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와의 첫 만남
쌀국수를 해장으로 배웠어요.
서울 금천 소재의 한 언론사 프로모션팀에 입사했었다. 팀 회식이 있는 날이면 우리 팀은 사나이 의리를 외치며 화끈하게 새벽까지 달렸다. 아침에 회사 앞 벤치에 누워 도저히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어찌 되었건 출근은 해야 했다. 이런 정신력을 인정해 주는 팀의 분위기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 나까지 분위기에 감화되어 종종 회사 앞의 벤치에 누워 오전 시간을 취침에 빠지게 했다. 담배를 태우러 오가는 사람들과 회사 내의 부장들이 아는 척할 법도 했지만 다들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저 팀은 원래 저래"
그럴 때마다 점심 해장 메뉴는 쌀국수였다. 길 건너 pho 무엇으로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들러 차돌양지 쌀국수를 주문하곤 했다. 뜨끈한 국물에 숙주를 푹 담그고 손으로 툭툭 찢은 고수와 스리라차 소스 풀어서 육수를 쭈욱 들이켰다. 천년의 숙취도 해장될 것 같은 국물이었다.
경직된 간이 살살 녹으며 다시금 알코올이 올라오는지 다들 이내 얼굴이 벌게졌다. 아래층의 커피숍에서 시원한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씩을 쪽쪽 빨아 들이키면 회식 다음날 일정한 의식처럼 행해지는 하나의 팀 루틴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공고히 오래갈 것 같은 우리 팀은 1년 후 팀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대리였던 나는 졸지에 팀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후배 팀원 하나는 스타트업에 합류하겠다며 안녕을 고했다. 그 팀원은 스타트업 2곳을 전전하며 훗날 상당히 큰 빚을 지게 되었다. 3년을 꾹꾹 눌러 채우고 나도 퇴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스타트업에서 큰 빚을 진 후배가 조심스럽게 연락을 하며 조언을 구했다. 당시의 나는 작은 마케팅 대행사를 운영 중이었다.
"대표님 제가 식당을 하려는데요"
"응? 네가? 너 라면도 못 끓이지 않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대표님"
"배달을 전문적으로 하는 쌀 국숫집이고요. 투자받기로 했어요."
"얼마?"
"5,000만 원요"
전화로 두어 번 뜯어말렸다. 이 험한 세상 레드오션인 배달 시장에서 누가 쌀국수를 배달시켜 먹느냐는 논리였다. 불지는 않느냐? 배달은 누가 하냐? 한 그릇에 얼마 남냐? 세상모르는 답답한 꼰대로 빙의해 제대로 잔소리를 해주었다. 전화로 모자라서 끝끝내 찾아가 취조하듯 장황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도 그 시장에 대해 잘 모르지만 뭔가 알은체를 해야만 했고 그 후배 인생에 뭔가 그럴듯한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핵심과 정곡을 찔러 쌀 국숫집을 차리는 걸 말리고 싶었다. 정작 투자를 하거나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한 채 말만 나불거리는 선배의 모습이 되고야 말았다.
끝끝내 그 후배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며 배달 전문 쌀 국숫집을 오픈했다. 그 후 후배는 4년 동안 꽤나 성실하게 운영하여 지금은 고깃집도 두어 개 같이 운영하며 나름의 삶을 잘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빚도 어느 정도 청산하고 위기를 탈출했다. 쌀국수를 언제 먹어보았냐는 간단한 질문에 너무나 장황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왔다. 그저 국수 한 그릇에 대한 단상 치고는 조금 세밀한 이야기의 전개가 의심스러울 것이다.
그렇다.
나도 결국 쌀 국숫집을 차리게 되었다.
쌀 국숫집을 차린 마케터의 이야기는 그 후배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후배를 뜯어말리던 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