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Native 은행 모델

은행은 무엇을 자동화하고, 누구를 남길 것인가

by 꽃돼지 후니

은행은 오랫동안 ‘신뢰의 기계’였다.
돈을 맡기고, 빌리고, 송금하고, 기록을 남기는 모든 행위는 인간의 눈과 서류, 그리고 규칙 위에서 작동했다. 은행원은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관계를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리스크를 계산하는 전문가이면서도 최종 판단의 책임자였다.

그러나 지금 은행 앞에 놓인 질문은 더 이상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은행은 AI를 도구로 쓸 것인가, 아니면 AI 위에 다시 지어질 것인가.”

ai뱅크.jpg AI Native 뱅크 모델 - 출처:멕켄지

AI-Native 은행 모델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답변이다. 이 모델은 AI를 하나의 기능이나 챗봇으로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은행 전체를 AI를 중심으로 재설계한다. 고객 경험, 의사결정, 데이터와 코어 시스템, 조직과 운영 방식까지 전부 다시 묻는다.

그리고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기술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사람이다. 기존 은행원들의 갈등이다.


AI-Native 은행은 ‘층(layer)’으로 사고한다

AI-Native 은행 모델의 핵심은 구조다.
은행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나 시스템으로 보지 않고, 명확한 층위로 분해한다.

가장 위에는 Engagement 레이어, 즉 고객과 직원이 직접 마주하는 경험의 층이 있다.
그 아래에는 AI-powered decision-making, 모든 판단을 실시간으로 내리는 두뇌가 있다.
그 밑을 받치는 것이 Core technology & data,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Operating model, 즉 조직과 일하는 방식이 놓여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AI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발점은 “은행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다.

AI-Native 은행에서 고객은 더 이상 상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상황이 오면, 은행이 먼저 제안한다.
직원 역시 더 이상 모든 것을 기억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AI 코파일럿이 이미 정리된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때 은행은 빠르고 효율적인 조직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은행원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 된다.


고객 경험은 좋아지지만, 직원의 자리는 흔들린다

Engagement 레이어에서 AI는 거의 항상 환영받는다.
고객 입장에서는 분명하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받는다.

모바일, 웹, 콜센터, 챗봇은 하나의 여정으로 통합되고, 고객의 맥락을 이해한 추천이 이루어진다. “왜 이런 상품을 추천하는지”까지 설명해주는 AI는 설득력이 있다.

직원에게도 AI는 처음에는 도움이 된다.
상담 요약, 고객 이력 정리, 다음 행동 제안. 생산성은 눈에 띄게 올라간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균열이 시작된다.

기존 은행원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경쟁력은 기억력과 경험이었다.
어떤 고객이 어떤 성향인지, 어떤 상품을 싫어하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그 ‘감각’이 곧 실력이었다.


AI-Native 은행에서는 이 감각이 데이터로 변환된다.
그리고 데이터가 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자산이 아니다.
조직의 알고리즘이 된다.

은행원들은 묻게 된다.
“그럼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지?”
“이 판단에 내가 책임을 지는 건가, AI가 지는 건가?”


의사결정 레이어: 권력이 이동하는 곳

AI-powered decision-making 레이어는 이 모델의 핵심이자,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AI 에이전트들이 있다.
신용위험을 계산하는 에이전트, 사기를 탐지하는 에이전트, 마케팅을 최적화하는 에이전트, 규제를 검토하는 에이전트. 그리고 이들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가 있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변화는 결정의 속도가 아니라 결정의 주체다.


과거에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지점장, 본부장, 심사역, 리스크 책임자.
AI-Native 은행에서는 이 역할이 흐려진다.

AI는 “추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지를 극도로 좁힌다.
인간은 승인 버튼을 누르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이때 기존 은행원들의 갈등은 기술이 아니라 권력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내가 틀렸을 때 책임지는 건 여전히 나인데,
내가 맞았을 때 공은 왜 알고리즘의 성과가 되는가?”

AI-Native 전환에서 가장 큰 저항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데이터와 코어 시스템: 보이지 않는 전쟁터

AI는 데이터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AI-Native 은행 모델에서 Core technology & data 레이어는 단순한 IT 문제가 아니다. 이는 권한과 통제의 문제다.

단일 고객 뷰, 실시간 데이터 흐름, 마이크로서비스 기반의 코어 뱅킹.
이 모든 것은 기존의 부서 중심, 시스템 중심 은행 구조를 해체한다.


과거에는 데이터가 부서의 자산이었다.
여신 데이터, 수신 데이터, 카드 데이터, 리스크 데이터.
AI-Native 은행에서는 데이터는 플랫폼의 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한다.
“우리 부서의 전문성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관리하던 시스템은 왜 해체되는가?”

많은 은행들이 기술적으로는 AI를 도입하지만, 조직적으로는 AI-Native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터는 연결됐지만, 권한은 분리돼 있다. AI는 계산하지만, 결정은 여전히 정치적이다.


운영 모델의 전환: 은행원이라는 직업의 재정의

AI-Native 은행 모델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Operating model, 즉 사람과 조직이다.

이 모델은 은행원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데이터를 입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
규칙을 암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외를 정의하는 사람.
실행자가 아니라, 감독자이자 설계자.

하지만 모든 은행원이 이 전환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이렇게 느낀다.

“우리가 쌓아온 전문성이 하루아침에 무효화되는 것 같다.”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곧 쓸모없어지는 것 아닌가.”

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AI-Native 전환은 실패한다.


기술은 도입되지만, 조직은 따라오지 못한다.
AI는 실험 단계에 머물고, 현업은 우회한다.

AI-Native 은행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기존 은행원을 지키기 위해 AI를 제한할 것인가,
AI를 살리기 위해 은행원의 역할을 다시 정의할 것인가.


AI-Native 은행이 던지는 불편한 진실

AI-Native 은행 모델은 말한다.
AI는 비용 절감 도구가 아니라, 은행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힘이라고.

이 모델이 완성되면 은행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판단을 한다.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더 일관되게.

하지만 동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은행은 여전히 ‘사람의 산업’인가?
아니면 규제된 알고리즘의 집합체인가?

AI-Native 은행의 성공 여부는 기술이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기존 은행원들과의 갈등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은행만이 이 전환을 완주할 수 있다.


AI는 은행을 대체하지 않는다.
은행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은행을 대체한다.

그리고 지금, 그 선택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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