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적 사람인가 싶을 것이다.
500원짜리 국밥이라니.
대구에는 500원짜리 국밥이 존재했다.
왜 이걸 기억하냐면 나는 그 국밥집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국밥집에는 룰이 있었다.
평상이나 테이블에 앉으면 1,000원과 깍두기가 한 접시 내어진다.
찻길 보도 블록에 앉을 거라면 500원이고 미지근한 플라스틱 국밥 그릇에 숟가락이 '푸욱' 하나 꽂혀 나온다.
사실 어떠한 내용물이나 맛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도 상호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년 내내 줄기차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500원에 한 끼 든든하게 먹는다는 건 그 당시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의 그 고마움은 나중에 내가 나이가 정말 많이 든다면 국밥집을 하나 열어서
가난한 사람들 배불리 먹여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하는 정도였다. (어찌나 고마웠던지.)
1,000원짜리 라면은 육교 아래에 있던 작은 라면집이었다.
끓인 라면을 1,000원에 파는 건 당시의 상황상 그렇다 해도 김치와 공깃밥이 무제한이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서넛씩 몰려가 전기밥통의 밥을 바닥내곤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가게 사장님의 속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가게는 지역의 명소로 꽤나 오랫동안 유명세를 떨쳤다.
대구시내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나이가 9살 혹은 10살 즈음이었다.
그 방편이 어떠한 경로였든 내 손으로 번 내 돈으로 뭔가를 산다는 경험은
용돈을 받아 뭔가를 구매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주었다.
물론 그게 너무 일러서 문제가 되긴 했다.
글씨를 좋아하고 경제관념도 일찍 접했던 나는 늘 초년의 운이 없음을 한탄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을 만큼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카지노'라는 드라마가 뜨면서 주인공 최민식이 어릴 때 신문을 파는 장면에서 나는 마음속 한편에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쁘다 좋다의 개념도 떠난 지 오래되었고 그냥 담담하게 '그땐 그랬지' 정도의 감상이다.
문득 떠오른 장면인데 뜨거운 버스안과 길거리에 한창 이상은의 '담다디'가 지겹게 흘러나왔다.
오리온 치토스 광고가 tv에 참 많이도 나왔다.
런칭 기념으로 다양한 경품을 걸고 과자 안에 따조를 (스크래치 복권 같은걸) 넣어두었는데 나는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치토스를 1박스가량 얻은 기억이 난다.
'한 봉지 더'라는 따조가 그렇게 많았다는 건 초기 물량공세 마케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500원, 1,000원 국밥과 라면 이야기에서 이상은의 담다디와 치토스로 빠졌다.
1988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