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의 예감

by WineofMuse

201호

수현은 안방을 타고 내려오는 규칙적인 층간 소음이 101호와 301호의 단일화에 의한 박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분명 아래층에서 누가 올라가고 나서 나는 소리였다.

수현은 이런 절박한 긴장이 들면 아랫배가 조이듯 아프고 뾰족한 방귀가 새어 나오는 습관이 있었다.

"뾰복"

내 방귀가 아닌 남의 방귀처럼 지저분한 냄새가 났다.

"싫어……."

망측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는 사이 소음도 박자가 느려지는 듯했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움츠러든 어깨가 그제야 내려왔다.

발소리가 나면 반드시 현관문 구멍에 눈을 들이밀고 있을 생각이다.

오늘은 반드시 꼭! 확인하리라.

"띠리리 리리 링"

괜히 이 빌라에 누군가 있다는 걸 들킨 마냥 심장이 쿵쾅대었다.

삼성에서 만드는 기본 벨소리가 지겨워 언젠가부터 그 밑에 있는 멜로디로 바꾸었지만

그건 실수였다.

기본 벨소리 이외의 다른 벨소리를 쓰는 사람은 이 빌라에 수현 하나뿐이었다.

수현은 혼자 수사망이 좁혀져 오는 것 같은 두근거림을 안고 얼른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꾸었다. 스팸 광고 전화였다.

이내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났지만 멀어져 가는 소리였다.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게 1층인지 지하 1층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도 확인이 되지 않았다.

“아이씨.. 놓쳤네..”

“분명 뭔가 있어...”

수현은 1층 박씨와 3층 미정아줌마 사이에 흐르는 뭔가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다.

수현의 예민한 작가적 촉이 발동한 것이다.

여자의 그 미묘한 예감이나 촉을 수현은 잘 믿는 편이다.

비가 올 것 같은 느낌과 눈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을 수현은 알고 있었다.

기온과 날씨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석양과 일출의 차이만큼 희미하고 미묘한 차이를 글로 쓰고 표현해야 하는 작가라는 직업이 수현에게 벅찬 이유이기도 했다.

수현은 자신의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의 경험이 자신에게 더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를 서울에서의 시간이 수현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은 날씨가 변할 것 같지 않은데도 기분이 안 좋았다.

이별하기 좋은 날씨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았겠지만 그런 꿀꿀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 산책이나 가자”

“조각 모으기 하러 출동”

허탈해진 수현은 고기와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가급적 목줄은 바짝 잡는 습관이 든 터였다.

3층 여자가 낡은 차를 광이 나게 닦고 있었다.

차 상태를 보아하니 카푸어는 아닌거 같은데 차는 왜 저리도 열심히 닦는지 모를 일이다.

별로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은 인상이다.

수현은 관상도 꽤나 보는 편이라 이번에도 직관을 믿기로 했다.

빌라 뒤쪽의 언덕을 두르는 둘레길 반시계 방향으로 돌 계획이다.

그쪽 방향은 공원이 잘 조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돈의 힘이었다.

이 가파른 언덕위에 이렇게 크고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질줄 몰랐다.

서울에서 이만큼 높고 경사진 고도는 야경을 아우를 수 있다는 장점으로 탈바꿈되었다.

“하긴 다들 차가 있으니…….”

수현도 20살이 되면 모닝 정도의 경차는 당연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다.

막상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어보니 급격히 체감이 되었다.

“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 대단한 거였구나.”

섣부른 기대로 성급하게 따둔 면허는 수년째 반짝이며 지갑에 고이 잠들어 계셨다.

얼마간 산책을 하고 볕이 좋은 조각 공원에서 잠시 머물 때였다.

고기도 조각 마다 나름 표식을 남기느라 바빴다.

수현은 이걸 ‘조각 모으기 하러 가자’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혼잣말을 고기는 영특하게 잘 알아듣기도 했다.

어느 꼬마가 소리쳤다.

“앗 엄마 우리 콩이다!!!!”

“콩아!!”

아이가 달려와서 고기를 안았다.

수현은 직감했다.

“아.. 주인이구나...”

고기도 반가운지 짤땅막한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었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현의 오랜 작가적 직관에 의하면 아이엄마의 표정은 대략 다음의 감정이 뭍어나왔다.

“당혹, 죄책감, 외면, 걱정, 분노” 이정도가 적당히 버무려진 표정이다.

아이의 엄마는 말했다.

“어머 죄송합니다.”

“저희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와 정말 많이 닮았네요!”

“악!! 아냐 엄마 얘 콩이 맞아!”

“콩이야 얘 콩이라고!!”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는 이 답답한 상황에 어떻게든 강아지의 태생에 대한 주장을 해볼 터였다.

엄마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저희 강아지와 닮기는 했지만 아닐”꺼”에요.”

“죄송합니다.”

“가자 민찬아”

“사과드려”

“우리 콩이 맞다니깐!! 엉어어엉”

“가아!! 집에 가서 이야기해 민찬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으아아아앙”

다급히 멀어지는 아줌마의 발걸음과 질질 끌려가다시피 걷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멀어졌다.

아줌마와 아이는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후문 안으로 들어갔다.

수현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그러지듯 어색한 웃음으로 허허거리며 당혹해한 본인의 모습이 거짓스럽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고기가 유기견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 만큼은 고기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졌다.

고기가 어떻게 자신의 집에 왔는지와 그간의 사정이 한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원하니 쉽게 강아지를 분양 받아 선물로 준게 뻔했다.

강아지를 패션 소품이나 집안의 인테리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새 아파트로 입주하고 보니 강아지와 함께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뒷산 산책로에 강아지를 유기한게 뻔했다.

혼자 떠돌던 고기는 백조빌라 수현의 집에 우연히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오히려 수현이 홀가분하고 감사했다.

수현에게도 이제 고기가 자신과 함께할 강아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기는 등록도 안 되어 있었고 목에 표식도 없었다.

지나다니며 벽보가 붙어 있나도 보고 유기견을 찾는 홈페이지도 들여다보았다.

당연히 주인이 있다면 잃어버린 강아지라면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찾아보았던 시간이었다.

혹여 라도 주인이 덜컥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가 탁 소리를 내며 풀렸다.

그렇게 고기는 수현의 완전한 가족이 되었다.

“이별하기 좋은 날씨같은 직감 같은 개소리하고 자빠졌구나.”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다.

“고기야 너 성이 콩이 었네?”

“그럼 콩고기 하자. 그럼 되었네. 역시 우리 고기 나랑 궁합도 좋고~”

“누나랑 평생 살자!”

“고기야 출동이다.”

수현의 마음은 새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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