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by WineofMuse

101호 경숙은 그 난리통에 잠시 내려온 301호 미정과 눈이 마주쳤다.

경숙은 그런 미정을 벌레 쳐다보듯 노려보고는 휙 돌아섰다.

미정은 뭔가 캥기는게 있는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내 돌아섰다.

예전부터 경숙은 뭔가 느낌이 왔다.

301호 미정과 남편의 사이에 묘한 그 기류를 포착했었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던 것도 두 집은 아이들 때문에라도 늘 친했었고 언니 동생하며 조리원부터 지내온 시간이 있었기에 배신감은 더 컷다.

빌라에 유일하게 있는 아이 둘은 서로 놀지 못하는 상황이 오니 서로가 답답한 건 매한가지 였다.

둘은 경숙의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애먼 불똥이 3층 미정에게 튄 상황이었다.

경숙은 확실하게 물증을 잡아내진 못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남편의 핸드폰 카톡에는 301호 미정과 무언가 수상한 내용이 많았다.

추궁에 추궁을 거듭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꼬투리를 잡히고야 말았고 경숙은 말다툼 와중에 끝까지 남편을 몰아붙였다.

“너 이러고 다니는거 언제부터였니?”

“미정언니랑 어디까지 간건데?“

“아냐.. 3층이랑 내가 왜.. 그런일없어”

“그럼 이 문자들은 뭐야!!”

“왜 둘이 그렇게 죽고 못사는건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경숙은 다짜고짜 3층으로 올라갔다.

"응 어쩐일이야?"

"언니 우리 남편이랑 언니 무슨 관계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미정은 대답했다.

"무... 무슨 말이니?"

"다 알고 왔어."

“그냥 다 이야기해줘 언니.”

"미안해..."

"하아..."

"둘 다 정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정말."

경숙은 언니의 그 ‘미안해’라는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미정언니는 자신에게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믿었는데.

왜 나한테 미안할 짓을 했을까.

뭔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미정은 경숙에게 분명 미안할 짓을 하고 말았다.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집으로 내려와 혼자 울었다.

경숙도 어딘가에 미정이 남편과 바람을 피웠다고 떠들고 다니기도 남사스러웠다.

미정도 경숙이 그러니 그저 아무소리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죽음보다 더한 침묵의 공간이 생겼다.

전화벨이 오랜만에 울렸다.

멜로디가 수현의 핸드폰이었다.

“네 피디님”

“네네”

“네 알겠습니다.”

“네 시간 맞춰 나갈게요.”

“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디님이 계신 여의도 방향으로 90도 인사를 두 번 세 번 했다.

수현이 드디어 방속국 미팅이 잡혔다.

오랜만에 꽃단장을 하고 화사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샤랄라한 꽃무늬 원피스도 입어보고 청바지도 입어보고 간단하게 패션쇼를 했다.

이번에는 꼭 좋은 결과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서울에서의 생활도 연장이 될 것이다.

현관문을 잠그고 뒤돌아 서는 순간이었다.

왠 호랑이 한마리가 수현을 향해 날아왔다.

“끼야악!!! 어어거억”

그 호랑이는 3층 인지네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수현을 얼굴을 노리고 파바박 할퀴고 얼른 도망가버렸다.

호랑이는 오랫동안 수현을 벼르고 있었다.

분명 202호 안에 동네 강아지 친구가 있는데 나오질 못했다.

목줄이 채워진 채로 짧게 묶여 동네를 도는 모습이 영 안타까웠다.

옥상에서는 동네의 모든 것이 아주 잘 보였다.

호랑이는 그런 수현을 강아지 납치범으로 점 찍었고 언젠가는 피의 보복을 행할 것이었다.

2층 문이 열리는걸 보고 오늘이다 싶었다.

저기 갇혀있는 강아지 친구를 구해 줄 것이다.

“지금이야! 탈출해!! 친구야!!!!”

“파바바바박!”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수현은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아악”

팔에서 피가 흘렀다.

“이런 망할”

“야 고기 나와 출동이다.”

수현은 옥상으로 올라간 그 고양이를 잡아서 죽일 기세였다.

내일 자 사회면 뉴스지면에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호신용으로 구비해둔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팔에 피를 철철 흘린 채로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방망이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고양이 사냥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인지가 슥 나오더니 호랑이를 집안으로 데리고 쏙 들어가 버렸다.

수현은 302호 문을 두드렸다.

“나와!!!” “멍멍”

“멍멍멍멍”

“당장 나와!!“

“너 오늘 내가 삶아 먹는다!!”

“나와아!!! 문열어!!!”

“멍멍”

든든한 고기가 옆에서 짖어 주었다.

인지는 경찰에 다급하게 신고했다.

“여기 백조빌라 3층인데요.”

“왠 미친년이 방망이를 들고 피를 흘리면서 제 방문을 두드려요. 개도 옆에서 짖어요.”

- 쾅쾅쾅 쾅 멍멍멍멍 나와!!! 멍멍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경찰이 긴급 출동했다.

피를 흘리는 미친년이라는 소리에 119도 3분 차이로 사이렌을 울렸다.

좁은 언덕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동시에 올라가니 주변 상인들과 행인들이 백조 빌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강력 사건이 일어난 줄 알았을 것이다.

경찰차가 1대 더 지원이 와서 경찰차는 2대로 늘었다.

경찰 4명이 권총을 꺼내들고 상황을 파악했다.

무전기가 치칙 소리를 내며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범인은 흉기를 소지하고 있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의 문을 흉기로 두들기고 있습니다.”

“본부 지원 요청 바랍니다.”

“범인은 맹견과 함께 여자 혼자 사는 집의 문을 피를 흘리며 두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자가 피를 흘린다. 맹견이 있다. 흉기가 파악되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박순경 실탄 챙겨.”

“방검복 챙겨 입어.”

여차하면 SWAT팀이 헬기를 타고 백조빌라 옥상으로 출동할 기세였다.

만약의 사태에는 발포가 가능한 상황이니 실탄과 테이저건을 점검했다.

경찰이 올라오다 피투성이가 된 수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우선 테이저 건 부터 꺼내들었다.

“두.. 두손 들어! 엎드려! 항복하면 쏜다.”

긴장한 경찰 아저씨가 헛소리를 한다.

항복을 하라는건가 계속 하라는 건가.

수현은 갑작스런 상황에 문을 두드리던 방망이를 뒤로 던졌다.

바닥에 납작 업드렸다.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멎었다.

수현은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경찰서에 고기를 대동하고 조서를 썻다.

구구절절한 상황을 설명하고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백조 빌라 주변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누가 죽었어?

백조빌라에서 살인이 났어?

사람이 죽었대!

옆에 있는 사람이 통화를 한다.

“엄마 우리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났대.”

“여기 무서워.”

을씨년하게 바람이 불었고 백조빌라는 살인사건이 난 백조빌라가 되었다.

백조빌라는 지역민들에게 위험한 빌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인지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2층 문 앞에 붙여 두었다.

문고리에는 연고와 반창고가 담긴 봉투가 있었다.

호랑이가 울며 “죄송하다옹“ 하는 그림이었다.

문을 열던 인지는 고양이 그림에 그만 마음이 녹고 말았다.

고양이 주인을 고소하고 합의금과 치료비를 독하게 받으려던 마음도 관두게 되었다.

“그래 언제 맥주나 한잔 하고 풀지 뭐.“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백조빌라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각자 전투를 치르고 휴전하고 화합하는 일종의 제련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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