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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화는 미래가 아닌 현실

토큰화, 이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돈이 들어온 시스템”

by 꽃돼지 후니

필자도 2017년 당시 재직하던 회사의 암호화폐 발행과 ICO 밋업을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발표를 했었던 적이 있다. 당시 토큰화(Tokenization)는 컨퍼런스 발표나 백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부동산을 토큰화하면…”, “채권을 토큰화하면…”, “실물자산이 온체인으로…”
슬라이드는 화려했지만, 실제로 돈이 돌아가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 분위기를 바꾼 게 블랙록의 BUIDL이다.

2024년, 블랙록은 이더리움 위에 미국 국채 등을 담는 토큰화 펀드 BUIDL을 올렸다.

출시 후 반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운용 자산은 7억 8,000만 달러 → 18억 달러 수준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2025년 11월에는 25억 달러 규모까지 커졌고, 바이낸스 담보자산으로 편입되고 BNB체인까지 확장됐다.


이건 단순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아니다. 세계 최대 운용사가 온체인 국채 시장에 수십억 달러를 실제로 올려놓았다는 뜻이다.


토큰화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종이 계약과 엑셀 파일로 관리되던 계약·예치·담보 구조가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로 바뀌고,

이자 지급·배당·상환이 자동으로 정산되는 레이어가 생겼다는 것.

이더리움 보유 기업.png 이더리움 보유량

그리고 그 레이어의 중요한 일부를 이더리움이 맡고 있다. 앞으로는 여러 체인과 레이어2, 크로스체인 솔루션으로 분산되겠지만, “토큰화 금융의 핵심 허브 중 하나”라는 지위는 이미 시장이 부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토큰화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already in production”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숫자와 구조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미국 규제, 드디어 방향과 시간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토큰화가 현실이 되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규칙(rule) 이 깔려야 기관 머니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2025년 들어 미국은 이 부분에서 꽤 분명한 신호를 주고 있다.


1. CLARITY Act와 GENIUS Act – 시장 구조를 짜기 시작한 의회

미 하원에서는 2025년,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를 정리하는 CLARITY Act가 발의돼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의 골자는 이렇다.

‘디지털 커머디티(digital commodity)’ 개념 도입

블록체인 기반 자산 중 상당 부분을 상품(commodity) 으로 분류

이 영역에 대한 CFTC 중심 감독 체계 마련


여기에 앞서 통과된 GENIUS Act까지 더해지면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더 이상 디지털 자산을 방치할 수 없다, 시장 구조 법안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다.

상원 쪽에서는 농업위원회 중심으로 별도의 디지털 커머디티 시장구조 초안이 논의되고 있고, CFTC 역할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2. SEC의 태도 변화 – 토큰 택소노미 예고

한편, 그동안 가장 강경한 스탠스를 보여온 SEC도 방향을 조금 바꾸고 있다. SEC는 토큰 택소노미(token taxonomy), 즉 “어떤 토큰이 증권이고, 어떤 토큰이 상품인지”에 대한 분류 체계를 만들겠다고 예고했다.

그동안은 “일단 집행부터 하고, 기준은 나중에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사전에 룰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하겠다는 쪽으로 조금씩 기우는 모양새다.


3. 구조적으로 보면, 그림은 이렇게 정리된다

규정이 아직 100%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큰 방향은 다음 네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비트코인 등 디지털 상품형 자산 → CFTC 감독

자본 조달 목적의 토큰 발행 → SEC 규제 아래, 일부 예외 조항 허용

거래소·수탁사 → 고객 자산과 회사 자산 철저 분리 보관 의무

온쇼어(미국 내)에서 합법적 발행·거래·보관이 가능한 최소한의 규칙 제공


속도는 미국 정치 일정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룰이 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룰이 정리되는 순간, 시장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재분류된다.


비트코인 → 디지털 금, 거시적 헤지 수단

이더리움 → 토큰화 금융·스테이블코인·DeFi의 기본 인프라


이 재분류가 본격화되는 지점부터 이더리움은 “알트코인 중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금융 레이어의 지분”으로 다시 평가된다.


비트마인: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 기관 머니의 우회 통로

규칙이 깔리면, 그다음에는 항상 “누가 먼저 포지션을 잡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비트마인(Bitmine, BMNR) 이다.


1. 비트코인 채굴 회사에서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으로

비트마인은 원래 비트코인 채굴·호스팅 기업이었다. 그런데 2025년 들어 전략을 크게 틀었다.

회사 재무 전략의 중심에 이더리움 트레저리를 두겠다고 선언

채굴 수익 + 에쿼티 발행 자금을 통해 ETH를 장기적으로 쌓는 구조로 전환


2025년 여름, 비트마인은 약 2억 5,000만 달러 규모 자본 조달을 발표하면서 이더리움을 핵심 트레저리 자산으로 매입하겠다고 밝힌 뒤, 주가는 한때 3,000% 가까이 폭등했다.

최근 공시에 따르면,

이더리움 350만 개 보유

크립토 + 현금 자산 합계 132억 달러 수준


온체인 데이터와 각종 리포트를 종합하면, 비트마인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공개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

전체 크립토 트레저리 규모로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MSTR)에 이은 2위

로 평가된다.


2. 누가 이 회사 지분을 사고 있는가

더 흥미로운 부분은 주주 구성이다.

아크 인베스트(캐시 우드): 비트마인을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2%대 비중까지 확대

피델리티(FMR LLC): 대형 주식 포트폴리오 내 비트마인 신규·추가 편입

찰스 슈왑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비트마인 신규 포지션 확보

이 외에도 빌 밀러, 피터 틸 등 이름 있는 투자자들이 지분 매입


즉, 전통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한꺼번에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에 올라타고 있는 구조다.

여기서 메시지는 단순하다.

규제 리스크 때문에 많은 기관은 아직 ETH를 직접 대량 보유하기 어렵다.

대신 ETH를 장기로 쌓는 트레저리 기업의 에쿼티를 사면서,

이더리움에 간접 레버리지 노출을 확보한다.


과거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식을 통해 비트코인에 레버리지 노출을 얻던 패턴이 이제 이더리움 쪽으로 복제되고 있다.이건 시장의 시선이 이미 이렇게 이동했다는 뜻이다.


“이더리움은 그냥 알트코인이 아니라,
앞으로 토큰화 금융과 스테이블코인 레일의 핵심 인프라다.”


기관은 그 인프라 위에 장기적으로 올라탄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가격이 아니라 ‘구간’과 ‘조건’으로 보는 시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이 바닥인가요? 더 오르나요, 떨어지나요?”를 묻는다. 하지만 위에서 본 구조를 전제로 하면, 이더리움을 가격이 아니라 “구간과 조건”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현재 이더리움은 한때 3,900달러 영역에서 3,100달러 초반대까지 약 20% 조정을 받은 상태다.
숫자만 보면 “많이 올랐고, 애매하게 빠진 것 같고” 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구조를 보면, 상황은 이렇게 정리된다.

토큰화 펀드(BUIDL)와 온체인 국채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고,

미국의 시장 구조 법안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고,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들은 보유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아크·피델리티·슈왑 같은 기관은 이 기업의 지분을 통해 간접 ETH 노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 구도에서 1~2년 베이스 케이스를 보면,

시장 구조 법안이 윤곽을 갖추고,

토큰화된 채권·머니마켓 펀드·스테이블코인 규모가 현재의 몇 배로 커지고,

이더리움이 제도권 배관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시점에,


7,500 ~ 12,000달러 구간은 단순 숫자가 아니라 “새로운 밸류에이션 레벨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려될 수 있는 밴드”로 볼 수 있다.


2~4년짜리 불 케이스를 가정하면,

토큰화 자산이 수조 달러 단위로 굳어지고,

스테이블코인 결제망과 ETH 담보 관리가 금융 일상이 되며,

ETH/BTC 비율이 구조적으로 재평가될 때,


20,000 ~ 30,000달러 같은 숫자도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건 코인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 레이어의 지분으로 재평가되는 시나리오에 가깝다.


그 위의 60,000달러 같은 꼬리 시나리오는
“모든 자산이 온체인화되고, 회계와 자본 규정까지 완전히 정렬된 세계”를 전제로 한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영역은 이 꿈의 끝단이 아니라, 베이스 구간이다.


왜 지금이 의미 있는가 – 개인 위에 기관이 올라오는 드문 구간

이번 사이클에서 구조적으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은 기관이 먼저 판을 만들고, 개인이 나중에 올라탄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거꾸로다.

지난 몇 년 동안 개인 투자자가 먼저 이더리움 생태계에 올라탔다.

그 위로 이제 기관 머니가 에쿼티와 토큰화 상품을 통해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 입장에서 흔치 않은 타이밍이다. 제도권이 다 먹고 난 뒤에 남는 부스러기를 쫓아가는 구간이 아니라, 제도권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기 전,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는 구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 몇 % 올랐냐, 떨어졌냐”가 아니라
“지금 깔리는 구조가 5년 뒤, 10년 뒤 어떤 금융 배관이 될 것이냐”

지금까지 살펴본 흐름을 다시 한 줄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토큰화는 더 이상 슬라이드 속 미래가 아니라, 블랙록 BUIDL 같은 실제 운용 자산 위에서 돌아가는 현실 시스템이다. 미국은 CLARITY Act, GENIUS Act, 토큰 택소노미 등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시장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비트마인 같은 이더리움 트레저리 기업은 기관 머니가 이더리움 인프라에 간접적으로 레버리지 노출을 취하는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이더리움 = 탈중앙 실험 토큰”에서 “글로벌 토큰화 금융의 기본 레이어”로 재정의되는 과정이다.


“토큰화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라는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 이더리움과 토큰화를 둘러싼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제는 꿈을 가격으로 미리 사는 단계가 아니라,
앞으로 10년간 실제로 쓰일 금융 배관 위에 베이스를 차분히 쌓는 단계”

토큰화는 이미 현실이다. 다만 우리 시야가 가격 차트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현실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꿀 때다.

“지금이 바닥인가요?”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깔리고 있고, 그 구조 위에서 누가 어떤 자산을 쌓고 있는가?”


토큰화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투자의 포커스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가격은 구조를 따라온다. 지금은 그 구조가 조용히, 그러나 되돌리기 힘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구간이다.
우리가 진짜로 들여다봐야 할 것은 그래프가 아니라 배관 설계도에 가깝다.

이더리움 보유 기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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