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은행권의 위협

Standard Chartered 리서치 관점으로 본 ‘예금의 대이동’

by 꽃돼지 후니

은행업의 본질은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게 아니라, 예금을 모아 대출로 돌리고(수익), 결제망을 통해 경제의 혈관을 유지하는 것(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은행을 위협하는 것은 “대출 경쟁”이 아니라 “예금의 이탈”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예금이 결제망과 함께 다른 레이어로 옮겨가는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가 내놓은 경고는 바로 여기에 꽂혀 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2028년 말까지 최대 5,000억 달러 규모의 예금 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취약한 곳은 사업이 다각화된 대형은행보다 지역은행이라고 했다. 분석의 기준은 단순했다. 은행의 민감도는 “말”이 아니라 순이자마진(NIM) 의존도로 드러난다. 즉, 예금이 빠져나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은 대출 중심으로 먹고 사는 은행이다.


이 경고가 무서운 이유는 “가능성”이 아니라 “구조” 때문이다. 은행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금고가 아니라 결제 네트워크였다. 그런데 결제와 정산이, 은행의 장부가 아니라 블록체인 위의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예금은 더 이상 은행에 머물 이유가 없다. 이게 스탠다드차타드가 말한 “핵심 은행 기능의 이동”이다.


피델리티의 FIDD가 던진 신호: “이제는 공룡도 발행한다”

시장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바꾸는 사건은 늘 ‘주류의 진입’에서 나온다.
그 점에서 운용자산(AUM) 규모가 거대한 피델리티가 자체 스테이블코인 ‘Fidelity Digital Dollar(FIDD)’를 내놓겠다고 한 건, 상징적 사건이다. 피델리티 디지털에셋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정산 수단이 될 잠재력이 있고, 24/7 실시간 결제·저비용 자금 관리가 개인과 기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이점을 준다고 말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성격”이다.

스타트업이 스테이블코인을 하겠다고 하면 은행은 ‘실험’으로 본다.
하지만 피델리티가 한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의 변방이 아니라 주류의 도구로 재정의된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규제 프레임이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불을 붙인 촉매로 “연방 규제 틀”이 거론된다(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 강화 흐름). 스탠다드차타드 역시 “규율 체계의 진전”이 스테이블코인의 다음 성장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규제가 없어서 크는 게 아니라, 규제가 잡히면서 더 크게 자란다.
이건 은행 입장에서 아이러니다. 은행이 늘 원하던 것은 “규율과 안정”인데, 그 안정이 오히려 새 경쟁자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리는 사다리가 된다.


5,000억 달러 예금 유출의 본질: “예금이 아니라 결제 레이어가 이동한다”

스탠다드차타드 보고서의 핵심은 단순히 “예금이 빠져나간다”가 아니다.
예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예금이 은행에 있어야 결제가 가능했다. 계좌 기반 결제망이 은행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정산을 은행 장부 밖으로 꺼내 놓는다. 스테이블코인 잔액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사실상 즉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준비자산(리저브)은 은행 예금이 아니라 주로 미 국채(Treasuries)와 현금성 자산으로 쌓인다. 이 구조는 “은행 예금 → 은행의 대출 재원”으로 이어지는 전통 파이프를 우회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테더와 서클의 준비금이 은행 예금으로 “재예치(re-depositing)”되는 비중이 낮다고 지적하며, 이 때문에 은행 시스템으로 되돌아오는 돈이 거의 없다고 본다.

여기서 은행의 위협은 두 겹이다.


예금 기반(자금조달) 축소 → NIM 악화
예금이 줄면, 대출을 굴리기 위한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수익성이 압박받는다.

결제망(네트워크) 약화 → 부가수익과 고객 접점 감소
결제는 은행이 고객을 붙잡는 접착제다. 그런데 결제가 코인 레이어로 옮겨가면, 은행은 ‘자금의 출입구’가 아니라 ‘옵션 중 하나’가 된다.


스탠다드차타드가 특히 지역은행을 취약하다고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형은행은 투자은행·자산관리·수수료 비즈니스가 있어 버틸 여지가 있지만, 지역은행은 본질적으로 예금-대출 스프레드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자(수익) 제공” 논쟁이 불씨가 되는 이유

스탠다드차타드 보고서가 짚은 민감한 쟁점이 하나 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 잔액에 대한 이자(또는 보상) 제공 문제다.

은행 로비 단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직접 이자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거래소 같은 제3자가 이자성 보상을 제공하면 예금이 더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크립토 기업들은 이를 ‘경쟁 봉쇄’로 본다. 스탠다드차타드 분석에서도 이 지점이 입법·정책 교착의 핵심 축으로 등장한다.


왜 이게 그렇게 중요할까?

예금 이탈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계산기’다.
만약 사용자가 “은행 예금(낮은 금리) + 느린 송금” 대신
“스테이블코인 잔액(보상 제공 가능) + 즉시 정산”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동은 더 빨라진다.


그리고 이 이동은 특히 고객이 아니라 기업에서 먼저 시작된다. 기업 자금은 “감성”이 아니라 “운영비”다.
정산이 빨라지고, 수수료가 줄고, 자금이 24/7로 움직이면, 그 자체가 이익이다.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개미’가 아니라 ‘재무팀’이다.


단기에는 안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피한 방향”이다

흥미롭게도, 스탠다드차타드는 단기적으로 위협이 즉시 현실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금리 인하 국면에서는 예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경기부양이 대출 성장으로 이어지면 은행이 단기적으로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은 분명하다. 결제 네트워크와 핵심 기능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는 흐름에서 은행은 위협을 받는다.


이 문장을 실무적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은행은 당장 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행의 “좋은 자리(결제의 중심)”는 서서히 흔들린다.

그 자리가 흔들리면, 예금도 결국 따라 움직인다.

이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이다.


은행의 생존전략: “발행”이 아니라 “인프라 재포지셔닝”

그렇다면 은행은 무엇을 해야 하나?

많은 은행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답은 “우리도 발행하자”다.
물론 예금 토큰, 은행 발행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코인 등은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핵심은 ‘발행’이 아니라 결제·정산 인프라에서의 역할 재정의다.


오프램프/온램프(법정화폐 출입구) 장악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법정화폐와 연결되는 관문은 더 중요해진다.

기업 자금관리(트레저리)에서 24/7 정산 제공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이 “실시간·저비용 자금관리”라면, 은행도 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Wealth Management)

규제·컴플라이언스 레이어를 경쟁력으로 전환
트래블룰/AML/KYC는 은행의 강점이다. 이를 ‘규제 비용’이 아니라 ‘신뢰 제품’으로 팔아야 한다.

NIM 의존도를 낮추는 비즈니스 다각화
스탠다드차타드가 NIM을 민감도 지표로 쓴 건, 결국 “대출만으로 먹고 사는 구조는 더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의 적”이 아니라 “은행의 시험지”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을 위협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확히 말하면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을 “파괴”한다기보다, 은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시험지다.

예금은 왜 은행에 있어야 하는가?

결제망은 왜 은행이 독점했는가?

고객은 은행을 왜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5,000억 달러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 된다.
그리고 방향은 한번 정해지면, 결국 시장을 바꾼다.

스탠다드차타드의 경고는 공포 마케팅이 아니다.
“예금과 결제의 중심이 이동할 수 있다”는, 은행업 구조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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