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_의지력을 잃은 그대에게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준비를 거친 사람들입니다.
살면서 한 번도 자기 계발을 안 해본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하게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사람들 중에도 분명 처음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도요.
우리는 시행착오가 나만의 방식대로 조금 길어졌을 뿐입니다.
저도 돌이켜보면 어떤 습관은 아주 오래전부터 습관으로 체화되어있어서 습관으로의 수월했던 일이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적게 먹는 습관입니다.
저는 애초에 예민하고 입이 짧은 체질이라 많은 음식보다는 적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체중도 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께는 평생의 고통이자 미션일 수 있는 체중관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적은 타입에 속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면 스스로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매우 힘이 드는 편이기도 합니다.
저 스스로 납득하고 충분히 설득이 되어야 겨우겨우 그 일을 실행하며 에너지가 적기에 자주 아프고 아침에 쉽사리 일어나지 못합니다.
풍선효과 혹은 등가교환 비슷한 거죠.
저는 2022년 9월부터 핸드폰에 배달 어플을 삭제했습니다.
그 후 단 한 번도 배달을 시키지 않고 직접 요리해 먹거나 포장해오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식당을 하며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이 자양분이 되어 아주 쉽게 습관으로 정착된 사례입니다.
물론 요리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개인의 취향도 뒷받침되었습니다.
반대로 제가 가장 하기 어려운 습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운동입니다.
에너지가 적고 살이 찌지 않고 평소에 잘 아픈 편입니다.
결심은 자주 하는 편이지만 감기에 걸려 아프고 나면 운동에 대한 결심과 의욕이
초기화되어 버립니다.
제가 늘 결심이 시들해지면 책장에서 꺼내어 보는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죠.
게리비숍의 시작의 기술 중 한 구절입니다.
이제 그만 운을 탓하라.
이제 그만 남을 탓하라.
외부의 영향이나 환경을 들먹이는 것도 그만둬라.
당신의 삶은 당신이 참고 싶은 만큼이다.
사전에서 의지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늘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 혹은 그런 자질,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라고 되어있다.
다시 말해 의지나 의향은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다.
의지의 시작도 끝도 당신이다.
아무도 당신이 의지를 갖게 만들 수는 없으며 정말로 다음으로 넘어갈 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진전이란 없다.
마침내 의자가 생기고 나면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갖고 있던 자유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지가 없다면 언제부터였을지 모를 그 지긋지긋한 느낌이 보이지 않는 무게추처럼 당신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의지는 있지만...
그렇지만...
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문장 끝에 그렇지만... 을 붙일 때마다 여러분은 자신을 희생자로 둔갑시킨다.
나는 오랫동안 인생 코치와 멘토를 해오면서 복잡한 사연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두운 과거를 잊고 싶은 사람 현재가 너무 버거운 사람 미래에 대한 공포로 절뚝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듣기 바란다.
여러분을 격앙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의도는 여러분 자신의 잠재력에 불을 붙이려는 것이다.
단순히 화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훌륭함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잠시만 이렇게 상상해 보자. 당신의 인생에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이다.
띄엄띄엄 소심한 그런 의지가 아니라 대담한 의지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고
그에 맞게 행동할 준비가 된 그런 의지, 변화할 의지 놓아줄 의지, 받아들일 의지, 의욕이 넘치는 진짜 마법 같은 의지 여러분이 운명을 좌우하든지 운명이 여러분을 좌우하든지 둘 중 하나다.
여러분이 멈춰 서거나 꾸물댄다고 해서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러분이 확신하지 못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인생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여러분이 뭘 하든 인생은 계속된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든 안 맡든 쇼는 계속될 것이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명은 의지를 가진 자는 앞에서 인도하고 주저하는 자는 질질 끌고 간다.
저자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앞서 서두에 이야기한 저의 이야기를 신랄하게 비판해 줍니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살 의지가 있는가?
아닐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의지가 있는가? 아닐 것이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 지속되지 않을 관계를 참고 견딜 의지가 있는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럴 의지가 없다.
이런 거지 같은 상태를 더 이상 참고 견디고 싶지 않을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뭔가를 하기 시작한다.
종종 더 이상 이 짓을 계속하고 싶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변화의 동기는 없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나는 의지가 있어.라는 단언에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고 나는 의지가 없어라고 선언함으로써 더 큰 힘을 얻고 결의를 다지는 사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양쪽 모두에서 똑같은 동기를 얻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든 자기 단언의 형태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신은 이대로 사는 게 그런대로 참을 만한 게 틀림없다.
저자는 의지가 있든지 없든지 어느 방향이든 의지라는 단어를 추상하는 상태라면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규정해 줍니다.
우리는 의지가 없다면 없다는 쪽으로 쉽게 결론 내어 버리지만 저자는 그 반대의 의지까지 끄집어내지요.
당신은 가난하게 살 의지가 있나요?라고 말하면 몇몇의 사람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자녀에게 가난을 맛보게 해 줄 의지가 있나요?라고 말한다면 그 누구도 그런 의지가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다는 증거입니다.
변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의지를 잃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오래 전의 실패 혹은 삶에 치여 잠시 잊고 사는 중일뿐입니다.
“나에게는 의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