀염둥이들을 매우 싫어했지만, 매우 싫어해서 귀염둥이들이 낮잠을 자는 화분 안에 밤송이들을 잔뜩 우겨 넣어놨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아무리 우락부락하고 범죄기록이 있으며 삶 자체가 엉망이었더라도, 그 어린 사랑둥이들을 사랑했다. 누군가는 참치를 섞은 달걀후라이를 매일 2~3개씩 부쳐서 내놓았고, 누군가는 간신히 몸이 옆으로 들어갈 만한 공간에 고양이가 푹 쉴 만한 집을 하나 강제로 끼워넣었으며, 누군가는 굳이 고양이 사료를 사서 그릇에 담아놓았고, 물그릇 또한 그 옆에 같이 생겼으며, 누군가는 매일 츄르를 사와서 아기고양이들을 먹였다.
아기고양이들이 츄르를 맛있게 먹고 있으면 엄마 고양이는 나름 안심이 된다는 듯이 약 3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보는 둥 마는 둥 앉아있거나 누워있곤 했다. 껌뻑껌뻑 움직이는 그녀의 노란 눈은 이미 평온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관리실장님의 사무실에서 새끼를 해산한 경험이 세 번이나 있는 엄마 냥이는 참다 못한 관리실장님의 손에 붙잡혀서 강제로 중성화를 하고 한쪽 귀 끝이 잘려 있는 상태였다.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랑에 빠져 있었다. 4년 동안 껄렁거리고 다녀서 별로 안 좋게 생각하던 사내의 엄청난 순수한 선의과 진심을 보고 느닷없이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와인매니저 일을 시작하며 주로 관리하던 시어머니의 건물들에서 활동 권역을 넓히게 되며 그 사랑은 더 깊어졌다. 어디에나 고양이들은 있었고, 중성화가 채 되지 못한 고양이들은 아기들을 낳았으며, 모두가 그 아기고양이들을 지극히 사랑했다. 다 꼬부라진 허리에 허름한 옷을 입으신 잘 못 걸으시는 할머니도, 줄담배를 피워대는 도박장 개저씨들도, 노래방 도우미도 퇴폐 마사지사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태어나서부터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가출 청소년들도, 그 외 평범한 삶을 살아하는 하위계층와 중간계층, 소수의 상위계층들도 그 모두가 사랑이라는 개념이 털로 물질화된 그 작고 귀여운 존재를 깊이 사랑했다.
아기 고양이들은 영양 공급을 제 때 잘 받고 무럭무럭 자라나 중성화가 되거나, 또다른 엄마 아빠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고양이들의 수명은 채 3년이 넘지 않는 듯 했다. 지금 이 골목에는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사랑에 빠지게 된 엄마 치즈 고양이의 손주가 팔짝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관리실장님의 사무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 고양이 가문이 대대손손 숨어들어와 해산하는 그러한 따스한 공간이 되어 주고 있었다. 관리실장님은 내가 혹시 뭐라고 할까봐 때때로 눈치를 보곤 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공간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 한구석의 불씨처럼 나의 마음을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깽이들의 순수하고 투명한 눈빛과 오동통한 뱃살, 보송보송한 솜털, 그리고 하찮은 앞발의 쿠션과 같이 말이다.
더불어 시어머니는 고양이라면 진저리칠 정도로 매우 싫어하셨다. 그 쭉 찢어진 눈이 너무나 무섭고, 아기처럼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끔찍하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기 너머로 이따금씩 이 동네 고양이들에 대한 근황을 시어머니께 전해드리곤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대화 주제 중 하나였다. 그래도 현명하고 아름다운 노부인은 참을성 있게 며느리의 소소한 수다를 들어주시곤 하셨다. 신흥동 동네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아기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듯, 그 또한 시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 방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