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을 살아갈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요즘 20대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아마 이거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필자의 아들도 지금 군대에 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2026년에 전역해서 2027년에 복학, 2030년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요즘 현실을 보면 예전처럼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면 되지” 같은 계획으론 부족하다. 2025년 뉴욕연준 데이터 기준으로 보면 안전한 길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AI는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다. 사람처럼 디자인하고, 코드 짜고, 글을 쓰며 실제 고객 업무를 대체한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진짜 일할 줄 아는 사람’은 더 강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산업디자인 전공자는 디자인만 잘해서는 안 된다. AI 툴을 활용해 빠르게 시각화하고, 간단한 코딩 감각으로 기술팀과 소통하며, 무엇보다도 ‘고객이 지갑을 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아들에게 많이 놀고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틈나면 여행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만약 아들이 아빠한테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 묻는다면 "디자인, 기술, 비즈니스 세 가지 언어를 배우라고. 예쁜 작품보다 문제 해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졸업 전까지 두세 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라고"하고 싶다. 2030년의 안정된 커리어는 남들이 안 가는 니치에서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열린다. 그게 지금 우리 시대의 정답이다.
“우리 애는 컴퓨터과학 전공이에요. 그래서 걱정 없어요.”
5년 전만 해도 이 말은 강력한 안심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2025년 미국 뉴욕연준의 고용 통계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컴퓨터과학 전공자의 실업률은 6.1%, 미술사 전공자는 오히려 3.0%. 그동안 “비실용 전공”이라 불렸던 예술·인문학이 오히려 더 낮은 실업률을 보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수치의 뒤집힘이 아니다. 노동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기술 기반 직군이 먼저 구조조정의 실험장이 되고, AI가 반복 가능한 고급기술 직무조차 대체하고 있는 지금, 자녀의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술=안정된 직업’이라는 환상이 강하다. 좋은 대학교, 공대, 컴공, 대기업 개발자. 이것이 고용의 사다리를 오르는 공식이었다. 하지만 미국 사례는 이것이 단기적인 착시였음을 보여준다.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앞다투어 도입하며 가장 먼저 줄인 것이 바로 신입 개발자 채용이다. 자동 코드 생성기, 챗봇 기반 Q&A 자동화 등은 초급 엔지니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으며, 실제 현업에서는 경력자 중심의 프로젝트만 남아 신입은 발 붙일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술 배우라’고 권유할 때, 기술 그 자체보다도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단순한 코딩 실력은 AI가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분야를 융합하며, 사용자 관점에서 설계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 교육은 여전히 암기와 추론 중심의 ‘정답 찾기’에 머물러 있다. 많은 학생이 스펙을 쌓고, 인턴을 돌고, 영어 점수를 준비하지만,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힘’은 길러지지 않는다. 심지어 전공이 과학기술 계열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뉴욕연준 보고서는 직무 재설계, 융합형 인재, 역량 중심 고용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어떤 전공을 했는가’보다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채용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자녀가 스펙을 넘어 협업·설계·창의·적응력을 키울 수 있도록 부모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단순한 전공 선택이 아니라 융합을 향한 시야, 목적 중심의 진로 설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까?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해”가 아니라, 다음 네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기술 + X"의 사고를 갖게 하라.
AI시대에는 단일 기술보다, 기술과 타 분야의 융합이 중요하다. 기술 + 디자인, 기술 + 교육, 기술 + 환경, 기술 + 법률. 어떤 X든 좋다. 문제는 기술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다.
둘째, ‘정답’보다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시켜라.
기계는 주어진 문제는 잘 풀지만, 문제를 정의하지 못한다. 창의성과 문제 정의 능력은 인문학, 예술, 사회탐구, 창작 활동을 통해 자란다. 자녀가 다양한 전공을 탐색할 수 있도록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셋째, 실제 프로젝트와 실습 기회를 경험하게 하라.
한국은 여전히 이론 중심이지만, 기업은 실무 경험을 본다. 인턴, 스타트업, 캡스톤 디자인, 공모전, 자율 과제 등 실제 문제를 다루는 경험을 권장하라. 포트폴리오 없는 개발자는 더 이상 의미 없다.
넷째, ‘평생학습자’로서 살아갈 마음을 준비시켜라.
지금 배우는 지식의 절반은 10년 안에 쓸모없어진다. 가장 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롭게 적응하는 사람이다. 자녀가 전공만으로 직업을 결정하려 하지 않고, 배우는 데 익숙해지도록 격려하라.
2030년을 기준으로 예측되는 고성장 직업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 지식보다도 융합적 사고력, 인간 중심 설계, 커뮤니케이션 능력, 지속적 학습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이제 “무슨 전공이 좋아?”라고 묻는 시대는 지났다. “넌 어떤 문제에 관심 있니?”,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니?”라고 물어야 한다.
불확실성과 변화가 일상화된 시대에, 부모는 자녀에게 정해진 경로를 알려줄 수 없다. 대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실패를 격려하며, 계속 배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는 AI와 함께 살아갈 첫 세대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감성과 창의, 협업의 가치는 결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다. 이제는 그 가치를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강력한 ‘직업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