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eofMuse Mar 17. 2022
클라이언트 중에 말을 참 어렵게 하는 분이 계시다.
단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주제가 주어지면 너무 빠른 속도로 심연으로 들어가 본인의 속 깊은 이야기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질문에 단순하게 답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미팅을 하면 3시간씩 커피를 마시며 다리가 저리도록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목적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과거의 결핍과 살아온 과정에 빗대어 참 오래도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런 이야기를 나처럼 3시간씩 들어주는 사람도 없기에 그 시간이 끝나면 작은 일이라도 주곤 한다.
그제는 2차 저작권에 관한 의견을 꺼내었다가 20분 이상 이상한 답변을 듣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상황이 오면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들어주고 다른 일을 생각하는 편이다.
나도 이런데 그분 밑에 있는 직원들의 고충은 너무나 뻔해 보였다.
자꾸만 퇴사를 반복하는 직원들을 향해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봐도 당신의 말 때문에 퇴사를 하는데 말이다.
옳은 이야기이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너무나 길고 장황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요즘은 순간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방편을 찾고 기회를 만들어 굳이 하고는 했다.
시간으로는 오 년 정도 된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조건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잊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랬더니 잊혔다.
이상한 일이었다
패기였을까 객기였을까.
하고자 하는 말을 끝까지 해내던 젊은 날의 나는 그러한 습성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줄 알았었다.
머릿속에 생긴 말을 가슴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기 질투의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욕을 안 하기로 했다.
단면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깊은 속의 이야기는 가급적 끄집어내지 않기로 했다.
이런 행동의 정점을 찍은 것은 와인을 마시면서 이다.
맥주와 소주는 걸걸한 입담이 안주발을 대신해주곤 했다.
욕톤이 좋아야 쉽게 어울리고 분위기를 주도해온다.
그러한 습성은 조직에서나 무리에서나 주도권을 가져오기 용이한 패턴이었다.
나이가 들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마스크를 쓰게 되었고 회식은 사라졌다.
직원도 없었고 접대도 없어졌다.
소주 대신 맥주였지만 그마저도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았다.
결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와인은 아름다운 술이었다.
예쁜 말만 하기로 했다.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들과 어울리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아까웠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을 가려서 했어야 했다.
가급적 입을 다물고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진심이 무엇인지 표현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 의미를 담아 진심을 다해 전한다.
후회가 없다.
할 말은 했고 책임은 따를 것이다.
그 시간이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긴 기다림은 익숙함을 동반하곤 했다.
되면 좋고 안돼도 나쁠 건 없다.
나는 아마도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