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웹소설_가칭_두번째 선택)

by WineofMuse

보통의 어느 날이었다.

노을이 지는 지평선 너머로 퇴근하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보 할 말이 있어."

"응?"


미정은 남편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카드를 던지듯 내밀었다.

'조커' 카드였다.


"언제 적 건데 이걸 찾았대?"


웃음기가 남아있던 남편의 얼굴이 냉정을 찾은 듯 무심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오늘의 대화가 아주 좋거나 즐거운 뉘앙스가 아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 그 카드 쓸래."

"........"

"당신이 굳이 날 설득해서 만들어둔 카드잖아."

"둘이서 합의해서 만든 거지 뭐......."


***


기억도 나지 않을 몇 해전이었다.

술을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된 이야기였다.

누가 더 오래 살 건가에 대한 사소한 농담이 발단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평균 수명과 의료 기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결국은 둘 중 하나는 어느 하나가 세상을 등지더라도 세상에 상당히 오랜 시간을 생존해 있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살아온 날들을 어림잡아 셈해보니 앞으로 살아갈 날도 비슷해 보였다.

남편은 무슨 꿍꿍이인지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꺼냈다.


"그 당시 평균 수명이 36세였대. 로미오는 한평생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언약했지만 그래 봐야 걔네 20년도 못살았어."

"그래 뭐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살면서 한눈 안 판다고 맹세할 수 있어?"

"응?"

"나는 사실 이제 좀 자신 없어..."


답이 없다.

그녀도 내심 동조하는 눈빛이긴 하다.

취기 때문인지 덕분인지 모를 분위기였다.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안되지... 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애는 어쩌게?"

"당신처럼 불행한 유년시절을 겪게 하고 싶어?"


"부모가 행복을 찾지 못하고 맹숭맹숭한 것도 아이는 다 알지 않을까?"
"그것도 그것 나름의 불행인 것 같은데."


"서로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이 보이는 것도 아니잖아. "

"다들 그러고 살아. 유난 떨지 말자."

"우리 한 번은 용서하자. 그게 무엇이 되었든."

"왜 대놓고 바람이라도 피우지?"

"아니 바람 말고 환기라고 하자."

"각자의 마음을 환기할 기회를 한 번은 부여하는 게 어떨까?"


"그래 말은 참 잘 지어내 여전하셔 아주."

"박진영이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이혼하더라."

"그 집 사정이야 그 집 사정이고."


비꼬듯이 이야기했지만 그녀 또한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동조했다.

남편은 서랍장을 열어 카드를 한벌 꺼냈다.


"카드를 한 장씩 나눠 가지자."


조커였다.

집에 있는 카드를 뒤집어 제일 뒤에 조커를 한 장씩 나누었다.

거기에 각자의 이름을 적었다.


유희왕 카드처럼 던지면서 말해!

난 이번에 이 카드를 쓰겠다고 외쳐야 효력이 발생하는 거지.


"하하하하하"

"하하하.. 크큭"


웃길 일은 아니었지만 둘은 지금의 분위기가 참 웃겼다.

재미있는 발상이기도 하면서 참 그럴듯했다.

부부는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만 고민하지, 언제까지 펼쳐지다 접힐지에 대해서는 그 질문을 회피하기만 했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란 걸 모든 이들이 안다.

하지만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지 이별의 순간, 그 직전의 시간에 대해서는 부부가 서로 의논 정도는 나눠볼 수 있었다.

이별이라는게 반드시 헤어짐을 의미 하는건 아니지 않는가.

어느 한쪽의 영면을 누군가는 목도해야만 한다.

그 최초의 논의에 둘은 열린 자세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난잡하게 분탕을 치다 들어오라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안다.

일회성 갈증을 해소하라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만약 인간이 영원히 산다면 끝없는 욕망을 가지게 될까?

생각해볼 문제이지 토론할 문제는 아니었다.

영원히 살지 못하니 말이다.

우리는 부실한 언약과 결심만으로 영원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만약 꺼져버린 마음속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서로가 한 번쯤은 그 기회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마무리 지을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각자의 바람이 담긴 조커였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는 조커가 되는 거다.

아니면 둘 다 조커가 되거나.


무엇이 서로의 자존심을 부추겼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속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며 마치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쿨한 결혼관을 가진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


남편은 언제 한번 이런 계약을 해보기라도 한 냥 능숙하게 카드를 집어 들었다.

얼떨결에 성사된 계약이었다.

뒷면에 부칙을 적어 넣었다.


1. 배우자와 아이에게 소홀하지 않기

2. 병에 걸리거나 아이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감수한다.

3. 6개월 안에는 반드시 돌아온다.

4. 죽는 날까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한다.


면죄부가 생겼다.

결혼 이후 살면서 한번은 만날 지도 모를 다른 인연이 찾아 온다면 당당히 가서 만나도 된다는 면죄부였다.

혹은 이미 사고를 쳤더라도 한번쯤은 용서해주겠다는 표식이었다.


***



희미하게 그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반쯤 농담이었지만 설마 아내가 이 카드를 먼저 쓸 줄은 몰랐다는 듯 조금은 당황스러워하는 남편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응... 이해했어."


남편은 유희왕처럼 카드를 던지며 외치라고 했지만 아내는 무슨 말인지 기억을 못 하는 듯했다.


"잘해봐."

"아냐 잘해보자."


"고마워."


"오늘은 와인보다는 위스키가 좋겠네."

"네"


갑작스러운 존댓말이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아내의 목소리에는 짧게나마 생기가 돈듯했다.

잔을 꺼내는 뒷모습이 오늘따라 풍만하고 굴곡져 보였다.

평소에 뱃살 관리 좀 하라며 무심히 타박하곤 했는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어보니 알 수 없는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남편 또한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긴 했다.


부부는 10년 가까이 함께 지내오며 일상의 무난함에 중독되어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생활하다 보니 다툼이 잦았다.

일상속의 지난한 언쟁이 지겨웠다.

될수록 출근도 따로 퇴근도 따로 한다.

저녁은 최대한 간단히 먹고 각자의 취미나 소일거리를 찾아 방으로 흩어진다.

언젠가는 둘중 누구라도 한 번은 겪을 일이었다.


"내가 먼저 쓸 줄 알았는데..."


선수를 빼앗기니 뭔지 모를 패배감이 몰려왔다.

막상 닥치고 보니 이 느낌이 생경하기도 하고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만약 카드를 썼다면 아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너무 빠르게 인정해 주었나?'


독한 위스키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누구야?"


"왜?"

"궁금해?"


"아... 아냐."


남편은 괜한 소릴 했다는 걸 안다.
미정은 그런 남편의 옹졸한 마음을 안다는 듯 당당하게 휴대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도 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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