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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17. 2016

터키여행 (feat. wine)

터키에 와인이 있다구? 

때는 2008년 여름, 터키여행에서 와인을 만났다. 솔직히 터키에 와서 와인을 마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행의 루트는 친구가 짜고 나는 거의 관광객 수준으로 따라 다녔기 때문에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이였다. 


정현이는 바이블처럼 들고 다니는 론리 플래닛을 보며 말했다. 

"봄봄아, 근처에 쉬린제라고 와인 산지가 있데.."

"와인산지? 터키는 이슬람 국가 아니야? 술 마시나?"

"터키가 옛날에 동로마 였데, 로마군이 주둔하며 포도도 키웠나봐 그래서 여기가 포도 산지로 또 와인으로 유명하데~ 한번 가보는 걸 추천한데."

"그래? 와인이 궁금하기도 하고 마셔보고 싶기도 하고 가보자~!!"


2008년 학생때는 와인의 '와' 자도 모르던 시절이였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뭐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흔쾌히 쉬린제로 가자고했다. 


쉬린제는 정말 이쁘고 아름다운 마을이였다. 기대를 안 했기에 더 큰 재미가 있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 건물이 아기자기하고 이쁘던지 여행의 끝판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정말. 

나는 기분이 들떠서 정현이에게 말했다. 

"여기 잘 온것 같아~"

"응 와인으로도 유명한데, 올리브로도 유명한 도시야. 여기서 와인이나 올리브를 많이 사가지고 간데."

"뭐, 내가 요리할 것도 아니고 와인이나 한번 구경하자"

우리는 이 조그맣고 아름다운 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바닥은 돌바닥으로 둘러 싸여 있고 건물들도 돌로 건축되어 있어 우리네 콘크리트 아파트처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과 녹아드는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길을 가만히 걷고 있자니 오히려 이 시간이 너무 좋은 것이 아니라 아쉬워 지기 시작했다. 마치 너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한입 한입이 맛있지만 너무 빨리 내 입속에 털어넣어 아쉬운 것처럼.. 

온 동네가 와인을 파는 건 아니였다. 와인을 파는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을 가니 사람들이 왜이리 친절한지, 이 마을 특성인지 아니면 세일즈인지 모르겠지만 상냥하게 웃어 주신던 그 눈 웃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진하다가 한 가게로 들어 섰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은?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웃음에 우리는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사실 짐이 늘어나는걸 극도로 싫어해서 (여행다니면서 무거운게 싫음) 와인은 구경만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어느정도 녹아 드는 느낌이였다. 

"쉬린제는 와인으로 유명해요. 이리와요. 어서 이리와서 와인을 한번 마셔봐요"

가게는 온통 와인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심지어 카운터까지 와인으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어디선가 주섬주섬 와인을 꺼내시더니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온순한 양떼처럼 사장님 앞에 줄을 섰다. 

"이건 가장 잘 팔리는 와인이예요. 한번 마셔봐요. 마음에 들 꺼예요"

조그만 유리컵 같은 곳에 와인을 따라 주셨다. 우리는 한잔씩 받아들며 시음을 했다. 그때 당시는 와인을 즐기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털어 넣었다. 마치 어두 컴컴한 방에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와인을 들이켰을 때 내 마음에 불이 켜졌다. 

"오! 이거 맛있는데?"

정현이도 만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좋아. 굿굿. " 

정현이는 한잔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 표정을 읽으셨는지 다른 와인을 꺼내셨다. 

"이것도 한번 마셔봐요. 전에 마시는 것보다는 조금 더 비싼데 좋은거야."

이번 와인은 조금더 진한 향이 났다. 뭐랄까, 향긋한 그런 냄세? 향 자체만으로도 기분좋게 만드는 그런 신비한 매력이 있는 와인이였다. 

우리는 또 한잔씩을 마시며 기분이 들떳다. 

"이거 좋아요!! 괜찮네요."

난 연신 짧은 영어로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말 좋은 와인이예요. 쉬린제에서 직접 만든 와인이니까 좋을 수 밖에 없어요. 또 한잔 드릴께요."

그렇게 사장님은 연거푸 네잔을 우리에게 권했다. 나는 아! 이렇게 시음을 많이하게 해주면 장사가 되나? 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시음을 하게 해 주었다. 우리만 한 와인 반병은 마신것 같은데; 결국 나 두병 정우 한병 사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많이 사려고 한 것은 아니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이미 양손 가득 와인병을 들고 있었다. 

"뭐지? 우리 왜 와인병을 들고 있지? "

"그러게, 이거 뭔가 홀린 것 같아."

"그렇지? 그런데 맛있었어."

와인을 두병이나 가방에 담아서 묵직해 졋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병은 가족들이랑 마시고 한병은 동아리 사람들에게 마시고, 터키를 가보지는 못했겠지만 터키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뭔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가게를 나와서도 잔향이 입안에 가득 남아 있었다. 시음을 했던 와인들이 도수가 높지 않고 약간 단 맛이 돌아서 처음 와인을 맛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사게끔 만드는 그런 와인들을 많이 취급하고 있었다. 아마도 뜨네기 손님들이 많다보니 한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캐주얼한 와인들을 추천해 주신 것이리라. 아마 지금은 와인에 대한 입맛이 변해 추천해주는 캐주얼한 와인보다는 드라이 한 와인을 찾겠지만 아직도 터키에서 만난 와인에 대한 기억은 내 가슴속 깊이 남아 있어 힘들때면 열어보곤하는 소중한 나의 보물 상자다. 


오늘 갑자기 쉬린제의 와인이 다시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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