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니는 20년 넘게 산행을 하고 산악회를 이끌어온 중급 등산가였다. 그의 등산 앱에는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등 국내 유명 산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 되어었고, 각 산마다 특별한 추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후니는 자신의 산행에 대해 작은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 산악회 회원 중에서 한분이 후니에게 다가왔다.
"산악대장님, 어느 산이 초보 등산객으로 입문하기 가장 편할가요?"
후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변을 해드렸다.
"음 산행에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안산의 자락길 등 서울 시내 산의 둘레길처럼 오르막 없이 편하게 산책하듯이 걷는 길이 있고, 서울의 인왕산,북한산 등 도시 근교 산처럼 천천히 오르다 한번 이상 껄떡 고개를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악산,지라산, 한라산 같은 높은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른 오르막길과 계단 비탈길이 있습니다. 각각의 길은 나름의 특징과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대표님의 체력과 마음가짐에 셋 중 한 곳을 선택하면 됩니다" 후니가 대답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등산 처음부터 무리하게 명성이 높은 산을 선택하기보다는 동네 뒷산같은 야트막한 산으로 시작해 보는게 마음이 편하실겁니다. 산행을 어느정도 하셨던 분이라면 그냥 데표님 마음이 끌리는 산이 가장 좋은 시작이더라고요."
초보 등산객 회원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다고 하면서 인사하고 떠났고 후니는 잠깐동안 자신의 첫 산행을 떠올렸다.
25년 전, 후니가 처음 산에 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처음에는 상사가 함께 산에 가자는 권유에서 시작해서 산행보다는 상사와의 동행을 우선하다보니 무슨 산을 가는지 잘 모른채 따라다녔고 어느정도 스스로 산행을 하게 될때는 그때 보지 못했던 산의 멋진 경치를 보고 싶어서 산행을 하게되었다. 당연히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산행을 통해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는 자꾸만 높고 유명산을 정복하는 것에 열중했다.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국내의 유명한 고봉들을 하나씩 오르며 성취감에 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후니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갔다. 어느 순간부터 높은 산보다는 편안한 산책로가 더 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니는 이제 산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작은 꽃들, 바위의 질감,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이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MS Co-Pliot를 통해 그린 이미지
특히 후니가 좋아하는 것은 옛 추억이 깃든 산길을 다시 걷는 것이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 올랐던 북한산 둘레길, 지인들과 함께 밤새 걸었던 지리산 능선길... 이런 길들을 다시 걸으며 후니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곤 했다.
오늘도 후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서대문 안산-인왕산 둘레길로 향했다. 그 길은 특별히 높거나 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니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후니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했다.
산 정상에 도착한 후니는 깊은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도시의 풍경이 보였고, 가까이에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후니는 미소 지었다. 이제 그에게 가장 좋은 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산하며 후니는 생각했다. '인생도 산행과 같아.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가느냐가 중요해.'
그날 이후로 후니는 산악회 회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가끔이지만 한번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세요. 산행길도 좋고, 해변길도 좋아요 그리고 뒷산의 둘레길도 좋습니다. 그 길이 바로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후니는 이제 높은 산보다는 다시 가보고 싶은 산(또는 길), 다시 먹고 싶은 음식,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다니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마음에 끌리는 산이 제일 좋은 산이고, 그 산의 길이 가장 좋은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