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by WineofMuse

어느날 새벽이었다.

편의점에서 나와 골목을 통해 집으로 가던 혜정의 앞을 누군가 가로 막았다.

덩치 큰 그 남자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의 외모였다.

집을 나설 때부터 뭔가 께름직하더니 누군가 혜정을 뒤쫒고 있었다.

으슥한 골목에 다다르자 다짜고짜 그 남자는 물었다.

“너지 검은장미1004”

“나야 쏘크라테스”

무슨 소리냐고 물었어야 했나?

당황한 혜정은 대답했다.

“아닌데요? 저 그런 사람아닌데요.”

“맞네 이년”

“너 따라와.”

남자는 혜정을 더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려했다.

혜정의 한 번도 만나본적없는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몇번째인지 번호는 까먹었다.

생일과 기념일 등에 들어오는 기프티콘을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곤 했다.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며 개인 방송도 하곤 했다.

많지는 않아도 가끔씩 소소하게 터지는 풍선으로 한달 한달 살아가던 혜정이었다.

그런 많지 않은 펜 중에 아주 극소수의 펜층에도 이런 스토커가 존재하는 구나 싶었다.

“너 같은 건 나한테 혼이 좀 나야 돼.”

“너한테 바친 돈이 얼만데 씨발”

“아악 살려주세요!”

“사람살... 읍...”

우악스러운 손으로 혜정의 입을 막고 끌고 가려는 순간이었다.

둘은 한참을 버둥거리며 실랑이를 했다.

너무 놀란 혜정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검은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다 멈춰섯다.

수미였다.

서로 고소 중인 상태의 202호 수미

오토바이 불빛을 상향으로 환하게 비추며 말한다.

“저기요 그거 놓고 말로 하시죠.”

“뭔데 넌?”

“알거 없고 같은 빌라 살아요. 신고하기전에 손 놔요.”

오토바이 경적을 일부러 시끄럽게 빵빵 눌렀다.

“112에 신고할게요. 신고”

핸드폰을 꺼내 11을 눌렀다.

“에이 시발..”

“너 내가 가만 안둬.. 다음에 보자 너 집 어딘지 알어..”

수미가 쏘아본다.

“알면 어쩌게요.”

“스토커는 무조건 감방간대요 조심해요 아저씨.”

울먹이는 혜정이 안쓰러운지 수미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이이이잉”

혜정은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탓에 적잖케 놀랬다.

나쁜 행동이라고는 생각했고 언젠가 한번은 조우할 상황일지도 모르니 조심했다.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고 보니 이건 생각 이상으로 무서웠다.

울고 있는 혜정을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말을 건넨다.

“타요. 태워줄게요.”

수미가 멋지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둘이 타기에는 오토바이가 너무 작았다.

뒤에 통도 있었고 저 덩치가 안들어 갈게 뻔했지만 권해본거다.

혜정은 눈치 없이 그 오토바이를 타려 했다.

“이잌쿠”

어찌어찌 낑겨서 둘은 엉거주춤 탓다.

이렇게 큰 사람을 태워본적이 없는 수미는 허둥대었다.

자존심이 있으니 내리라고도 못하고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낑낑 대었다.

그런 수미를 보고 뒤에서 혜정은 그만 수미를 꼬옥 안아주었다.

“엉엉 미안해요 언니”

“아 ...네...”

어색하게 둘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로의 고소장은 취하하기로 했다.

홍할머니의 남편 김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왔다.

할머니는 평상에서 말린 무청을 넣고 오랜만에 뭔가 분주하게 끓이셨다.

잡채도 조금 하고 알감자도 조렸다.

한상 거하게 드신 할아버지에게 과일과 차도 내어 주었다.

차를 한잔 홀짝 거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팝시다...”

“네?”

“그만 팔자구요.”

“죽어서도 이고 갈거요?”

말씀이 없으신 홍할머니

“팔아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 줘요.”

“어찌 되었건 끝까지 자기 꿈을 위해서 도전한다는데 마지막까지 힘이 되야 하지 않겠소.”

“안되요. 그건 못해요..”

“그년이 이제껏 해 먹은게 얼만지나 아시오?”

“이번에는 무슨 새벽 배송인가 뭔가에 공장짓고 투자한다는데 그런 말도안되는 사업에 대체 얼마를 더 넣어야 한단 말이요.”

“새벽에 물건을 배달해주는게 그게 사람이 할 짓이오?”

“당신 퇴직금도 엄마가 물려주신 땅도, 당신이랑 내가 누울 자리가 있던 선산도 다 날려먹었잖아요.”

“이집이 마지막이에요.”

“그럴 거면 그년 보다는 아들한테 줬었어야죠...”

잠시 숨을 고르며 글썽이는 홍할머니는 더욱 감정이 격해지셨다.

“이거 팔고 어디 가게요. 당신은 어디로든 갈곳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다 늙어서 이제 갈곳도 없고 남자도 없어요.”

“당신은 여자라도 있지!”

“가서 그 여자랑 사시오. 여기 늙은 여자는 그대로 좀 두고!!!!!”

홍할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안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눈물을 훔치며 액자 속 사진을 들어보인다.

사진에는 네 가족이다.

엄마, 아빠, 누나, 남동생 이렇게 넷이 찍힌 사진을 껴안으며 홍할머니는 크게 울었다.

그놈의 사업이 문제였다.

스타트업인지 뭔지 그 사업을 시작한 아들은 밤낮으로 열심히였다.

열정으로 뛰어들었던 사업이 투자를 받지 못하고 안 되어가자 대표들은 직원이던 아들에게 공동으로 지분을 넣자고 꼬드겼다.

그렇게 공동 창업주가 되나 했는데 결론은 폭탄 돌리기였다.

종국에는 아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그렇게 아들은 혼자 끙끙 앓다가 회사에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왜 엄마에게 말을 안했니 왜 안했어.”

“엉어어엉엉”

홍할머니는 오랜만의 아들 생각에 원없이 울었다.

딸년도 한다는 스타트업인가 하는 사업은 아들도 모자라 이제는 딸까지 데려갈까봐.

그게 무서웠다.

김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답답했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먼저 가고 몸과 마음에 병을 얻었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보니 슬슬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인연이 닿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 의미가 전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만에 연락이 닿은 후배나 선배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가 그랬다.

오랜만에 닿은 연락은 죄다 부고였고 이 세상에 있을 때 밥이라도 한끼 같이 먹고 커피라도 한잔 하고 보냈어야 했다.

그렇게 이별할 수 도 있었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문자나 전화로 이별을 전해오는게 서글펏다.

홍할머니에게도 뜻을 전하고 함께 여행을 권해보았지만 할머니는 빌라에서 지내다 가는게 좋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할아버지는 혼자 체력이 닿는 대로 전국을 천천히 돌아 다니셨다.

할아버지에게 의미를 가진채 남은것은 이제 홍할머니 뿐이었다.

돈도 자식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다.

b01호 백할머니는 동네의 주요 포인트마다 자신의 짐들과 폐지들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안을 가득 채운 폐지들은 더 이상 채울 곳이 없었다.

동네 주요 거점 마다 있는 폐지들을 다시 모아서 집안으로 가지고 와야 했다.

옆 동네의 고물상까지 폐지를 실어 나르고 집으로 오고의 반복이었다.

빌라 뒤편에는 홍할머니의 작은 텃밭이 있었다.

울타리와 담장이 적당히 둘러쳐저 있는 텃밭의 네 귀퉁이에는 백할머니의 짐들이 조금씩 쌓여있었다.

손대지 맛이오.

넘어오지 맛이오.

가져가지 맛이오.

삐뚤하게 쓰여져 박스테이프로 얼기설기 노끈으로 꽁꽁 메어져 있었다.

누구라도 텃밭을 얼씬거리면 달려가 혼쭐을 내고는 했다.

백할머니는 유독 홍할머니를 따랏다.

홍할머니는 그런 백할머니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같이 평상에서 차도 나눠 마시곤 했다.

백할머니의 딸은 강원도의 큰 도박장에서 도박으로 집안의 재산을 모조리 털어먹었다.

강원도에 스키용품을 대여하는 곳에 아르바이트를 간다는 딸은 그해 겨울이 가고 다음해의 겨울이 가고 눈이 다 녹았는데도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자꾸만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한푼 두푼 보내주던 돈은 나중에는 협박으로 변했고 딸은 악귀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피폐해진 딸을 돌보며 대체 무슨일인지 알아보려 해도 딸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몇 달이 지나고 딸은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착실히 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작지만 평생을 모아 사둔 작은 동네상가를 팔았다.

요즘 애들 많이 하는 카페라도 하나 해보라는 할머니의 뜻이었다.

딸이 나중에 시집가면 집을 사거나 혼수를 하는데 보탤 요량으로 사둔 작은 상가는 자리가 영 좋지 못해 제값을 못 받나 했지만 마침 재개발 소식으로 가격이 뛰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얼른 팔았던 것이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에게 상가를 산 업자는 족히 10배는 더 받고 건설사에 팔아넘겼다.

현금을 받아들자 딸은 카페자리를 알아본다며 집을 들어오지 않고 바깥을 돌았다.

상권조사며 시장조사며 그럴 듯한 말로 할머니에게 설명했다.

서울 시내에서는 이 돈으로 카페를 차리기 어려우니 지방에서 시작해보겠다고 했다.

거기는 도와줄 친구들도 많고 사람도 많은 곳이라고 했다.

강원도 어디쯤에서 카페를 시작한다는 딸아이는 한달도 안되어 공사대금이 모자르다며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수중의 돈과 보험을 해약하여 탈탈 털어 보내주었다.

“강원도에 무슨 어디매 동네 무슨 카페냐. 가서 보마.”

“오지 마라 엄마야.”

“나중에 다 완성되면 그때 와요.”

“끊을께요 바쁘다.”

사채를 쓴 딸은 엄마에게 도망쳐왔다.

집까지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딸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하나 남은 집을 팔고 엄마는 한 겨울에 거리로 나앉을 처지에 놓였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홍할머니는 백할머니에게 집을 흔쾌히 내어 주었다.

나중에 사정되면 갚고 아니면 말으라는 조건이었다.

딸은 아직도 강원도 어디에서 카페를 구하러 다니는지 몇 년째 소식이 없다.

보아하니 앞으로도 소식이 자주 올 것 같진 않았다.

백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땅인양 텃밭을 지켰다.

누군가 담장 너머로 쓰레기를 버리면 깨끗이 치우곤 했다.

고랑에 잡초가 피면 뽑아 주었고 밭을 메야 하는 시기가 되면 일손도 거들곤 했다.

한여름 평상에는 호박잎을 쪄 강된장을 푹떠두고 두분이서 식사를 하시곤 했다.

서울 한가운데서 이런 풍경은 쉬이 상상되는 그림은 아니었다.

각호의 문고리에는 가끔 오이가 한봉지 씩 걸려있기도 하고 상추가 한 무더기 있기도 하였다.

날씨가 좋은 휴일이면 혜정과 인지, 수미와 수현은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굽곤했다.

홍할머니가 챙겨주신 상추에 오이도 썰어서 올렸다.

고기보다 맛있다며 수현도 상추쌈에 강된장을 올려 밥과 함께 우물거렸다.

시장에 파는것보다 상추의 쌉싸르한 맛이 진했다.

수미는 잘구운 삼겹살 두점 턱 올리고 한쌈 싸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맥주를 한모금 넘겼다.

“키야아~”

힘겨운 서울살이가 한방에 잊혀지는 행복한 맛이었다.

호랑이와 고기도 가끔 한점 얻어 먹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며 커피도 마시며 즐거운 파티를 즐겼다.

넷은 서로의 서울 생활에 대한 염증과 갈등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위로 했다.

다들 한번 씩은 피터지게 싸워본 사이였다.

기왕 싸울거면 크게 싸우랬다.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다같이 건배~~!”

넷은 한마음으로 건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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