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보싸오를 아시나요.

맛있는 베트남 음식.

by WineofMuse

모든 것이 욕심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경험이 없다거나 귀가 얇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모든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스펀지 같은 포괄형 인간이라도 된 마냥 어느 순간부터 주변인의 모든 의견을 수용하고 있었다.


뜨거운 쌀국수와 볶음밥이 있으니 차가운 요리가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분짜 혹은 분보싸오, 분보남보 등으로 일컬어지는 요리군이었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자면 얼음이 꽝꽝 언 요리는 아니기에 콜드라고 볼 순 없겠으나 주방으로 보자면 콜드파트가 하나 생기는 셈이었다.


매번 뜨거운 요리만 내는 주방에서 이런 차가운 요리 파트가 생긴 다는 건 상당한 번거로움을 요한다. 우선 신선한 야채의 수급과 관리 부분으로 인해 냉장고의 컨디션을 다시금 확인해야 했다. 대형 매장이 아니고서야 하루에 얼마나 나갈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씻어 둘지 그때그때 씻을지에 따라서도 로스율이 달라지는 신선채소는 업주입장에서도 상당히 난이도가 올라가는 일이었다. 면도 얇은 면으로 미리 불려두어야 하니 면 불리는 것도 종류가 늘어났다. 소량으로 구매해야 할 채소와 과일 등의 가짓수가 늘어나니 장을 보러 다닐 때 동선이 쭈욱 늘어나버렸고 이는 아침마다 장을 보고 야채를 다듬어야 하는 나의 피로로 이어질 따름이었다.


20200306_174122.jpg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그립다.


우리 매장은 그나마 배달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분보싸오에 도전했다. 소고기 볶음과 짜조튀김, 양상추와 어린잎 채소, 파인애플을 분짜 소스에 적셔먹는 형태의 음식이었다. 간략하게 한 줄로 된 설명 안에 정말 많은 과정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소고기를 재우고 볶아야 했다. 불맛을 입히며 달달 볶아 준비한다.

동시에 튀김기에 짜조를 넣고 7분 튀겨준다. 준비된 야채에 고기 얹고 짜조 커팅하여 올리고 땅콩분태를 뿌리면 된다. 이는 쌀국수 하나 만드는 것보다 3배는 넘는 노동력이 소요되곤 하였다.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우스울 일일수 있으나 이 모든 레시피를 맨땅에 헤딩하듯 인터넷을 보고 꾸려내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메뉴가 많다는 건 메뉴의 통일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홀에서 볶음밥 하나, 쌀국수 하나, 매운 쌀국수 하나, 분보싸오 하나 이렇게 들어오면 작디작은 우리 주방은 멘붕에 빠지곤 했다. 기본 쌀국수 1개는 2분도 안되어 나가고 3분 후에 매운 거 하나 나가고 8분 후 즈음에는 볶음밥 나가고 15분 즈음에는 분보싸오가 나가게 되었다.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백종원 아저씨가 왔다면 기함하며 야단쳤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유를 가지고 볶음밥과 매운 쌀국수를 내고 기본 쌀국수를 내고 바로 분보싸오가 따라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때는 고지식하게 되는 것부터 빠르게 내보내자는 게 당연한 듯했지만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였다. 손님도 기다릴 줄 안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듯하다. 15분 정도는 다 같이 기다릴 수 있었다. 쌀국수를 받은 손님은 혼자만 쌀국수를 후루룩 드시고 계시거나 멀뚱히 기다리고 계셨다. 먼저 드시기 민망했을 수도 있고 나름 그럴만한 자리일 수도 있다.


주방에서는 눈치가 보였다. 빨리 드셔야 안 불어 터질 텐데. 쌀국수가 하나 나가고 볶음밥이 나가거나 분보싸오가 나올 때쯤이면 쌀국수를 드시던 분들은 멀뚱하니 앞사람이 식사하는 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주방은 주방 나름대로 다급해지는 손놀림 속에 다른 테이블의 주문이나 포장주문이 오곤 한다. 이러한 악순환에 대해 누구 하나 답을 가진 이가 없었다. 우리는 셋다 식당을 처음운영해 보는 사람들이었고 누구 하나 식당에서 서빙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참 무식했다.


여유를 가지고 해도 되는 일인데 마치 지금 이게 안 나가면 매장이 망할 것처럼 빠르게 빠르게 내보내는 게

뭐 그리 중 헌 일이었을까. 결국 분보싸오는 시들어가는 야채와 타들어가는 점주의 마음과 함께 몇 달이 채 못되어 메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분보싸오만 찾던 손님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발걸음만 돌리게 했으니 얻은 것보단 잃은 게 더 큰 메뉴라 하겠다.


정말 맛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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