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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ofMuse

j는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반복하던 몇 달 만에 큰 발견을 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발견에 펄쩍 뛸듯한 환희를 느꼈지만 이내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본질적으론 전혀 기쁘지 않은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j는 자신에게 내포된 잠재적인 부정적 요소 중에 가장 큰 요인, 즉 1등 요인을 찾아내었다.

그건 바로 유년 시절의 공백으로 인한 지독한 애정 결핍이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서적 가난'이다.


j의 '정서적 가난'은 그 넓이와 깊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하다.

모든 걱정과 고민 부적적인 감정의 크기를 뭉쳐서 던져 넣어도 도저히 바닥을 닿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걸 채우는 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타인을 통해 채우는 건 더 답이 안 나올게 뻔했다.


타인은 자신의 공백도 메워야 했기에 '나'까지 신경 써서 뭔가를 채운 다는 건 이론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j는 스스로 그 가난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j는 그 '정서적 가난'의 존재를 마침내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정서적 가난뱅이임을 드디어 인정하며 스스로를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일대의 사건이었다.

물리적으로 돈이 없고 재화가 없는 가난은 숨길 수 없는 것이기에 인정도 쉽고 빠르다.

하지만 자조와 경멸, 비교와 시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정도의 인간이 '정서적'으로 가난하기까지 하다면 그건 너무나 심각하게 불공평해 보이고 가련해 보이기 까지 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한목소리로 그를 욕할 것이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 저 가난뱅이를 보라. 그는 가난하다 못해 정신까지 가난한 썩어 문드러진 자이다.'


라는 외침이 어딘가에서 함성처럼 들려오는듯하다.

하지만 그건 j 스스로 지어낸 허구의 함성일 것이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정서적으로 가난하다.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이 사랑을 받으려는 욕망보다 교만한 욕망은 없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 진의를 잘 알고 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본인이 사랑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며 꾸준한 자기 성찰과는 무관한 것이다.

타인은 당신을 사랑해 줄 의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로부터 의무적인 사랑의 기회를 놓친 자들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애정결핍' , '영원히 사랑을 갈구하는 목마른 자'라는 칭호를 획득하고야 만다.


이미 마른 우물에 수 없이 두레박을 내려봐야 공허한 헛손질만 할 것이다.

부모를 잃었다면 그 인간의 사랑창고는 영원히 쩍 갈라진 바닥을 타인에게 드러낼 일밖에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인 사랑은 결국 보살핌이다.

비가 내려야 땅에서도 물이 샘솟는다.

자식을 감싸듯 타인을 사랑해야 하며 그럴만한 사람을 만나야 그 또한 가능하다.


j는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타인을 보살피고 사랑해야 하는 자세를 가지기 충분했지만 늘 그렇듯

메마른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받은 게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결국은 숫자에 집착하곤 한다.

j도 다르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하고 애정에 굶주렸지만 그것을 구하는 방법을 모르고 받아도 입에 받아 넣을 줄을 모르는 기아 상태에 빠진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안 후로는 j는 주변의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모든 타인이 j와 비슷하거나 같은 종류의 결핍을 보인다면 그로 인해 동정을 일으킬게 뻔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편한 건 없어 보인다.

그건 참 편리한 선택이었다.


마침내 j는 인정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저 꼿꼿이 서서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는 동전을 줄 것이요.

누군가는 손을 잡아줄 것이다.


당신은 손을 잡아 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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