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eofMuse Feb 10. 2022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2월 10일 저는 3차 접종 직후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 중입니다.
4인 가족 모두가 동시에 코로나에 걸렸어요.
왼쪽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안통이 있어요.
등도 계속 아프고 왼손은 경련이 일어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전쟁의 포화 속에도 꽃은 피고 시는 쓴다"
정확한 워딩이 이게 맞나 모르겠어요.
인간이란 참 나약하면서도 대단한 존재인듯합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며 일 년 넘게 질질 끌던 글을 코로나가 걸려서 아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3일 중에 하루는 미칠 듯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밥도 못 먹어서 손들 힘도 없는데
이렇게 가열차게 쓰고 있습니다.
제발 이런 상황에서 동트기 전이 밝다거나 별은 폭발 전에 가장 밝게 빛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길 빕니다.
전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고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의 일은 사람 때문이다.
업장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 배우자로 만나 평생을 사랑하고 존중하기로 언약한 사람들도 죽이네 살리네 하며 피 터지게 싸운다.
각자 이제껏 살아온 나날이 너무나 다르기에 서로의 언어가 다르기에 싸우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갈등은 어느 한쪽이 져주거나 수긍해주거나 퇴사를 하면 봉합되는 유한하며 한시적인 갈등이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일하는 업장에서의 갈등은 그 갈등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특히나 와이프의 언니 되는 사람인 처형은 또 다른 국면이었다.
말 만들어도 숨 막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찔할 수밖에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인가
끝나고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학교 짱이 끝나고 옥상 위로 올라오라고 할 때
올라간 그 순간보다
남은 교시 쉬는시간 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야속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나하나의 잘잘못은 기억나지도 않고 가릴길도 없으나 그때를 돌이켜보면 가슴이 좁아지고 숨이차오르는 느낌이든다.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둘 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평범하게 웃고 대화하고 지내지만
앞으로 두 번 다시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부분에서는 아마도 서로 격하게 동조하지 싶다.
그렇게 12달을 지지고 볶던 처형은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딱 1년 만에 가게를 떠나게 되었다.
어쨌거나 미안한 마음뿐이다.
볶음밥을 못 볶던 처형을 들들 볶았던 기억
하루 2시간씩 마감하느라 집에를 안 가서 짜증 냈던 기억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자꾸만 모자 안 쓰고 음식에서 머리카락 나와서 짜증 냈던 기억
뭔 일이건 죄다 와이프 편만 들어서 짜증 냈던 기억
처형은 처형대로 나에 대한 단편들을 기억할것이다.
그때는 적당한거리가 어느정도 인지 가늠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