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여덟 해
그 해의 뜨거운 햇살과 아스팔트는 주린배와 목마름을 동시에 안겨준 폭염이 미웠다.
등꼬리가 말려 올라가 축 처진 어깨가 바닥에 닿아 기어가듯 강변을 오가는 소년이 있었다.
연신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동전이 없는지 한참을 희번뜩 거리다 슬그머니 그늘로 몸을 숨겼다.
일주일째 아무리 바닥을 훔쳐본들 훔칠 건 보이지 않는다.
포장마차를 노리기로 했다.
고무끈으로 칭칭 감아놓은 햄버거 포장마차를 야밤에 몰래 풀어내었다.
소스가 무언지 패티가 무언지 모르고 안에 남아있는 빵봉지만 크게 두 봉지를 들고 한달음에 내달렸다.
쎄앵 쎄앵 하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갈랐지만 8살의 뜀박질이 빨라야 얼마나 빠르다고 귓가의 바람을 스치게 했을까. 구멍나버린 심장에 스쳐 나는 바람소리였을 것이다.
검은 연탄창고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물도 없이 빵을 우적우적 씹었다. 아무리 주린 배로도 물 없이 빵을 마구 쑤셔 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물이라도 적셔줄 만했지만 그마저도 녹녹지 않다.
지갑을 주웠다.
같이 구걸을 하던 친구 하나와 태화 강변을 신나게 달리며 동전을 하늘 높이 뿌려버렸다.
당시돈으로 무려 5만 원이나 들어있었고 우린 점보 소보루 빵을 하나 샀다. 작은 우유를 다 마셨음에도 빵은 반절이 남아 달랑거리며 거리를 배회했다. 그 돈이면 한 달이라도 먹을 것 걱정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방어진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뒤집어진 보트를 바다로 밀어 넣어 놀았다.
선주의 아들이 우릴 마구 때렸고 주머니에 있는 돈도 모조리 털어갔다. 우린 다시 거지가 되었다.
바닥을 훑었다.
오락실물은 마실만큼 마셔서 이미 배는 볼록했다.
배고픔은 슬픈 것도 아픈 것도 부끄러운 것도 망각하게 한다. 길가에 내놓은 짜장그릇을 뒤져봤지만 단무지도 하나 없었다. 열두 번을 왔다가도 죽은 매미 두 마리 말고는 먹을 것이 나지 않는 아스팔트에서 콩 한쪽 날리는 없었다. 아까부터 보인 빨간 점을 주시하고 있었다. 흐물 하게 녹아버린 빨간 사탕 말이다.
먼지가 뽀얗고 모래가 씹혀도 그게 대수랴. 일말의 자존심은 수십 번 거리를 왕복케 했지만 기어이 사탕을 떼어내 입에 넣었다. 염치도 함께 목구멍으로 딸려 들어갔다. 여덜살의 뜨거운 여름 나날이 이런 건 줄 알았더라면
나쁜 형들의 회유에 꼬드김은 달콤했다.
엄마가 있는 대구로 대려다 준다며 다리 밑의 텐트로 데려갔다.
그 안에서 만난 검은 봉지들은 나를 대구로 데려다줬을 뿐 아니라 선사시대까지도 데려갔다.
공룡이 태화강을 떼 지어 몰려다녔다. 그 형들이 불러온 공룡일까 내가 직접 본 공룡들일까 아직도 분간이 가지 않지만 아무튼 공룡을 본 것 같기만 하다. 감이 없을 만큼의 캄캄한 밤이 몇 번이 지나고 나서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엄마를 찾으러 드디어 대구로 출발했지만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단층 숙소였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게 당연했다.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공평하게 순결을 잃었고 순리대로라면 눈알이나 신장 같은 걸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똥파리가 들끓는 재래식 화장실은 하나뿐이었고 아래에서 언제든 음흉한 눈들이 희번뜩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