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합, 결합의 와인

화합을 상징하는 와인들

by 와인파는총각

최근 부쩍 전 세계의 갈등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미국의 관세 정책 등 큼직한 갈등들이 전 세계를 긴장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연히 와인의 역사에서도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기존 질서와 새로운 움직임의 충돌도 있었지만, 수많은 전쟁과 갈등이 와인의 발전사 내에 숨어있다.


그럼 반대로 갈등이 아닌 화합, 결합을 상징하는 와인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번 글에서는 아마 독자분들이 향후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있을 수 있다. 선물용으로 사용할 때 한번 활용해 보길 추천 드린다.



1. 아비뇨네지(Avignonesi) & 까판넬레(Capannelle)의 합작


아비뇨네지 와이너리 전경.jpg 아비뇨네지를 상징하는 와이너리 한 가운데 해시계


유럽의 중세와 와인을 다룬 첫 글에서 간단히 소개된 적 있는 아비뇨네지와, 끼안티 지역의 현대적 정밀함을 자랑하는 까판넬레의 합작 와인이다.


까판넬레는 오래된 농가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1975년 로마 출신의 음악가인 라파엘레 로사노(Rafaelle Rosano)가 농가를 매입한 후, 순수한 산지오베제 품종을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이때 당시 끼안티는 오랜 역사를 자랑했지만 정말 조악한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산지오베제와 다른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순수 산지오베제를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1980년에 끼안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토스카나에는 한바탕 큰 붐이 일어난다. 법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최대한 토스카나의 떼루아를 잘 살릴 수 있는 와인은 만드는 운동, 일명 슈퍼 토스카나 운동이 일어난다. 까판넬레는 여기서 유명한 블렌딩 실험을 하게 된다. 바로 친구인 아비뇨네지와 함께.


아비뇨네지는 당시 기본적으로 와이너리의 뼈대를 이룬 산지오베제 생산과 함께, 국제 품종인 메를로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였다. 메를로 100%로 생산한 ‘데지데리오(Desiderio, 지역에서 유명한 소 이름을 따서 만든 와인이다.)의 히트로, 일순간 메를로 슈퍼스타로 떠오른 시점이였다.


이 둘은 본인들의 장점을 살리기로 한다. 아비뇨네지의 메를로와 까판넬레의 산지오베제를 정확히 절반씩 블렌딩한 와인을 만들기로 한다. 이는 두 와이너리의 화합 뿐 아니라, 어느 한 품종에 우위를 두지 않는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1988년 첫 빈티지를 생산한 이후, 지금까지 두 와이너리는 매년 동일한 블랜딩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로버트 파커를 비롯한 여러 평론가들에게 매년 고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표적인 이탈리아 블렌드 와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2. 펜폴즈(Penfolds)의 그랑지(Grange)


펜폴즈 그랑지.jpg 호주 최고의 아이콘 와인이라고 하면 그래도 그랑지이다. 반박이 거의 힘들 정도.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유명 와인 평론지인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본인들이 선정한 Top 100 와인을 선정한다. 수십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이 순위에서 한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남반구 와인이 이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경우는 역사상 3번이다. 1990년 펜폴즈 그랑지, 2005년 끌로 아팔타(Clos Apalta), 2021년 돈 멜초(Don Melchor)이다. 그만큼 펜폴즈가 가지고 있는 호주 와인 아이콘으로의 입지는 엄청나다.


그랑지를 화합의 와인이라고 부른다면 조금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랑지의 원칙을 하나로 표현하자면 ‘multi-vineyard, multi-district blending philosophy(다수 포도밭·다수 구역을 섞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이해가 갈 수 있다.


그랑지는 한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많은 아이콘 와인들과의 차이 중 하나이다. 남호주 주 내에서 바로사 밸리, 맥라렌 베일, 클레어 밸리, 쿠나와라 등 서로 다른 지역의 쉬라즈 품종을 모두 가져와 만들어낸다. 한 개의 포도밭에서 나오는 순수함도 좋지만, 여러 산지의 포도의 장점을 선별하여 조합하는 것이 그랑지의 철학이다.


각 지역에서 수확된 포도들은 그 특징에 맞춰 양조가 1차로 이뤄진다. 여기서 각 지역의 특징들을 가져온다. 바로사의 힘, 쿠나와라의 구조감, 클레어의 산도, 맥라렌의 질감을 어우러지게 만든 후 오크 숙성에 들어간다.



3. 샤또 무사르(Chateau Musar)



대부분 잘 모르실 수 있으나, 포도의 원산지는 현 조지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기서 처음 재배된 포도가 고대 페니키아 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샤또 무사르의 고향인 레바논은 페니키아의 후손들이 북아프리카로 넘어가 카르타고를 건설하기 전까지 그들이 활약했던 주 무대이다. 한때 1950년대 ‘중동의 파리’라고 불린 이 아름다운 나라는 이슬람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레바논은 매우 젋고 아름다웠다. 수도 베이루트는 역사, 금융, 문화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중동에서 최초로 유명 란제리 패션쇼가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에 이르자, 무슬람의 인구가 점점 늘면서 다수를 차지하자 종교 정체성이 국가 당위성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거기에 약한 중앙 정부의 영향력 또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요르단의 ‘검은 9월 사태’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베이루트를 점거하기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주변 국가인 시리아, 이스라엘까지 군대를 파견하면서, 아름다웠던 베이루트는 동, 서로 분단되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이 내전은 무려 15년간 이어지며 약 15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비극을 맞이했다.


1930년 가스통 호샤르(Gaston Hochar)는 아버지의 가업인 포도밭을 이어받아 와인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그는 와인의 진정한 맛은 숙성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당시 프랑스령이였던 레바논에는 프랑스인들이 가져온 문화가 만연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보르도의 와인 기술이 있었다.


본인도 프랑스 유학을 경험하면서 보르도의 샤토(Chateau) 시스템을 이해한 그는, 레바논에 돌아와서 와인을 만들어낸다. 베이루트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지인 베카 밸리(Bekka Valley)의 고산 지대, 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된 와인은 단번에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는 아들인 세르쥬 호샤르(Serge Hochar)에게 이어진다.


serge-hochar-un-homme-vraiment-exceptionnel.jpg 아버지 가스통이 와이너리를 만들었다면, 세르쥬는 이를 한단계 더 끌어 올렸다.



레바논이 전쟁의 늪에 빠질 때도 이들은 와인 생산을 놓지 않았다.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와인을 생산하였다. 포화를 피해 밤에 몰래 포도를 수확하였으며, 총알을 피해 우회하여 포도를 운반하였다.


1979년 브리스톨에서 열린 와인 페어에서 샤또 무사르의 1967년 빈티지가 처음 영국의 평론가들에게 소개되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의도한 불완전함, 그리고 이것이 주는 완벽함. 전쟁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와인의 위대한 첫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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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동물이 지금까지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혼자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도화된 사회를 통해 협력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다.


물론 이 말을 반박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하루빨리 전쟁과 갈등이 마무리되고 화합의 정신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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