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집을 차리기로 마음먹다.

by WineofMuse

5월 화창한 어느 날 마음속에 바람이 불었다. 너무나 따사로운 질감 좋은 바람은 사람으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게끔 하는 마법과 같은 힘을 함께 날라다 주었다. 그렇게 망할 계시와 같은 뽐뿌를 받았다. 부업으로 동네에 예쁜 쌀 국숫집을 차리고 싶어졌다. 15년 넘게 같은 일만 하느라 고정적인 부업이나 부가적인 수입에 대한 곁눈질도 한창일 때였다.


"우리 동네에는 먹을만한 국숫집이 없어."


아내의 말에 나도 크게 맞장구를 쳤다. 우리 내외는 여행을 가면 반드시 그 지역의 면 요릿집을 두어 곳 들른다. 부산의 밀면집 군산의 짬뽕집, 진주의 냉면, 의정부의 평양냉면 , 강원의 짬뽕 등 나름 각 문파의 성지를 도장 깨듯 방문하곤 했다. 나름 면식의 세계에서는 주름 꽤나 잡았다는 쓸모없는 긍지가 있었다. 동네에 없는 세련된 감성 국숫집에 대한 어렴풋한 열망이 비교적 구체적이면서 두서없이 그려졌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국숫집에는 감성 따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 항아리 상권인 우리 동네에는 왜 쌀국숫집이 없을까?

- 고깃집과 주점은 많지만 식사를 하는 식당은 드물다.

- 깔끔한 인테리어의 개인 업장

- 프랜차이즈는 지양했으면 한다.

- 인스타로 홍보를 열심히 하면 차를 타고라도 오지 않으려나?


이렇게 상상의 나래와 나름 떠오르는 생각들을 순서 없이 정리해보았다. 언젠가는 전국에서 모인 인파가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맛집이 될 거란 당찬 포부도 잊지 않았다. 몇 해 전 회사 후배가 배달 쌀 국숫집을 운영하며 수입이 쏠쏠하다는 이야기도 군불을 살살 때웠다. 그 후배에게 진로에 대한 상담을 늘어놓았다. 몇 해 전 그 후배를 말리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착한 학생처럼 배울 자세가 되었다. 후배는 가진 모든 것을 공유해주었다. 레시피와 노하우 식자재도 공유해주고 빌려주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좌석은 몇 개 없어도 여자 둘이서 운영하는 작고 아름다운 동네 감성 쌀 국숫집을 상상해보았다. 가끔 저녁에는 내가 도와주고 부업 겸해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라도 나에게 떨어진다면 괜찮다는 계산이 섰다. 물론 처형과 와이프의 인건비도 계산에 넣었다. 나는 스스로 욕심 없는 소박한 사람이라는 자평과 함께 착각의 서막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뭔가 추진되고 있었고 멋진 밑그림이 그려지고야 말았다. 마침 처형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현업을 때려치울 듯했고 와이프도 집에서 애들만 키우기에는 근질근질해하며 슬슬 알바라도 해야 할 참이었다.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우리는 모험을 떠나고 싶은 오래된 정착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파랑새호는 이륙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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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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