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언제인지 모르지만 상실의 시대를 분명히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것도 반복해서 아주 많이 읽었다.
하지만 스토리며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제는 노르웨이의 숲을 배송받자마자 새벽 3시까지 내리 달려 읽었다.
쉽고 편하게 읽히는 문체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스토리라 손에서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왜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았다.
내가 속한 시설에 항상 구비되어 있던 상실의 시대는 모두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야한 부분은 누군가가 죄다 찢어서 가져간 탓이었다.
그러니 성한 책이 하나도 없었고 내용이 이어지질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표지가 기억이 난다.
볼만한 매체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고 워낙에 많이 회자되었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책 속의 주인공은 20대를 넘어가는 청년치고는 회귀한 사람처럼 너무 또렷했다.
작가의 30대가 투영된 20대 이리라.
40대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당시의 하루키라는 작가가 얼마나 속이 베베 꼬였는지 보인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한 문장 속에 첨예하고 꼬여있고 대립하는 의미와 진실들.
문인들은 그 '쪼'와 꼬인 속을 어찌 다스리고 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포식자처럼 모두를 먹어치우거나 먹어 치울 계획인 주인공
나이 든 여자의 목적 달성을 위한 극심한 정성
버블 경제 속의 자유분방함과 문란함
죽음과 비극 속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욕
오컬트나 카니발리즘 빼고 다 들어있다.
모든 것이 잘 뒤섞어 맛나게도 비벼져 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허함
정신과 내면을 마구 할퀴어 찢어 놓을 평범하면서 아련한 수작에 넌더리가 난다.
짜증 나고 재수 없지만 곱씹어서 보고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