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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

제도권 진입을 향한 자본시장의 새 실험

by 꽃돼지 후니

2024년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가상자산 현물 ETF’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투자자가 기존 증권계좌를 통해 손쉽게 디지털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한 혁신적인 금융상품이다.


이 상품의 등장은 단순한 투자 편의성 확대를 넘어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미국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2024년 1월)과 홍콩 SFC의 동시 승인(2024년 4월)은 제도권 금융이 디지털 자산을 공식 인정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제 투자자는 복잡한 개인지갑 관리나 보안 문제 없이 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있다.
그 결과,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급증하며 가상자산이 하나의 ‘독립된 자산군(Asset Class)’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국, 도입 논의의 문턱에 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 필요성이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되어 있으며 핵심은 가상자산을 ETF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하는 조항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ETF의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은 이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현물 ETF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가상자산 ‘선물 ETF’는 실물 보유가 아닌 계약 기반 상품으로 허용되는 중이다.

이로 인해, 국내 투자자들은 제도권 내에서 가상자산 투자 기회를 얻지 못하고 미국, 홍콩 등 해외 ETF 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곧 국내 자본시장 경쟁력의 구조적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개정안의 핵심 ― “신뢰 가능한 제도화를 위한 설계”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단순히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 구조의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한다.


핵심 조항은 세 가지다:


기초자산 정의 개정(제4조 제10항)
→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명시하여 ETF 설정을 법적으로 허용.


신탁재산 허용(제103조 제1항)
→ 신탁회사가 가상자산을 수탁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
이는 현물 ETF 구조의 핵심인 ‘Custody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


수탁업무 위탁 특례(제109조의2 신설)
→ 신탁업자가 일정 요건 하에 가상자산사업자(VASP)에 수탁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조항.
단, 신탁회사는 실사·감독·보고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투자 인프라에 편입시키려는 ‘규제에서 관리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각국의 흐름 ― 제도권 금융으로 들어온 가상자산


1. 미국

SEC는 10년 넘게 거부해왔던 비트코인 현물 ETF를 2024년 1월 마침내 승인했다.
그 배경에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의 감시공유협정이 있었다. 이를 통해 시장 조작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며 규제된 제도권 내 거래가 가능해졌다.

2025년에는 비트코인·이더리움 ETF를 넘어 솔라나(Solana) 등 주요 알트코인 ETF가 등장하며 시장 다변화가 본격화됐다.


2. 홍콩

SFC는 2024년 4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를 ‘동시 승인’하며 아시아 최초로 양대 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특징은 현물 설정·환매(In-Kind) 방식 허용이다. 이는 거래 효율성을 높이고 추적 오차를 최소화해 홍콩이 “아시아의 가상자산 금융 허브”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영국

FCA는 2025년 8월,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N(상장지수채권)을 소매 투자자에게 개방했다.
영국은 ETF 대신 ETN을 택해 발행사 신용위험을 감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고, 초기에는 전문 투자자 중심으로 시장을 개방했다가 점진적으로 소매시장으로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과제 ― 위험이 아닌, 기회를 관리하라

우리나라의 제도 도입은 이제 법적 정의를 넘어 시장 신뢰와 인프라 설계의 문제로 이동했다.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의 본질은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며 신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과제가 제시된다.


수탁 체계의 신뢰성 강화
→ 가상자산 수탁을 허용하되 신탁회사와 VASP 간의 감독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홍콩처럼 콜드스토리지 의무화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감시 공조
→ 미국의 CME 감시공유 모델을 참고하여 한국거래소(KRX) 내 가상자산 시장 모니터링 체계 구축 필요.


단계적 접근 로드맵
→ 영국처럼 우선 기관·전문투자자 중심으로 제한 개방 후 점진적 확대를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제도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가상자산은 이제 더 이상 변두리의 투기 상품이 아니다. 미국, 홍콩, 영국은 이미 ‘가상자산을 품은 자본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법적 정의 논쟁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내 투자자의 자금이 해외로 흘러가고,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역외에서 성장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의 자본시장이다.

가상자산 현물 ETF는 금융 불안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스스로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금융 질서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지,
그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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