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by WineofMuse

301호 미정의 아들은 요즘 들어 부쩍 옥상에 자주 올라갔다.

무슨 일인지 1층 소꿉친구와 놀 수 없던 아이는 옥상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지방 출장을 오래 가셔서 잘 올라오지 않으셨다.

요즘은 부쩍 더 못 올라 오셨다.

“아빠가 있었으면 종이비행기라도 접어달라고 할텐데.“

아이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주던 사람이 아빠인지 1층 아저씨인지 상관없었다.

비비탄 총으로 옥상위의 화분을 맞추던 아이는 가만히 햇볕을 쬐는 호랑이가 보였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호랑이에게 딱 한번 비비탄 총을 솼을 뿐이었다.

비비탄 총알은 하필이면 호랑이의 왼쪽 눈위를 정통으로 맞앗다.

호랑이는 바로 302호로 가서 왱왱 거렸고 인지는 호랑이의 눈을 보고 이성을 잃었다.

호랑이랑 같이 먹을 과일을 깍다가 과도를 들고 나온 인지는 아이를 붙잡았다.

누군가 호랑이를 괴롭혔다고만 생각해서 그냥 나왔다가 아이가 총을 들고 있어서 잡았을 뿐이다.

“야 너 앞집 ... 너가 고양이 쐇어?“

아이가 한 행동을 혼낼 생각이 아니었다.

단지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손에 과도를 들고 나왔을 뿐인데 아이가 있어서 붙잡았을 뿐이었다.

칼을 보고 공포에 질린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아아악!!”

“너 왜 고양이... 아아 아냐 아냐 울지마 이모가 ..”

아이와 인지는 동시에 소리쳤다.

아이의 비명소리에 301호 미정은 화들짝 놀라 튀어 나왔다.

칼을 들고 있는 인지의 모습과 자신의 아이가 잡혀 있는 상황을 미정은 믿을 수 없었다.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칼을 잡고 있는 인지를 동시에 밀어 내었다.

동시에 칼을 바닥에 던졌지만 미정의 눈에는 뵈는게 없었다.

인지를 껴안듯이 깔고 3층에서 둘은 함께 떨어졌다.

악!!!

꺄아아악!!!

쿵!

콰직!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둘은 인지의 오나타2 위에 떨어졌다.

벼락 치는 소리에 깜짝 놀란 101호 경숙은 119에 신고를 했다.

3층 사는 아가씨는 죽은 듯 차위에 누워있었다.

미정언니가 팔을 잡고 뒹굴다가 이내 옥상을 향해 아들을 부르짖고 있었다.

경숙은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기요 저기요 119죠 여기 백조빌란데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또 백조빌라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익숙하게 언덕을 힘차게 올라왔다.

무전기가 치이익 소리를 내었다.

“또 백조빌라입니다.”

“칼을 든 여자가 아이를 찌르려 했다합니다.”

“아이 엄마가 범인을 안고 같이 건물에서 뛰어 내렸답니다.”

“본부 지원 요청 바랍니다.”

이번에는 칼을 든 여자가 아이를 납치해 찌르려다

부모와 육탄전을 한 후 옥상에서 떨어진 사건이었다.

인지는 기절했고 미정은 의외로 한쪽 팔이 부러지는 정도로 끝이 났다.

인지와 미정은 구급차에 실려가고 아이들은 101호 경숙이 데리고 나왔다.

“우에에이잉 엉어어어어어어엉”

“이모 우리 엄마 죽어요?”

“아냐아냐 아무일 없을거야.”

경숙은 미정의 아이를 껴안았다.

졸지에 경숙은 아이 하나를 업고 양손에 아이둘을 붙잡고 떠나가는 구급차를 바라보았다.

동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줄 처음 알았다.

엄청난 구름 인파가 모였다.

재미난 큰 구경거리를 보러온 사람들이 백조빌라를 둘러 에워쌌다.

미정의 아이는 이내 딸과 잘 놀고 간식도 먹고 유튜브를 보며 깔깔대었다.

오랜만에 함께노는 아이들이 못내 짠했다.

경숙은 3층 정씨와 남편 박씨에게도 급히 연락을 취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음날 깁스를 하고 온 미정은 아이를 맡아준 경숙이 너무나 고마웠다.

과일을 한 봉지 들고 경숙을 찾아온 미정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과일을 주었다.

어색한 공기에 살짝 떨떠름 하던 경숙은 과일봉지를 내미는 미정을 와락 껴안았다.

“언니 죽는줄 알았잖아...”

“미안해 경숙아 .. 엉어어어어엉”

둘은 한참을 껴안고 울었다.

남편이랑 바람 핀 년을 안고 울 줄은 몰랐다.

빨래를 널던 경숙은 차위로 떨어진 미정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남편이랑 바람핀 년 잘 죽었다.“ 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미웠지만 미정 언니가 죽는 건 또 싫었다.

같은 빌라에 살며 비슷한 시기에 둘은 임신했고 동시에 입덫을 하곤했다.

남편들은 야밤에 잠옷에 외투 차림으로 와이프가 찾는 음식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박씨와 정씨는 빌라입구에서 자주 마주쳤다.

편의점에서 만나고 퇴근길 시장 떡볶이 집에서 만났다.

순대국 집에서 만나고 떡집에서도 만났다.

“형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혹시 붕어빵 저번에 어디서 구하셨어요?”

“저기 저번에 복숭아 통조림 있잖은가 그거 브랜드가 뭐였지”

“어 이거 동생네 생각나서 삿어”

형님은 싱싱한 딱딱이 복숭아를 문 앞에 걸어두곤했다.

남편들은 급기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음식을 찾으러 다녔다.

그때부터 친했던 우리였다.

일이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토록 돈독했던 사이였다.

조리원도 같은 조리원을 다녔고 친정에서 올라온 맛난 김치도 나누어 먹었다.

아이 젖을 물리고 100일까지 잠을 못자며 울고 있어도 같이 울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도 같이 노란색 승합차를 태워 보내고 차를 한잔하곤 했다.

따스한 햇살아래 홍할머니와 마시던 둥글레차가 그리도 구수하고 볕이 좋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도 같은 유치원이었다.

그런 언니가 남편과 눈이 맞았다는 사실이, 내 남편과 화기애애하고 꽁냥거렸을 그 시간이 너무나 야속했지만 그런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

홍할머니는 그런 그녀들에게 다음날 슬며시 물었다.

차 한잔 할래?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셋이 평상에 앉아본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깔깔거리며 그간의 못다한 이야기와 동네의 대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그머니 백할머니도 꼈다.

백조 빌라의 어른 백조들이 모였다.

어린 백조들은 또 그들 나름의 세상이 있었고

어른 백조들은 또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다.

떨어진 인지를 본 혜정은 너무나 깜짝 놀랐다.

“인지야 죽었니? 정신 차려봐.”

119 구급대원이 물었다.

“보호자세요?”

“네?”

...

...

“네! 보호자에요.”

혜정은 구급차를 탓다. 인지의 손을 잡았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과 혼란스러운 구급차를 타게된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인지는 다행이 큰 골절이나 이상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기적이었다.

오래된 자동차의 천장은 말도 안되는 말랑함으로 성인 여성 둘의 무게를 적당히 완충해주었다.

인지는 인지 나름대로 세상 어디에도 연락할 곳이 없었다.

보호자가 있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엄마는 엄밀히 이야기 하자면 적당한 보호자는 아니었다.

그런 인지에게 혜정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혜정은 그런 인지에게 보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지가 안 죽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지는 퇴원하자마자 처참하게 지붕이 망가진 아빠의 오나타2 를 보내주었다.

아빠가 이 차를 굳이 꼭 인지에게 가져가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빠는 어느날 지나가는 소나타를 급하게 세우셨다.

정말 뜬금 없는 일이었다.

대뜸 차가 마음에 드니 자신에게 팔으라는 거였다.

그런 아빠를 인지와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실때도 마찬가지 였다.

굳이 그 차를 어딜 가든 인지가 꼭 가지고 몰고 다니라고 하셨다.

희한한 유언이었다.

재산이나 많이 남겨 주시지...

딱 그 차 한 대만 남겨두고 가셨다.

오래되어 굴러가지도 않았지만 아빠 생각이 날 때면 차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었다.

차안에 앉아서 아빠랑 여행갔던 일을 생각하면 없어진 것 같았던 아빠의 향기가 차안에서

솔솔 나곤 했다.

그렇게 인지는 차안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 차가 박살이 났다.

아빠의 큰 그림은 분명 여기까지 였으리라 믿으며 차를 고이 보내주었다.

차가 떠나는 날 차의 염주와 백미러를 뚝 떼어 내었다.

뒷자리에 앉아있는 인지의 눈은 수시로 아빠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아빠는 사랑을 담아 윙크를 해주곤 하셨다.

그 백미러에는 아빠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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