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가 라면에 빠진 잡설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제는 보다 긍정적인 극단을 자주 하려는 편이라 예전에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부정적이었는지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이런 극단적인 성격은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불같은 다혈질 같은 매운 성격과 충동하면 최악의 시너지를 내곤 했다.
들불에 기름 붓고 바람까지 불어버리는 꼴을 자주 봐왔다.
요즘은 그러지 않노라고 자위해도 어디 그 매서운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에 자주 자중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런 극단적인 성격을 잘 반영하듯 어떠한 선택을 할 때도 나는 농담 삼아 이런 비유를 들곤 한다.
만약 당신이 앞으로 15년 동안 무인도를 가야 하는 상황에 쳐해 졌다.
당신이 들고 갈 단 1개의 라면은?
이런 질문을 생각해 내곤 혼자 숨이 가빠진다.
정말 그런 상황에 쳐해 진다면 나는 대체 어떤 '라면'을 선택할 것인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설문이지만 이런 유형의 질문은 항상 뭔가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신라면? 진순? 안성탕면? 짜파게티? 무파마?
아!...
컵라면은 안될까?
컵라면도 라면이잖아.
육개장? 왕뚜껑? 새우탕면? 생생우동?
라면 유통기한은 어떻게 되지?
6개월에 한 번씩 지나가는 비행기가 라면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줄까?
뜨거운 물은 어디서 구하지?
라이터도 없다면 생라면만 부숴먹어야 하지 않아?
라면을 땔감으로 써도 되나?
컵라면은 용기가 있으니 여러모로 다양하게 활용이 되겠네.
라면 봉지를 잘 모아서 엮는다면 난방을 할 수도 있고 수프를 잘 활용하면 다양한 요리를 할 수도 있겠군.
이럴 때를 대비해서 화학을 전공했다면 아마 라면 수프로 추진체를 만들거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단을 만들 수 있진 않을까?
허구와 망상이 결합되어 끝없는 상상의 나락으로 나를 던져넣곤한다.
이런 잡스럽고 터무니없는 상상들은 사실 비극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끄집어내 준 비밀의 방정식이기도 하다.
어두운 생각의 고리를 타고 하염없이 파고드는 것보다는 훨씬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망상이다.
나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음식 한 가지를 꼽자면 라면을 뽑고 싶다.
다음의 4가지는 라면의 장점들이다.
1. 저렴하고 2. 보관이 용이하고 3. 조리가 쉽고 4. 맛있다.
'완전식품'이라는 단어는 두부나 계란 같은 게 아니라 라면을 위해 태어난 단어 같다.
식품을 전공하는 대학에는 분명 라면 학과가 있거나 라면에 대한 분과가 있을게 분명하다.
안 그러고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라면이 수만종이 있을 리 없다.
지붕 없는 곳에서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라는 물리를 오가는 격언과
오빠, 라면 먹고 갈래?
라는 심리와 철학의 경계에 걸쳐진 주옥같은 서사의 일부도 라면이 있기에 가능했다.
음식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그러하듯
음식은 그 자체로 맛이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먹는지도 중요하다.
800원짜리 안성탕면도 지리산 정상의 어느 바위틈에서 먹는가,
50,000원짜리 라면도 어느 곳에서 먹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 쉬는 날 점심에는 라면이다.
아니 다 집어치우고.
무인도에는 가지고 갈 단 1개의 라면은?
무인도... 15년... 나는 육개장 컵라면!
무인도에서 아마 첫번째 집어든 컵라면에 얼굴을 그려주고는 첫번째 말동무로 삼을꺼야.
친구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