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미정과 정씨의 집
미정의 남편 정씨는 키가 멀대 같이 크고 덩치가 좋았다.
할머니들의 표현대로면 신수가 훤했다.
정씨는 항상 아침 일찍 출근했고 저녁 늦게 들어왔다.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는 1톤 냉장 트럭을 몰고 다녔지만 빌라 주차장안으로는 트럭이 들어올 수 없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어 두고 한참을 걸어 올라왔다.
흑석동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벌써 동쪽 1차 구획은 정비가 완료되었고 고층 아파트가 거의 완성되어 갔다.
흑석동은 비만 오면 물이 고이는 동네에서 이제는 전직 대통령도 살고 유명 연예인도 사는 동네가 되었다.
토지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타지로 훌쩍 떠나거나 몇몇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가 새로운 아파트로 다시 입주 하고는 했다.
정씨의 직장인 정육점은 인터넷으로 고기를 파는 업체였다.
김사장은 인터넷 초창기부터 작은 정육점으로 시작해 온라인으로 고기를 팔아 유명해진 사람이었다.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사람이었다.
시장에 있던 작은 정육점은 시간이 흘러 공장을 짓고 경기도로 확장 이전했다.
초창기 맴버인 정씨도 출근지가 바뀌었다.
사장은 월요일 아침마다 직원들을 향해 비전을 공유하고 미래를 함께 하자며 떠들었다.
그 회사가 창업할 때 초창기 멤버로 함께 시작했지만 정씨는 여전히 백조빌라에 살고 있었고 김사장은 곧 흑석 뉴타운의 최고층 아파트로 입주한다.
정씨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아버지는 자질구래한 사업을 하며 그런 정씨를 끝까지 도와줄것처럼 굴었지만 등록금 한푼 보태주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는 4년동안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로 무려 4,000만원의 빚이 생겼다.
편의점 알바를 2개 하며 편의점 폐기 음식으로 버티며 4년을 버텼다.
4년 동안 대학 인근 모든 편의점의 야간을 한두번쯤은 책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손님들은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몇 달사이로 다른 편의점 조끼를 입고 있는 정씨를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저 아래 편의점에 아저씨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거 같아요.”
“그거 저에요.”
어느날 아버지는 지인의 소개로 레미콘 사업을 하신다며 레미콘을 어디선가 헐값에 세대 구입해왔다. 정씨의 이름으로 사업자를 잠시 내신다고 하였다.
어느 틈엔가 정씨는 한 번도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돈 8,000만원이 빚으로 얹어졌다.
그런 아버지는 틈만 나면 전화해서 정씨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너 차 필요하지 않어? 여기 아저씨가 코란도 한 대가 남는대 그냥 가져가.”
“기름은 내가 공짜로 넣어줄게.”
“아빠... 정신차리고 제발 나 빚좀 까줘.”
“그 차 팔아서 세금 좀 내주면 안돼?”
“어..엉.. 그거 좀만 기다려봐 내가 세달안에 정리해줄게.”
그렇게 세달이 여섯달이되고 한해가 가고 두해가 갔다.
대학 졸업 후에 아무리 일을 해서 이자를 갚아내고 덜어내어도 원금은 줄어들 기미가 안보였고 날이 갈수록 오히려 매달 뚱뚱해졌다.
신문사 광고 프로모션 파트에서 일을 할 때 미정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나왔다.
할아버지가 된 정씨의 아버지는 손주를 본다는 생각에 기쁨에 차올랐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큰 전동 자동차를 선물해 준다며 큰소릴 치셨다.
빌라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오래된 SUV의 트렁크를 여셨다.
“짜잔! 할애비가 우리 서윤이 좋아하는 빠방이 사왔다!!허허허”
커다란 상자에는 커다란 날개가 힘차게 펼쳐진 마크가 보였다.
위풍당당한 그 로고는 박스의 여기저기 크게 프린트 되어 있었다.
그 날개는 그 동안 쌓여왔던 정씨의 분노에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정씨가 자신을 도와 장난감 자동차 상자를 내려주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를 밀치고 전동 자동차 박스를 확 낚아채 언덕 아래로 힘차게 던져 버렸다.
“아빠 제발 작작 좀 해!!!”
어안이 벙벙해진 할아버지와 가족들 ......
“이눔 새끼가 어디 애비한테..”
예전처럼 할아버지의 손이 올라왔다.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일 심산이셨을 터이다.
허공을 가르는 할아버지의 팔을 가볍게 피했다.
정씨는 고민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버지를 한 대 후려 치고 싶었다.
어떻게 때릴지 수년 전부터 고민고민해 두었던 미리 짜둔 시나리오 대로 때렷다.
아마도 언젠가는 한번 겪을 일이었고 아빠는 언젠가는 한번은 반드시 쳐 맞아야 했다.
“왼손으로 명치를 한 대 때리고 숨이 턱 막혀 고개가 앞으로 숙여질 것이야.”
“그때 머리를 잡고 오른다리를 넣고 걸어서 바닥에 넘어뜨린다”
는 계획이었다.
원래는 더 잔인하게 때려주거나 몽둥이 같은 기타 사물을 배치해 보았으나 문학도를 꿈꾸었던 자신에게 너무나 세밀한 묘사는 하지 않는게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좋았다.
끝없는 망상은 끝끝내 결국은 아버지를 죽이는 파국으로 엔딩을 맞이하곤 했다.
가족들 때문에라도 애비를 죽인 패륜아가 되어 신문에 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정씨는 아주 큰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머리와 허리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폭력을 행사해야 했다.
“아이고 아이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맞은게 분하고 원통했는지 한참을 끅끅 거리며 길에 앉은 채 우셨다.
며느리와 손주 앞에서 망신을 제대로 당했다.
본인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처량한 몰골이 본인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며느리 미정은 가방에서 얼른 물티슈를 꺼내어 먼지를 털어드리고 일으켜 드리려 했다.
“아버님 일어나셔서 이러지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세요.”
며느리의 팔을 뿌리치며 그길로 내려간 정할아버지는 자신의 레미콘 사업을 정리하셨다.
아들에게 맞았다는 사실도 부끄러웠지만 손주가 태어난 마당에 아들의 빚이 산더미인데
그걸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수년간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었다. 뻔뻔했다. 너무나 뻔뻔했었다.
지방으로 내려가 원래의 전공을 살려 전기 쪽 공사인력으로 막일을 하시며 정씨의 빚을 깍아 나아갔다.
다만 얼마라도 줄어드는 빚과 세금에 정씨는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어른들이 항상 이야기 하곤 했다.
“매가 약이다.”
분명한건 늙어버린 아버지에게도 그 약이 통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아빠처럼 살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죄송하다는 문자를 아빠에게 보냈다.
답은 없었다.
분양가만 10억이 넘는다며 중도금 걱정을 하던 김사장은 어느날 벤틀리를 몰고 나타났다.
그 으리으리 하고 압도적인 실물을 정씨는 처음 보았다.
잡지나 인터넷에서나 보던 모양과 실물은 현격한 차이가 났고 그 고급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시트의 그 보드라운 가죽은 어린 송아지 한 마리의 가죽을 통째로 벗겨 가공한다했다.
모기가 가죽을 뚫지 못하게 고산지대에서만 자라게 하고 좋은 풀만 먹여서 이렇게 시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박음질 한땀 한땀 다 수작업인지라 앉았을 때 그 안락함은 말할 수 없이 포근했다.
야들 야들한 것이 아기 피부같이 보드라웠다.
작업복을 입고 여기에 앉는건 큰 실례인 것 같아 얼른 나와버렸다.
천장의 벨벳과 다양한 옵션은 차를 좋아하는 정씨가 꿈꾸던 바로 그 이상의 옵션이었다.
“이래서 다들 좋은차 타지..”
차 조수석에 잠시 올라본 정씨는 나직하게 말했다.
김사장이 부럽기도 하고 살짝은 뿌듯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함께 고기를 썰던 김사장이 이런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자신의 성공인 냥 뿌듯했다.
대기업 정모 회장과 같은 모델이라는 그 차는 김사장이 입주한다는 아파트 분양가의 반절 정도 되는 금액의 차였다.
김 사장과 어찌 되었든 같은 하늘 아래 비슷한 높이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김 사장의 부엌 싱크대의 작은 창문으로 지긋이 보면 저 멀리 정씨의 집이 있는 백조 빌라가 보였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김사장이 그토록 성공을 거머쥔 사이 정 씨는 무얼 했나하는 자책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정씨 또한 안 해본일이 없었다.
작가를 지망했지만 당장의 생활을 위해 출판사 직원부터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신문사, 광고 이벤트 프로모션 일까지 해보았다.
그나마 적성을 살려서 곁가지로 언제든 본업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을 했다고는 했지만 다양한 관련 직장을 다녀보고야 자신에게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아가며 쓴 글들은 알맹이가 없이 온통 껍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쳐박아 둔지 오래였다.
좀먹어버린 시간은 딸린 식솔이 늘어갈수록 정씨의 어깨를 무겁게 눌렀고 이제는 못이룬 꿈보다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해 가고 있었다. 순리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런 정씨에게 동갑뻘인 김사장의 큰 성공은 잔잔했던 정씨의 열망에 유조트럭을 빠뜨린 격이었다.
정씨는 아파트 청약을 위해 모아둔 1억 5천만 원을 아내 미정의 허락도 없이 장외 주식에 올인했다. 틈틈이 주위의 동료들이 주식으로 솔솔하게 재미를 보는 것을 봐오던 터였다.
동료들의 작디작은 흥망을 어깨 넘어로 봐오던 정씨는 핵심은 시드머니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해봐도 승패의 열쇠는 결국 시드머니였다.
10%를 먹더라도 1,000만원의 10%와 1억의 10%는 그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10원 한 장 아까워 하며 아내 미정과 살림을 꼼꼼하게 꾸려온 정씨였지만 실행할때는 과감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도박판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다.
“그 판에서 호구가 누군지 안보이면 자신이 호구다.“
모든 이들의 괜찮은 시작이 그러하듯 정씨는 시작하자마자 4시간만에 1,200만원을 벌었다.
정확하게는 땃다.
수만명이 같은 판에 앉았고 정씨는 침착하게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정씨는 크게 기뻐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냉철하게 계산을 해보았다.
이정도 페이스로 잃고 따고 해도 두세달안이면 동네의 새 아파트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것도 현금으로 딱 한방에 딱! 대출없이 딱! 가능해 보였다.
정씨는 매운 가글로 뇌를 씻어낸 듯 명쾌한 기분이 들었다.
개안이 된 듯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눈 뜨이고 이 높은 고도의 빌라로 자신을 데려온 운명에 숨겨진 모종의 뜻이 있으리라는 해석이 들었다.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코뚜레가 단단히 꿰였다.
정씨는 다음날 그 다음날도 일은 뒷전이었고 틈나는 대로 휴대폰을 바라보며 주식투자에 열을 올렸다.
손질한 고기를 저울에 올려 나오는 고깃덩이의 kg도 시세로 보였다.
어느날은 200만원도 벌고 어느날은 400만원도 벌었다.
얼마간의 돈을 잃는 날은 밤늦게까지 미국 시황을 들여다보고 세계의 경제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달을 꼬박 일을 해도 세금 떼고 연금 떼고 나면 급여통장에 280만원이 가까스로 찍혔다.
특근에 잔업을 더해야 350만원 가량이 찍힌다.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하루에 몇시간 안에 클릭 몇 번 손짓 몇 번으로 벌게 되니 이 좋은걸 왜 이제야 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드디어 신이 나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을 내려주시는 구나!“
정씨는 꿈꾸었던 작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지적 시점으로 섬세한 감성을 담아내던 손가락으로 시황과 숫자들을 주물렀다.
차가운 작업장에서 내장과 살코기를 분리해내고 도륙내는 천한 일을 할 팔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날카로운 칼과 철망으로 싸여진 장갑. 피투성이가 된 앞치마 차가운 냉장 작업장에서
늘 땀을 뻘뻘흘리며 소와 돼지와 닭과 사투를 벌였다.
그 피땀 어린 현장에서 하루 평균 10시간을 일년 내내 일해도 급여는 별반 다를게 없었다.
사장의 배려로 자신은 납품용으로 쓰이는 1톤 냉장 탑차를 타고 출근했지만 사장은 6억이 넘는 벤틀리를 타고 출근했다.
같은 출근길을 오가며 정씨는 유독 사장의 벤틀리가 자주 눈에 띄였다.
벤틀리 주변으로 널찍하게 차들이 가까이 가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
사장도 아마 그런 정씨가 눈에 띄였을 것이다.
냉장 탑차의 옆면에는 자신이 일군 회사의 상호가 큰지막하게 프린트 되어 있었으니까.
정씨는 벤틀리보다 한단계 더 윗급의 차를 타고 김사장을 내려다 보는 꿈을 꾸곤했다.
이제 시간 문제였다.
이렇게 인생이 바뀌는구나.
정씨는 벅찬 가슴에 눈물이 살짝 앞을 가려 앞이 흐려졌다.
차를 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동네 입구의 큰 시장을 들렀다.
“한우로 등심 2근 썰어 주세요.”
“어 거기 말고 거기 위쪽으로 네네 거기”
고기집 사장님의 눈빛이 ‘이 양반 고기 좀 아는 양반이네“ 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육회도 한근 주시고.. 꾸릿살이요. 네. 그거 그리고 갈빗살도 한근 주세요.”
국거리도 한근과 제육거리도 두어근 삿다.
1층 박씨네 한테도 반찬거리 하라고 쥐어주면 고마워할 것이었다.
전문 분야인 고기를 고르는 정씨의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마침 토요일 오후였고 1층이랑 오랜만에 한잔 하는 날이다.
오늘은 1층에게도 장외 주식에 대해 일장 연설을 토해낼 계획이었다.
질 좋은 한우 1등급을 사서 오르는 정씨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역시 남이 썰어준 고기가 최고다.
3층의 떠들썩한 소리가 어쩐일인지 정씨 아저씨의 웅변대회장으로 변해있었다.
수현은 1시간 넘게 정씨 아저씨의 강의를 강제로 들으며 지쳐가는 중이었다.
장외 홈런은 들어봤어도 장외 주식은 처음이다.
아무튼 둘 다 홈런을 치면 점수가 나고 선수는 잘산다는 내용은 동일했다.
“야구 선수도 좋은 차 많이 타잖아.”
“포르쉐도 타고 페라리도 타고 BMW도 타고 공도치고 술도 먹고 사고도 치고.”
어느새 술판은 야구 이야기로 흥겨워졌고 각자가 응원하는 팀의 응원가를 불러 재꼇다.
“최애강 에에엘지!! 으쌰으쌰!”
“우리는 두우산이닫아아이”
카페로의 도피가 절실했다.
“고기야 출동이다.”
수현은 카페의 창가 1인석에 앉아 빌라를 바라보았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고 환한 빌라의 3층은 그 어느때보다 흥겨웠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보였다.
그 행복이 영원할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현의 예감은 틀렸다.
정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색을 드러낸 주식시장은 정씨의 불어나는 원금을 마냥 오래두고 봐주지 않았다.
발톱을 드러낸 주식 시장은 탐욕을 부리는 인간의 머리를 한방에 딱! 후려치고 장기를 홀랑 털어 먹어버린다.
끝끝내 포기하지 않은 인간의 손톱 끝의 때까지 오독오독 맛있게 씹어 먹고 쪽쪽 빨아먹어야 직성이 풀리고는 한다.
한을 풀 듯 신나게 칼춤을 추고 난 괴물은 예전의 푸근하고 너그러운 시장으로 다시금 가면을 쓰고는 했다.
주식 시장은 초심자를 맞이 하기 위해 초심을 다졌을 뿐이었다.
그 초심다지기의 한가운데 정씨도 같이 휘말렸을 뿐이다.
정씨는 놀이공원에 놀러온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롤러코스터를 탓다.
올라갈때는 환호를 지르지만 내려갈때는 비명을 지르게 된다.
다시 올라갈 날이 분명 있겠지만 다 내려왔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서 이 놈의 롤러코스터는 또 한번 내려간다.
그 속도가 어지간해서 내장의 간과 양옆의 신장이 위기감을 느낄만큼 울렁이며 낙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롤러코스터의 반동에 따라 양옆과 위로 우수수 낙엽처럼 쓸리듯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올라가려나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또 털털거리며 낙하한다.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누구나 이 패턴에 휘말리면 난도질당한 다진 고기처럼 낱낱이 다져진다.
그거 하난 참 공평했다.
정씨는 본인의 처지를 빠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납득은 멀어보였다.
이런 상황을 믿을 수 없었지만 회복을 못할거라는 절망은 하지 않았다.
정씨는 자신에게 주식 선수로써의 기본기와 멘탈 그리고 ‘실력‘이 있다고 믿었다.
“인생은 한방이야.”
“안타 백날 쳐서 뭐하나.”
“홈런 한방에 역전가자.”
“쓰리런 하나에, 연타석으로 만루 홈런 딱 요고 2개만 쳐도 7점이야.”
“타석에 한번만 제대로 서 보자.”
정씨는 서둘러 마이너스 대출과 3금융도 모자라 고금리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받을 수 있을 만큼 대출을 풀로 받고 퇴직금을 정산받기 위해 퇴사를 했다.
다시 총알을 한가득 모아 도전했지만 정씨의 총알은 이전과 다르게 너무나 빠르게 소진되어 갔다. 정씨는 조급했다.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미수거래와 상장폐지 직전의 개잡주까지 손대고 말았다.
순식간에 반대 매매를 당하거나 상폐되어 사라지는 주식쪼가리에 정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순식간이었다.
미정은 총 6억의 빚을 고백하는 남편의 머리를 힘껏 발로 찻다.
격투기로 치면 상대가 죽으라고 차는 사커킥이었다.
손에 집히는 모든 물건으로 때렸다.
같이 죽자며 달려들어 옷을 찢고 따귀를 때려도 이 남자는 묵묵히 맞고 있을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며 백조 빌라에서 흘러나오는 고함과 비명소리에 정씨가 사고친 내용을 죄다 들어볼 수 있었다.
정씨 아저씨의 소문은 누구보다 빠르게 동네를 돌았다.
미정은 "돈 때문에 사람 버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다 포기하고 죽고 싶었다.
정씨가 일하던 사장이 입주한 그 아파트가 좋겠다.
거기 27층에서 떨어지면 확실하게 죽을 수 있겠지.
미정은 남편의 열등과 작금의 현실이 어디에서 기인한것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의 피같은 1억 5천을 손댔다고 고백했을 때 말렸어야했다.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던 것도 그 소고기와 2억을 넘어가는 남편의 핸드폰에 찍힌 잔고 때문이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살라하고 나 하나만 떨어져 죽어야지.”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빚쟁이 생활도 더 이상 안해도 될것이었다.
이 남편새끼는 지 애비처럼 안산다더니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10년을 졸라매고 빚잔치를 하며 살았더니 덤으로 빚이 6억이 더 생겨났다.
자신이 얻어먹은 거라고는 그 소고기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막상 뛰어내려 죽으려 맘먹으니 둘째가 생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같은 그날의 소고기가 문제였다.
“씨바알!!! 엉어엉”
미정은 소리쳐 밤낮을 울었다.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고 마음껏 취한 그날이 원망스러웠다.
소고기 한근에 인생을 팔아먹은 기분이 들었다.
잘먹고 잘 쉬어야 하는 산모에게 스트레스는 더 큰 문제였다.
8달 반만에 세상에 나온 둘째는 스트레스와 불안장애로 젖을 먹이지 못했다.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던 미정이었다.
예정보다 한달 반 일찍 세상을 본 아이는 심장쪽에 문제가 있었다.
미숙아가 흔히 겪는 문제라고 의사는 안심시켰지만 미정은 심장분야에 권위가 있는 큰 병원을 찾아나서야 했다.
1박 2일 동안 온몸에 기계 장치와 선을 주렁주렁 달고 꼼짝없이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보며 미정은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진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이 어린것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내야 했다.
그나마 정씨가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가 하시는 작은 전기공사 사업체를 도와 같이 하기로 하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과거 정씨의 아버지는 지방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후 정씨와 미정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었다.
국세청의 세금빚을 갚고 아들의 학자금 대출까지 다 갚으며 아버지는 강해지셨다.
작은 공사 업체를 설립하시고 관공서 입찰로 꾸준히 공사를 수주하셨다.
꼼꼼하고 열심히 하는 아버지의 성실함에 공무원들도 나름 힘을 써 추천을 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터로 내려온 아들의 축 쳐진 어깨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아이들을 보러 한달에 한두번은 상경했지만 부부 사이의 그 냉랭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담배도 끊고 착실히 회사를 다니며 자격증 공부를 한건 참 다행한 일이었다.
마음에 큰 구멍이 난 미정은 엄마가 남기고 가신 인천의 작은 땅을 형제들과 싸우고 어르고 설득하여 2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짓고 빠르게 입주를 시켰다. 친정아버지의 집을 팔고 땅을 담보로 어렵사리 건물을 지었다.
월 800씩 월세가 나왔지만 매장 한군데라도 월세가 밀리기라도 하면 그 달은 보험대출을 끌어다 써야 하는 불상사가 뒤따르곤 했다.
더 이상 받을 대출도 없었다.
장사가 안되어 마카롱 가게에서 월세가 10달째 안 들어오고 있다.
남들은 건물주라고 추켜 세워주지만 정말 허울뿐인 건물주다.
아이둘을 키우며 어디가서 일을 하기도 만만치 않았고 친정 아버지와 사는건 싫었다.
갓난아기가 있어 어디 맡기지도 못했다.
아이들도 벅찬데 아버지 수발까지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아버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후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아무리 손주가 이쁘다 한들 어린 두 아이를 할아버지가 돌보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땅주인인 아버지께 매달 이자겸 사용료로 200만 원을 드리고 사채와 회생 신청해둔 이자와 원금등으로 500만 원 가까이 나갔다. 100만원 남짓 남는 돈과 남편이 보내오는 돈을 합쳐 이것저것 메꾸고 아이들 먹이고 입혔다.
남편 용돈에 점심 식대를 주고 나면 뭐하나 남아나는 것이 없이 팍팍했다.
남편인 정씨는 낮에는 근무를 하고 밤에는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밤새도록 전기공사 입찰건을 둘러보며 공공입찰에 메달렸다.
입찰을 잘해서 따기만 해도 2% 정도 되는 커미션을 받으니 그게 어디랴.
그마저도 아버지의 회사이니 이번에는 100만 원만 줄게 200만 원줄께 이러면서 깎아내기 일쑤였다.
사정 뻔히 아는 양반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까맣고 풍채 좋던 얼굴은 더 까맣고 얇게 마르고 말았다.
어쩌다 올라오는 일요일 저녁이면 그나마 술이라도 한잔 할 기회가 생겼고 1층 101호 가족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곤 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늦은 시간까지 술판이 이어졌다.
계절도 바뀌고 시간은 어느정도 흘렀다.
1층 박씨가 올라가며 이야기한다.
"2층 아가씨도 부를까?"
"됐어 뭐하러 괜한 일 만들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쇼."
1층 경숙이 뜯어말렸다.
그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문 앞에서 들렸다.
어찌 되었던 1층과 3층 사이에 껴있는 수현은 짜증이 치밀었다.
“오늘도 시작이구나..”
아이들이 쿵쾅대고 어른들이 왁자지껄 하게 떠들었다.
따지고 들어 봐야 득 될 게 없었다.
그 집 사정을 뻔히 아는 수현은 그 시간을 온전히 비켜 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위아래 두 집이 그러는데 처녀 혼자 어떻게 배겨내겠는가.
밤늦게까지 쿵쾅대는 소음을 듣느니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3층의 불빛이 보이는 지척의 카페에서는 3층의 소란이 끝나길 염탐하며 기다리는 게 가능했다.
어찌 되었든 1층도 3층도 아이들 재워야 하는 시간 11시는 절대 넘는 법이 없었다.
카페 주인 아저씨와 괜한 이야기를 하며 고기와 함께 시간을 죽였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가 자욱한 밤이었다
카페에 죽치고 있던 수현은 피곤해진 걸음을 옮겼다.
오나타 2 뒤쪽 구석의 텃밭과 수풀 담벼락 사이 공간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한 명인 줄 알았는데 두 명이었다.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이 야밤에 뭐하는 짓들인지...
"방을 잡아라. 방을 잡아 아주... 쯧 부럽게시리..."
나지막히 부러움을 표현하며 수현은 2층으로 올라갔다.
이내 1층에서 문소리가 살짝 들리고 3층으로 올라가는 슬리퍼 소리가 빠르게 들렸다.
301호 특유의 문소리와 번호키 멜로디가 들렸다.
수현은 이내 그 뒷모습이 참 익숙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301호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