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2 혜정

by WineofMuse

b02호 에는 혜정이 살고있다.

혜정은 백조 빌라의 8가구 중에는 가장 해가 안 들어오는 안쪽 집에 살고 있다.

빛이 안 들어오는 지하방은 환기를 자주 안하면 반드시 곰팡이가 피곤한다.

환기를 위해 자주 창문을 열어보지만 곰팡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보다는 월세가 아주 조금은 저렴하다.

어두운 방의 혜정은 검은 구리빛 피부의 눈이 큰 미인 상이다.

하지만 방에서 도통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종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게임만 하며 살고 있었다.

밤에는 창문을 닫고 노래소리가 몇시간씩 흘러나왔지만 할머니들은 빌라의 누군가 뛰든 노래를 부르든 신경쓰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 부른다.

혜정은 은둔자이긴 했으나 외톨이는 아니었다.

게임 동호회의 회원으로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꽤나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물론 컴퓨터안의 가상 세계 안 이긴 했지만 여러 동호회의 여러 오빠 동생들과 다자연애 중이기도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한 번도 실제 얼굴을 보지 않고도 많은 연애를 하는 혜정이었다.

집밖을 나서지 않으니 날씬했던 과거와는 달리 살이 많이 찌긴했다.

혜정은 한국인 아버지와 흑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혜정이 아주 어린 어느날이었다.

아빠가 물었다.

“우리 혜정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응 둘다. 엄마 아빠”

“왜 엄마 아빠 둘다 좋아?”

“음... 엄마랑 아빠니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었다.

어느 차가운 건물앞에 엄마와 아빠는 마주보고 서있었다.

엄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혜정아...”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 ... 우아아아앙..”

무슨 말인지 몰라도 혜정은 직감했다.

이것이 굉장히 큰 슬픔이 담긴 이야기 라는 것을...

혜정은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밖에 없다.

아빠는 그래도 엄마처럼 집을 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딸아이를 집에 덜렁 혼자 두고 일을 다닐 수가 없었다.

이혼 이후 아빠는 혜정을 맡아줄 시설을 찾아 다녔다.

친척들은 피부가 까만 혜정을 모두 외면했다.

흑인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아빠를 친척모두가 말렸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 친척들 모두가 아빠와 혜정을 외면했다.

적당한 시설을 찾았고 한 달에 한번은 아빠가 꼭 찾아왔었다.

신발과 옷가지 몇 개와 간식거리를 가져오는 아빠가 자주 오지 않아서 미웠지만 반가웠다.

“아빠 나 언제 아빠랑 집에가?”

“응 조금만 기다려봐 아빠가 멋진 집 지으면 그때 혜정이 부를께! 그때 꼭 같이 살자.”

아빠가 짓는 다는 우리집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어지지 않았다.

반 년정도 꾸준하던 아빠는 언젠가부터 혜정을 찾아오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19살까지 살다가 홀로 퇴소를 해야 했다.

옷가지 몇 개와 신발 1켤레 통장에는 자립 지원금이라고 찍힌 500만원이 전부였다.

보통은 원아들이 자립하여 방을 구하라고 주는 금액이었지만 혜정은 도저히 그 큰돈을 쓸 수가 없었다.

같은 시설에 살던 언니들의 월세방에 생활비를 내고 같이 지내게 되었다.

식당일도 하고 주유소 알바도 하고 편의점 알바도 해보았다.

한달 벌어 한달 쓰니 돈이 모일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같이 지내는 언니의 친구가 양복을 멋지게 입고 왔다.

같이 지내는 4명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저녁을 돈까스로 얻어먹었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는 처음보는 사람이 있었고 동석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3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어떤 방식과 사업을 통해 성공과 부를 이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감명깊게 이야기를 들은 넷은 그 날로 그 사업에 뛰어 들었다.

합숙은 따로 할 필요없이 그 남자가 가끔 방으로 와서 합류했다.

그럴싸한 카다록을 가져와서 각자 달성해야하는 포인트와 계급도, 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을 만나 번듯한 인상을 주려면 우선 양복을 한 벌씩 사야했다.

때마침 그 능력 좋은 남자는 양복도 팔고 있었다.

나쁠게 없어 보이는 사업이었다. 자본이 없어도 되고 지인과 소개만 잘 해주면 큰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꿈같은 사업이었다. 편의점과 공장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일이다.

혜정은 그나마 있는 주변 몇 없는 친구들에게 사업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다.

친구 하나는 칫솔 한세트를 사주며 이야기 했다.

“이거 다단계야 조심해.”

“아냐 그건 나쁜 거구. 내가 하는건 다른거야.”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고 보니 혜정에게는 양복 한벌과 옥돌 장판 1개, 정수기 한 대가 남아있었다.

음이온이 발생하고 필터가 게르마늄으로 특수 처리되어 건강에 아주 좋은 물이 나온다는 정수기는 어쩐일인지 필터를 갈아끼우는 곳이 굳게 봉인되어 있었다.

혜정은 그렇게 세상에 나와 첫 계단을 한 칸, 단 한번 발을 디뎠을 뿐인데 지하로 굴러 떨어졌다.

유년 시절부터 혜정의 별명은 정해져 있었다.

깜씨, 연탄, 시커먼스, 검정고무신 등 세상의 모든 검은색에 연관된 단어들은 혜정을 한번씩 거쳐갔다. 교과서에 검은색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와도 아이들은 동시에 혜정을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혜정보다 약한 아이들은 때려 줄 수라도 있었지만 자신보다 힘도 주먹도 쎈 아이들에게는 덤볐다가 크게 맞기도 했다.

혜정의 양쪽 귀에는 이어폰이 들어가지 않는다.

귀의 양쪽 연골이 망가져 이어폰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괴롭힘과 놀림에 이골이 났지만 혜정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혜정보다 약하고 약점이 있는 친구들을 놀리고 무리를 지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자들은 은근히 혜정을 외국인 노동자 취급 하려했다.

선배 언니의 소개로 가는 터라 어느 정도는 사정을 알법한 상황이었다.

느글거리는 말투로 혜정의 아픈 곳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대학은 왜 안 갔나요?”

어린 나이의 혜정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안 간게 아니라 못 간겁니다.”

사실 친구들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하고 싶은 일도 이루고 싶은 꿈도 없이 송장처럼 지내왔다.

고아원이란 곳이 원래 그런곳이다.

먹여주고 재워 주기만해도 감지덕지한 아이들이 수천명인데 꿈이 어딧고 미래가 어디있겠는가.

혜정은 대학을 못간게 맞기는 했지만 아마 간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고아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포기 이다.

그래야 그 공간안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아주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혜정도 그렇게 아빠를 포기했다.

한때의 TV개그프로의 개그맨이 나와서 했던 멘트를 따라하며 혜정을 은근히 놀렸다.

“사장님 나빠요.”

사람들 입에서 그 특유의 발음과 억양으로 ‘사’짜만 나와도 부아가 치밀었다.

사장이 나쁜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빳다.

혜정은 사방에 널린 무례한 사람들이 지겨웠다.

어디를 가든 피부색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혜정을 참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놀려대었다.

이 공장 저 공장 전전하기도 지겨웠다.

그런 무례한 사람들과 더 이상 조우하기 싫었던 혜정은 어두운 지하방에서 게임 세상속으로 숨어버렸다.

혜정은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게임을 하며 개인 방송을 했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으니 캠은 켜지 않았다.

총을 쏘는 게임을 하며 노래를 불러 풍선을 받고는 했다.

인기는 크지 않았지만 나름 소수의 펜층이 있기는 했다.

그런 혜정이 유일하게 집밖을 나오는 시간은 방송을 마친 새벽 시간이었다.

야심한 새벽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을 하고 군것질거리를 사러 편의점으로 나가곤 했다.

빌라에 꽤 오래 산 혜정은 알고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야간에는 빌라 3층에 살고 있는 여자애가 알바를 한다.

사실 그 여자애보다는 키우는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한 번씩 가는 것이었다.

그 뚱냥이가 집앞 차위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창문을 열면 보이곤 했는데 어느날 뚱냥이가 사라졌다.

편의점에서 그 뚱냥이를 발견한 게 너무 기뻤다.

어느새 고양이는 이름도 생겼고 알바의 이쁨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고양이 이름은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얼룩덜룩 노랗고 통통했었는데 여자아이의 보살핌 덕분인지 풍채가 더욱 좋아졌다.

토요일, 일요일 새벽 3시 즈음 마다 출입문을 딸랑거리며 들어오는 혜정이 인지는 싫지 않았다.

특히나 호랑이를 너무나 예뻐 하는 혜정은 호랑이와 한참을 놀아주었다.

손님이 없어 무서운 새벽에 놀러오는 혜정이 반갑기도 했지만 매번 호랑이와 놀아주는 혜정의 말투와 행동이 참 순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혜정이 먼저 물었다.

“언니 우리 호랑이는 어디서 만났어요?

혜정은 인지의 어두운 인상이 어렵기도 했고 편의상 그냥 언니라 부르기로 했다.

인지는 혜정이 무심코 우리 호랑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뭔가 걸렸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그냥... 간택 당했어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혜정이 눈을 반짝였다.

호랑이의 간택 스토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네? 어떻게요?”

“이사 오고 얼마 안 있어서 집앞에 와서는 번호키를 누르더라구요...”

“누군가 싶어 한참을 봤는데 호랑이가 있었죠.”

“그래서 데리고 들어와서 같이 살아요.”

“네? 번호키를 누르고 호랑이가 들어와서 산다구요?”

“와아.. 나도 그런 호랑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혜정은 혜정 나름대로 호랑이가 자신을 간택하지 않고 인지에게 간 이유가 궁금했고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자신에게 왔었어도 잘 모셨을텐데. 하지만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빠르게 인정했다.

인지는 인지 나름대로 신선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주는 혜정이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고양이가 번호키를 눌렀다는 부분에서 뭔가 반응이 와야 했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혜정이 이상하게 보이는 인지였다.)

사람들은 인지와 한 두마디를 나누고는 누구나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화의 등을 돌리곤했다.

인지의 말투에는 항상 묘한 가시가 있거나 뼈가 있었다.

그 묘한 뉘앙스에는 보편적인 일상 속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인지는 자신 나름의 철학과 위트를 비틀어서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내 자신이 보통 사람의 대화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 여친 재경언니를 통해서 였다.

그런 인지의 말투를 하나하나 교정해주며 다정하게 인지를 안아주던 그녀였다.

인지의 투정과 변덕 모든 상처를 보듬어 주던 그녀도 시간이 지나며 그런 인지를 받아들이기 못내 지겨워 했다.

재경은 남자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래 혹은 연하의 여자아이들을 보듬어 주기만 하던 재경은 착한 오빠의 보살핌을 받아보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화장이 옅어지고 예쁜 꽃무늬의 옷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인지가 좋아하고 그려내던 케릭터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지는 그런 언니의 외모와 마음이 예전과는 다른 기운을 풍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남자의 존재를 알고 난 인지는 언니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보고 싶었다.

말이 헛나가도 한참 헛나갔다.

“남자랑도 자고 여자랑도 자는 걸레같은 년“이라고 말해버렸다.

“뭐?”

“친오빠랑 잔년이 그게 할 소리야?”

“아...”

실수였다.

인지를 위로해 주었던 그 언니의 고운 입에서 그 말이 나왔고 인지의 마음은 급속 냉동 되어 쩍 갈라지다 못해 터져버렸다.

마음을 열고 위로를 받기위해 연인에게만 말했던 심연의 비밀은 비수가 되어 날아와 심장에 꽃혔다.

언니는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았다.

인지가 한 말 또한 언니에게 비수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헤어져. 나가줬으면 좋겠어.”

“뭘 더 헤어질게 어딧어.”

더 단촐해진 짐을 챙겨 그길로 그 방을 나왔다.

그렇게 첫사랑은 조각 조각 찢어발겨졌다.

인지의 눈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 대신 마음속 돌 서랍장 두 번째 칸에는 피눈물이 흘러 흥건해졌다.

혼자 캐리어를 끌고 올라온 인지에게 평상 위의 홍할머니는 말을 건냈다.

“예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어요.”

“캐리어는 두고 구경하고 올래요?”

“... ...”

“여기 주차 되죠?”

무심한 말투의 인지가 재밋다는 듯 홍할머니가 눈웃음을 지으며 끄덕인다.

인지는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들쳐 매고 3층을 향했다.

세상에 인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은 없었다.

세상에서 딱 두 개만 빼고, 세상의 모든 집이 인지에게는 고향이었다.

엄마가 있는 집과 그 망할 재경언니의 방 그 두 개만 아니면 된다.

인지는 캐리어를 던져두고 가벼운 몸으로 고향인 대구로 내려갔다.

집 앞의 화분도 그대로였고 열쇠의 위치도 그대로 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못 보던 남자의 구두가 신발장에 몇 켤레 더 있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엄마는 인지에게 단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인지 또한 엄마에게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았다.

만약 부고 소식이 전해 진다고 해도 인지는 울 마음이 없다.

엄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지의 시체도 거두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해부용으로 기증하고 100만원 정도를 챙겨서 남자랑 놀러 가겠지?

“그래 그렇게 살아라.. 썅...”

헛되고도 근거 없는 지저분한 망상들이 군불을 때웠고 마음 속 돌 서랍장의 첫 번째 칸이 덜컹거렸다. 그만해야 했다.

현관 문 옆에 자동차키가 걸려있었다.

자신이 지내던 방을 열어 보았다.

모든게 그대로였다. 중학교 교과 중에 멈춰버린 책장은 쓰던 공책이며 필기구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그대로 있었다.

인지가 나갈 때 그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방은 그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꺼내올 과거나 의미 있는 물건 따위가 기억나지 않았다.

챙길 것도 없이 뒤돌아 나왔다.

아빠의 유품인 차를 훔쳐왔다.

아니다. 유언으로 보면 인지의 차였고 이제야 주인이 찾아가는 것이었다.

차는 어제까지 매일 운행한 듯 기름도 차있고 관리가 되어 있었다.

초 장거리 운전은 처음이다. 손을 덜덜 떨며 핸드폰 네비게이션을 켜고 서울까지 차를 몰았다.

보통의 운전자라면 4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인지는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오빠에게 운전연수를 엄청 많이 받았다.

오빠는 인내심을 가지고 운전 연수를 마치 전문가처럼 해주었다.

면허를 딴 후 처음으로 해보는 장거리 운전이었다.

12시간이 걸렸다. 비상등을 키고 인터체인지를 헤매고 경찰에게 두 번 정도 잡혔다.

뒤에서 수많은 차들이 빵빵대며 지나쳐갔다. 물한모금도 못마시고 화장실도 한번 안갔는데 몸이 버틸 수 있는건 극한의 공포와 긴장때문인지도 몰랐다.

백조빌라에 차를 주차 하지 못했지만 1층 박씨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안전하게 차를 댈 수 있었다. 사고 없이 안 죽고 도착한건 기적이었다.

박씨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온 인지는 긴장이 풀려서 내리 10시간 이상 잠만 잤다.

그 후로 한 번도 운행을 하지 않았다.

가끔 시동을 걸어줘야 배터리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가끔 차에 묻은 새똥을 닦아주거나 본넷을 퉁 쳐서 길 고양이들이 있는지 확인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 때고 방안에서 창문을 열고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담배를 태우며 핸드폰을 들여다 보던 정씨 아저씨가 무슨일인지 초조하고 잔뜩 화가나 보였다.

이걸 왜 여기다 세워 두냐는 듯 자동차의 타이어를 발로 찼다.

위에서 인지가 노려 보며 말했다.

“아저씨... 차 한번만 더 발로 차면 아저씨도 무사하지 못해요.”

“드르륵 탁”

“아... “

정씨의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창이 닫혔다.

애먼 소릴 하는 정씨.

“뭘 타지도 않으면서 여기에 대놔... 아주 지정석이여...”

빌라 사람들은 빌라를 오가는 중 밤이고 낮이고 차안에 귀신처럼 있는 인지와 눈이 마주쳐 화들짝 놀라곤 했다.

어느 날은 조수석에 어느 날은 뒷자리에 앉아있는 인지의 눈빛은 무었을 생각하는지 도통 모를 눈빛이었다.

백조빌라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평상에서 차를 마시며 신나게 떠들어 대도 인지가 3층이든 차안에서든 듣고 있었다.

지하 1층의 창문 사이로는 혜정이 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조빌라에 어디에나 인지가 있었고 어딘가에도 혜정이 있었다.

301호 미정 아줌마는 그런 인지를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박씨와 썸을 탈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오나타2 안에는 인지가 있었다.

혜정도 시커먼 창문 사이로 담배를 피우며 그 둘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둘은 공개된 비밀연애 같은 이상한 무대위에서 달달한 대사들을 속삭였다.

물론 관객이 둘이 있었지만 배우들은 관객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백조 빌라의 낮말은 인지가 듣고 밤말은 혜정이 들었다.

인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혜정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백조빌라에는 몰래 숨어 사람들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여자가 둘이나 있었다.

그런 인지에게 호랑이가 손님으로 온 것이다.

호랑이는 인지를 선택했고 지배하고 군림했다.

어느새 인지는 호랑이님을 모시고 수발을 들기 위해 일했다.

호랑이가 자신을 살려주었다고 믿었다.

이사를 온 수개월 후 어느날 저녁이었다. 인지는 저녁밥은 건너뛰고 목을 맬 계획이었다.

서울의 야경이 한켠으로 보이는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를 확실하게 살해할 계획이었다.

가는 곳마다 불화를 일으키고 잠수를 타던 인지는 더 이상 업계에 발 붙일 곳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몇 달 후에는 보증금도 다 날아가고 없어질게 뻔했다.

그런 인지에게 호랑이는 삶의 이유이자 구원이었다.

사실 호랑이는 인지의 오나타2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차위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화가 났겠지만 고양이는 괜찮았다.

햇볕이 좋은날 오나타2의 본넷이 뜨끈해지면 저녁 늦게까지 차 위에서 따뜻함을 즐기곤 했다.

그런 차에 인지가 타고 내리는 걸 몇 번은 보았을 것이다.

무슨 계시가 있었는지 통하는게 있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아마도 아빠가 보낸게 아닐까?

호랑이는 그런 인지가 걱정되었는지 번호키를 꾹꾹 눌렀던 것이다.

한 달을 잘 모시고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면 인지의 배를 꾹꾹 눌러주었다.

몰캉한 배를 호랑이가 꾹꾹 눌러줄때마다 인지는 삶에 대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기분이 들었다.

호랑이와 영원히 이러고 살았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인지에게 혜정은 인간 중에는 유일하게 기쁨을 주는 여자 사람이였다.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 하루만 오던 혜정은 호랑이와 더 놀기 위해 이틀간 오기로 한듯하다.

그런 혜정이 인지는 반가웠다.

평소에도 한 번쯤은 빌라에서 마주칠 법 했지만 둘은 한번도 마주치질 못했다.

뭘하는 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 사적인 질문을 할 정도로 친밀하진 않을 계획이 미리 수립되어 있어서 였을지도 몰랐다.

혜정은 신나게 호랑이와 놀고 이것저것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들고 편의점을 나섯다.

호랑이에게 인사하고 나가려던 혜정은 반쯤 열었던 문을 열고 다시 되돌아 왔다.

봉투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어 인지에게 주었다.

“데자와”

인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이해가 안가는 두 사람이 있다.

첫째는 엄마고 두 번째는 이걸 마시는 사람이다.

“일하다 드세요!”

“... 고맙습니다.”

밀크티의 고급스러운 맛과는 거리가 멀지만 참 묘하게도 꾸준히 생산되는 이 음료는

절대 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팔려나갔다.

세상에 왜 이게 계속 생산되는지 왜 계속 마셔서 없애는지 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편의점 서랍 밑에는 마시지 않은 음료가 쌓여갔다.

혜정도 그런 인지가 싫지 않았다.

팔토시를 하고는 있었지만 언뜻 보이는 팔목의 상처는 고양이가 만든 것 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깊었다.

사람들의 그 눈빛을 혜정은 잘안다.

"뚱뚱한 흑인이 우리 동네에는 무슨 일이지?" 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그 눈빛을 혜정은 너무나 익숙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일부 생각 없는 노인들은 그런 혜정이 들으라는 듯 이야기햇다.

“어우야 거멓다. 시커멓네“

“누고? 누가 검둥이었나 어?? 엄마가 아빠가.”

“아이고 츠자가 고생이 많네 썬탠했나? 와이리 까매?”

귀에 딱지가 아물지 않을 만큼 많이 들은 레파토리 들이다.

하지만 노인들의 때 뭍은 편견과 종잡을 수 없는 배려는 매번 새롭고 아프게 혜정을 괴롭히기 충분한 참신한 단어들로 조합되어 심장을 파고 들곤했다.

“씨발것들 다 뒤져 버렸으면...”

인지는 그런 혜정을 편견 없이 바라봐 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사실은 인지는 누군가의 외모나 그런 걸 판단할 만큼 세심하지 않았다.

여자이며 살집이 좀 있고 낮에는 안돌아 다니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우리 빌라에 산다 정도의 정보만을 표면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피부색에 대한 궁금증과 편견이 없는 인지가 혜정은 신기했다.

둘은 망가진 곳이 비슷한 영혼을 지녔다고 확신했다.

둘은 어느날 따로 만나기로 했다.

옥상에서 처음으로 시원한 맥주를 둘은 함께 마셨다.

“여기 시원하고 좋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좋은 곳을 혼자만 즐기셨네요~ 저 좀 불러 주시지. 히히”

“네 자주 놀러오세요.”

인지가 말했다.

“근데 언니 목소리가 엄청 좋네요.”

“아... 소시적에 노래 좀 했어요.”

“아...”

“다음에는 노래 들어보고 싶네요.”

인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자신의 공간과 마음속으로 초대를 한 것이었다.

인지는 요즘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자신의 인생에 호랑이와 혜정을 만나 후로 안정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더 큰 위안이 되는 사건도 있었다.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메일함을 열어 보았다.

오빠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대충의 내용을 축약하자면 이러했다.

인지의 오빠는 사실 친오빠가 아니라 인지아버지의 전부인과 전남편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었다.

인지의 아버지는 그런 오빠를 친아들과 같이 애정과 사랑을 다해 길렀다.

인지와는 정말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신부님이 되고 싶어 했고 신학교에 들어가려했다.

인지 아버지는 사주역학을 배우고 신점을 봐주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들의 사주를 봐도 신을 모시는 사주는 보이지 않았고 자신처럼 신을 대리하는 일에 들어 오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인생임을 알고 있기도 해서였다.

그래서 매번 오기만 하면 아빠와 싸우기만 했던 거였다.

그런 와중에 인지와 사고를 쳐버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맥주를 두캔 째 마실 때 말렸어야 했다.

오빠도 오빠 나름대로 바닷가에서 처음 듣는 인지의 고달픔에 많이 속이 상했을 것이다.

신부가 되려던 자신의 영혼에 큰 상처를 입었고 혼란에 빠진 것이었다.

인지는 뭔지 모를 후련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오빠의 그 마음도 시간이 흐르니 이해가 되었다.

하느님의 대리인이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한 자가 여자에게.. 그것도 자신의 여동생과 ...술..

이런 개막장 스토리를 만들어낸 자신과 운명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수많은 반성과 기도, 고해 성사를 통해도 스스로가 죄의 사함을 받고 납득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친동생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인지 나름대로 심연을 끄집어내어 다시금 정리가 필요했다.

우선은 오빠에 대한 원망을 지워내는 일이었다.

몸서리치게 싫었던 자신의 감정을 지우고 나니 오빠와 좋았던 감정들이 하나씩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다시 연락을 해서 오빠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인지는 이제 오빠를 영원히 잊기로 결심했다.

인지의 마음은 서서히 치유가 되었다.

그리고 무었 보다 옛 연인이었던 재경언니에게 미안했다.

인지의 마음을 보듬어 준 사람이었고 큰 상처를 주고 떠났었다.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언니에게 사랑을 쏟아낸 것은 결국 정체성에 혼란만 가득 안고 발생한 보복성 사랑이었다.

인지는 그 둘을 후련하게 떠나 보내기로 했다.

옥상에서 호랑이와 놀고 있는 혜정의 건강한 얼굴이 햇살에 반짝였다.

“이 사람 참 사랑스럽다.”

인지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감정이 어디를 향하는지 정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그냥 둬 보기로 한 것이다.

호랑이가 그랬듯 혜정은 인지의 마음에 번호키를 눌렀다.

“삑삑삐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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