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예전 같으면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겠지” 하는 말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몸의 탄력은 예전만 못해도, 삶 전체를 바라보는 눈은 훨씬 여유롭고 깊어졌다.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등산과 트레킹, 배드민턴, 글쓰기, 모임, 여행과 새로운 도전을 나만의 저속노화 공식으로 삼고 있다.
행경산악회가 있는 토요일이면 새벽에 나와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산악회 모임이 없을때는 혼자 뒷산인 인왕산과 안산을 주로 산행한다). 산 입구에 서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여기까지 걸어 들어올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예전에는 정상을 얼마나 빨리 찍느냐가 중요했다. 요즘은 오르막에서 숨이 차오를 때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다리 근육이 천천히 뜨거워지는 감각을 즐긴다. 이게 내 식의 저속노화다.
능선에 올라서면 숨이 정리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건 속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을. 젊을 때는 항상 “더, 빨리, 많이”에 쫓겼다. 지금은 “덜, 천천히, 깊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그 자유가 나를 천천히 나이들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내 삶을 더 젊게 만든다.
하산길은 또 다른 훈련이다. 내려갈수록 무릎이 말을 한다. “이제 조심해라.” 그래서 예전처럼 뛰어 내려가지 않는다. 발을 어디에 어떻게 디딜지, 다음 한 걸음만 집중한다. 이 단순한 행위가 나에게는 일종의 움직이는 명상이다.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머릿속에 쌓여 있던 잡음이 정리된다. 산에서 몸을 쓰는 시간은 결국 내 마음과 생각을 재부팅하는 시간이다.
주 2~3회 배드민턴을 치러 체육관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나이를 잠시 거기 문 앞에 두고 들어간다. 라켓을 잡고 첫 서브를 넣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숫자가 지워진다. 상대의 셔틀콕이 네트를 넘어올 때, 지금 이 공을 받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만 중요하다.
예전에는 이기고 지는 게 너무 중요해서, 실수 한 번이면 표정이 굳고 상대의 실수에는 속으로 웃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다르다. 멋진 스매시를 성공시키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상대가 좋은 샷을 넣어도 같이 감탄한다. “방금 그건 완전히 하이라이트 거리야.” 이렇게 말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가 바로 나이 들며 얻은 보너스다.
몸은 솔직해서, 랠리가 길어지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그때마다 선택지가 생긴다.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대충 넘길 수도 있고, 한 번 더 버텨볼 수도 있다. 나는 가능하면 후자를 택하려고 한다. 한 걸음만 더, 한 번만 더 버티는 이 습관이 결국 내 일과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코트에서의 끈기가 삶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조금씩 키워준다.
코트 옆 벤치에서 함께 땀을 닦는 사람들도 소중한 자산이다. 직업도, 나이도, 배경도 다르지만 셔틀콕 하나 사이에 두고 매번 진심으로 부딪히다 보면 묘한 동료애가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 사귀는 일이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셔틀콕 덕분에 그 장벽을 조금은 낮출 수 있었다.
등산과 배드민턴으로 몸을 쓰고 나면, 나에게는 또 하나의 루틴이 남아 있다. 글쓰기다. 정기적 칼럼을 쓰고, 디카시를 써보기도 하고, 한달에 한번 이상은 강의를 하고, 2년마다 책도 출간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이 시간은 내게 두 번째 호흡과 같다.
예전에는 글쓰기와 강의가 ‘성과’였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 했다. 하지만 이제 글쓰기와 강의는 ‘나를 위한 기록’에 가깝다. 오늘 산에서 느꼈던 작은 기분, 배드민턴 코트에서의 한 장면, 모임에서 나눈 대화 하나를 붙잡아 문장으로 옮긴다. 그렇게 하루의 조각들을 글로 묶다 보면, 그냥 지나갔을 기억들이 의미를 가진다.
글을 쓰다 보면 불편한 감정도 마주하게 된다. 아쉬움, 후회, 두려움. 예전에는 이런 감정들을 애써 밀어냈다. 지금은 오히려 문장으로 꺼내놓는다. 종이에 적힌 내 두려움은 마음속에 숨어 있을 때보다 훨씬 작고 다룰 만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50 이후의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생각의 정리’이자 ‘삶의 압축’이다. 하루를 세 줄로 정리해보려 애쓰면, 자연스럽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이었지?”를 물어보게 된다. 그 질문을 반복할수록, 내 인생의 우선순위도 조금씩 명확해진다.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더 잘 보인다.
한달에 한번 정도로 강의를 하는 이유는 지식 전달을 넘어선 '존중의 경험'에 있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공감해 줄 때 비로소 내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실감한다. 청중의 존중은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피드백이며, 그 에너지는 다시 나를 공부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어준다.
나이가 들수록 새 모임에 나가는 일이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만든다. 행복한경영대학 모임, 20년 가까이 브릿지피플 모임과 아이틴 모임, 좋은 선배와 후배와 함께하는 그냥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근황을 나누는 모임까지.
이 모임들의 공통점은 ‘서로의 삶을 들어주는 장’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녀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회사 고민을 털어놓고, 또 누군가는 요즘 시작한 취미를 자랑한다. 나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비추어 본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지? 나는 어떤 속도로 나이 들어가고 있지?” 그런 질문들이 과하지 않은 긴장감을 준다.
관계는 에너지다. 모임에서 좋은 대화를 나눈 날은 집에 돌아오는 길이 가볍다. 똑같이 늦은 밤인데도 피곤함보다 충만함이 더 크다. 반대로, 어떤 모임은 나를 소진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더 신중히 고른다. 나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서로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려 한다.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관계의 ‘양’이 아니라 ‘결’이라는 것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배웠기 때문이다.
모임을 통해 느낀 또 하나의 사실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늙어간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과, 반대로 이미 마음이 먼저 늙어버린 사람을 동시에 만난다. 차이는 결국 태도와 생활 방식이다. 이걸 곁에서 직접 목격하니, 내가 어떤 쪽에 서고 싶은지도 더 분명해진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완전히 낯선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보기도 하고, 처음 가보는 나라로 홀로 떠나보기도 한다. 이런 선택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 나이에 그런 걸 왜 해?” 예전 같으면 그런 말에 움츠러들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오히려 속으로 웃는다. “바로 이 나이니까 하는 거지.”
새로운 도전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처음 가본 산의 미답 코스를 택하는 것, 해보지 않았던 운동을 한 번 체험해보는 것, 평소 잘 안 읽던 장르의 책을 읽어보는 것도 도전이다. 중요한 건 두려움이 생겼을 때, 그 두려움의 크기만큼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제 익숙한 것으로 만족하라”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해진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가보려 한다. 익숙한 것에만 머물면, 몸과 마음은 점점 움직임을 잃는다. 세포가 움직임을 잃을 때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듯, 삶도 마찬가지다. 움직임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해서 ‘처음’이라는 단어를 내 삶 속에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국내 혹은 해외 여행을 떠나려 한다. 멀리 가지 못하는 달에는 당일치기라도 새로운 도시나 낯선 동네를 찾는다. 여행은 내게 일종의 리셋 버튼이다.
낯선 호텔 침대에서 눈을 뜨는 아침, 창밖 풍경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에 박혀 있던 일상적 고민들이 거리를 둔다. 회의 일정, 이메일, 보고서 대신 “오늘은 어디를 걸어볼까, 무엇을 먹어볼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 단순한 질문의 전환이 내 정신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번 체감했다.
여행지에서의 걷기는 산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그 도시의 공기와 냄새,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언어, 표정, 옷차림을 관찰하다 보면, 내 삶의 기준이 조금씩 흔들린다. “꼭 이렇게 살 필요는 없겠구나. 다른 방식들도 있겠구나.” 이런 깨달음은 나이 들어서도 사고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여행은 시간 감각을 바꿔준다. 일상에서는 늘 바쁘고,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월요일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하루가 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충분히 맛보고 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여행 중에는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는다. 한 곳을 오래 머물며, 느리게 관찰하고, 충분히 쉬는 여행을 선호한다. 이것 역시 저속노화의 한 방식이다.
등산과 트레킹으로 몸의 기본기를 유지하고, 배드민턴으로 심장을 두드리며, 글쓰기로 생각을 정리하고, 모임에서 관계를 다지고, 새로운 도전과 여행으로 삶의 자극과 설렘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실험 중인 ‘50 이후 더 재미있게 나이 드는 법’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활동이 어떤 거창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오래 살기 위해서도, 더 대단해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오늘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내일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지만, 내일만을 위한 투자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호흡, 걸음, 한 줄의 문장, 한 잔의 커피, 한 번의 대화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선택들이다.
물론 나도 가끔은 게으름을 피운다. 운동을 빼먹고, 글을 미루고, 사람 만나기 귀찮아서 약속을 취소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잠시 스스로를 탓하다가도, 금세 마음을 돌린다. ‘괜찮다,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늙어가기로 한다. 조금 느리게, 조금 유연하게, 조금 더 재미있게. 산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오듯, 50 이후의 인생길도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꽤 괜찮게, 꽤 재미있게 나이 들어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