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마저도 시들했다.

by WineofMuse

우리는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기질이 있다.

오래된 것을 버리고 묵은 것은 내려두는 것도 결국은 새것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

비어 있어야 들어오고 들고 나서야 빈자리가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건이 드나들지 않으면 새로운 빛이 들어오거나 다른 공기가 들어온다.


새로운 것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본질적인 매력이 있고 단지 그것이 나와 같이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 매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매력은 호기심과 같아서 충족이라는 목표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남녀도 이와 같아서 초반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들불처럼 들고일어나는 불꽃도 어느새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물건들도 그러하다.

신상이라는 이름은 대부분 명품을 꿈꾸지만 일상 속에 묻히게 되면 그저 그런 용품이 되고야 만다.

우리는 용품에게서 감사를 느끼긴 어려운 존재이다.

명품이나 신품에서 감사를 잘 느끼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진정한 명품으로 다시금 설계를 해야 할 때가 온다.

'헤리티지'를 지닌 무결한 명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불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더욱 잔인하다.

선택이란 오롯이 모든 탓을 선택을 하지 못한 본인에게 양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도 광야에서 그리도 외쳤을지 모른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3번만 외쳤을 리 없다.

3만 번 혹은 30만 번 외쳤을지 모르나 누구도 동행하지 않았기에 그 횟수를 모를 뿐이다.

우리는 외쳐야 한다.

50만 번이라도 외쳐야 한다.


예수만큼 내 탓임을 자처할 수는 없겠으나, 내 주변의 모든 일은 대부분 내 탓일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

그중에 내 탓을 빼면 나라는 육신의 존재 가치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낡은 정신을 들어내고 새로운 것을 갈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 탓보다는 내 탓이 필요하다.

그러면 자연히 감사함이 뒤쫓아 온다.


감사함은 결코 시들하지 않은 새로움이다.

매일매일이 그러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들여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