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공부하기 위한 술이 아니다. 일단 마시자.
와인 모임을 하다보니 와인을 처음 접하는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와인은 어려워요"
"와인 공부하려고 책을 샀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요"
"와인은 배워야 해요.."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와인은 공부가 필요한 술이라고 생각해서 산 책만 5권. 책만 사면 그 지식이 막 내것이 될것 같고 해서 책을 사지만 막상 사놓고 보면 집에서는 읽지를 않는다. 도대체 왜 산거지 ? 이 두꺼운 책을?
하지만 모임을 하게 되고 다양한 와인을 접하게 되면서 맛있는 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는 조금 더 와인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나의 와인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곳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모임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자주하시는 착각중 하나가 와인 모임에 나오면 와인에 대해 많이 배우고 알아갈 것이라는 고 생각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와인 공부는 책을 펴놓고 공책에 적어 가면서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격증을 준비하면 모를까...) 진정한 와인라이프는 먼저 마시는 것부터 시작이다. 좋은 와인을 접하고 이게 나에게 어울리는 와인인지 느껴보고, 좋았다면 또 다른 와인도 마셔보고 그렇게 나와 맞는 와인이 하나 둘 씩 늘어나게 되면 거기서 부터 시작 인 것이다. 처음부터 공부하지 말자. 서점에서 두꺼운 책을 사고 마치 암기하듯 와인을 '책'으로 배우려고 하지 말자. 일단은 와인을 마셔보자.
마중물이라고 아는가? 손으로 끌어올리는 펌프를 사용할 때 마중물을 부어 그 압력으로 물을 끌어 올린다. 와인의 시작도 이런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주변에 아마도 와인을 즐기는 지인이 한두명은 있을 것이다. 그 지인하고 일단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분들과 와인을 마셔보면서 '어떻게 마시는지' '어떤식으로 와인을 즐기는지' '어떤이야기'등을 하고 있는지 곰곰히 살펴보면 책으로 얻는 지식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워 가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와인 인생의 시작은 형 A 로 부터 시작 되었다. 형 A 는 모임에 나가서 와인에 대해 배워 왔고 우리와 즐기면서 그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그 덕분에 퇴근하면서 한잔하고 싶을때 소주 대신 와인을 더 즐겼던 것 같다. 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그 형 덕분에 와인은 신나게 즐길수 있었다. 나의 취미를 공감하고 서로 나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이 어렵지 않았고 또 즐길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 온 것 같다.
뭐랄까, 와인은 연애다. 썸타는 연애다. 이성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처럼 와인도 서서히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과 사귀면서 상대방에 대해 이모저모를 알아가게 된다. 그가 가진 생각이나 기호, 나이, 취미. 그 사람(그 와인) 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궁금해 진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어느지역 사람인지 (어느 대륙에서 나온건지) 몇년도 생인지 (빈티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떻게 즐기면 되는지) 그렇게 하나 둘 알아가고 친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만가지의 와인이 있고 또 와인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와인과 친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론으로만 접근하려면 그건 즐거움의 길이 아니라 고행의 길이 된다. 먼저 와인과 친구가 되자. 그리고 알아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와인을 알아가는 길. 급할 필요가 없다. 남녀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천천히 알아가는 그런 풋풋함. 그것도 와인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