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곳에서 시작된 나의 와인 인생
나에겐 와인의 맛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한명이 있는데 한국 사람도 아니고 프랑스 사람도 아닌 바로 일본인 친구 사카모토 상이다.
비지니스 관계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사람 뭔가 허술해 보이면서 인생을 여유롭게 산다고 해야하나? 즐길줄 안다고 해야 하나? 일본사람 치고는 좀 많이 친근감이 느껴지는 분이였다.
미팅이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간 이자카야 집에서 다들 정종하고 맥주를 시킬때 이분은 홀로 와인 한병을 시켰다. 그리고는 다른 술은 일절 입도 대지 않은체 홀로 와인 한병을 다 비웠다.
그 다음날도 저녁을 먹으러 간 이자카야 집에서 이분 혼자서 와인을 시키시는게 아닌가?! 다른 분들은 다들 정종이 최고니, 고구마로 만든 정종을 마셔보라니 일본에 왔으면 역시 정종이라고 할때 이 분은 정말 지조? 있게 와인을 한병 시키셨다. 나는 그 모습에 심히 흥미를 느끼고 사카모토 상에게 말했다.
"사카모토 상, 사카모토상은 와인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와인만한 술이 없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해요."
"저도 흥미가 당기는데 한잔만 주시면 안되요?!"
"물론이죠. 잔 주세요"
그렇게 나는 사카모토상의 와인을 뺏어? 마실수 있었다. 나의 와인에 대한 첫인상은
'뭐여? 이런 정말 무미 건조한 맛의 와인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거지? 이게 맛있다는 건가?' 였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때는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표현을 하자면 굉장히 드라이해서 단맛이 전혀 없고 그래서 오히려 쓰게끔 느껴지는 그런 맛이였기 때문이였다. 아무래도 그때까지 와인을 마치 포도주스처럼만 생각해서 달지 않을까? 하고 착각 하고 있었던 것도 원인이라면 원인이겠다.
이미 받아버린 와인을 마시면서도 온갖 생각을 하였다.
'이거 너무 맛이 없는데 몰래 밑에 내려놓고 다시 정종을 마실까? 아니면 그래도 준 예의가 있는데 이 한잔만 다 마실까? 근데 뭐야? 원래 생선요리에는 화이트가 아닌가? 왜 이자카야 집에서 레드 와인을 마시고 있지? 아니 저 양반은 다들 웃고 즐길때 혼자 진지해? '
나의 심정은 와인의 맛처럼 복잡 미묘했다. 어떻하면 이 고난? 을 헤쳐나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심했다.
'이미 받아 버린 와인이니까, 이것만 다 마셔보자'
그렇게 홀짝 홀짝 와인을 마셨다. 한편으로 너무 많이 따라준 사카모토상을 속으로 미워하며. 그렇게 음식이랑 와인을 (어거지로) 마시고있는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순간인가 와인이 갑자기 맛있어 진 것이였다. 그때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지금와서 분석을 하면 굉장히 드라이 하고 타닌감이 풍부했던 와인이 시간이 지나 산소에 적당히 산화 되면서 부드러워 졌고 또 달지 않고 드라이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방기 충분한 생선요리에 매칭이 잘 되었던 것이였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쥬라는 일생 일대의 첫경험을 한 순간이였다. 나의 동공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없어, 와인이 이렇게나 맛있는 술이였다니, 이자카야의 음식과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진다니..'
그리고는 나는 본격적으로 사카모토 상의 와인을 뺏어 먹기 시작했다. 정종과는 다른 와인만의 차별, 그리고 음식을 받쳐주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와인의 맛, 와인이 선사하는 이 황홀한 감각의 사치에 나는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와인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게 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사카모토상의 와인 초이스가 아니였다면 나는 아직도 와인이라는 건 사치, 와인이라는 건 허세 라는 오해를 가지며 살아갈 뻔 했다.
사카모토상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말해야겠다. 나의 와인 세계에 눈뜨게 해줘서 고맙다고, 우리집에 놀러와서 와인 한잔 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