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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Oct 12. 2021

아이의 첫 입시 시험곡

8년 전 , 딸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주했던 예중 입시곡

불꽃같은 짧은 삶을 살았던 자끌린느 뒤 프레, 그녀의 첫 입시곡은 어떤 곡이었을까요?

(영상 출처: https://youtu.be/ofPnQqUSs4M)

Jacqueline du Pre - Boccherini cello concerto in B-flat no. 9, G.842 III. Rondo


오늘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첼로 콘체르토 한 곡을 떠올려봅니다.

자끌린느 뒤 프레의 연주로 듣는 보케리니 첼로 콘체르토 9번 3악장 론도예요.


제 딸아이는 첼로를 전공하는 음대생입니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지만 8년 전 바로 이맘때에는 예중 입시를 준비하는 어린 초등학생이었지요. 얼굴은 통통한 젖살이 아직 안 빠진 아기 같은데 덩치보다 큰 첼로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입시'라는 중압감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현악기는 아주 어려서 시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취미로만 배우다가 갑자기 6학년 초에 예중 입시를 결정하게 되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전공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학생들과 실력을 겨루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재능도 있고 처음에 첼로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으로부터 자세, 운지법 등을 제대로 배운 덕분에 입시 준비를 늦게 시작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예중에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시작한 입시 뒷바라지가 몇 년 전 음대 입시를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 아직 안 끝난 건가요? 대학원, 유학 등등... 공부를 더 하자면 끝도 없이 보이지만 이제 성인이고 지금부터는 본인이 알아서 할 몫이니 그 부분은 패스하렵니다.


예중을 다니면서 예고 입시를 준비하고, 그리고 수많은 향상 무대( 발표회) 와 실기 시험을 치르고 그리고 음대 입학을 하기까지 정말 아이와 함께 가슴 졸이고, 울고, 웃고, 좌절하고, 싸우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특히나 첼로는 악기가 커서 항상 차로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에 예중, 예고 6년은 아이와 거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아이 입시 이야기는 정말 할 이야기가 많고 버라이어티해서 따로 연재를 하도록 할까 생각 중이에요.)


음대 입시까지 경험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예중 입시는 별것 아니었네'라고 생각이 들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떨리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입시란 것이 처음이고, 입시 준비 콩쿨이란 것도 뭔지 몰랐고, 레슨 선생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반주 선생님은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안정 시켜주어야 할지, 슬럼프가 오면 엄마는 어떤 역할을 해 주어야 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엄마로서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딸'은 처음 키워봤고, 입시생 엄마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모든 것이 서툴고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스럽게 보이지만 딸과 제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상처도 많이 남았고요. 주변에 누가 자녀 음악 전공을 시킨다면 '이런 이런 것은 정말 조심하라'라고 해 줄 이야기도 많습니다. 경험자로서 말이죠.


스산한 가을바람이 더 춥게 느껴지고, 트렌치코트 깃을 공연히 여몄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수험장에 들어간 아이의 손이 따뜻하게 풀어졌을까, 잘 하던 곳에서 막히거나 실수는 하지 않을까, 앙보한 악보를 긴장해서 홀랑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실기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활짝 웃는 낯으로 나와주기를 바라는 그 간절했던 마음... .


10월 중순이면 예중 입시가 있고요. 곧이어 11월 초에는 예고 입시 그리고 12월부터 음대 입시가 줄을 잇습니다. 물론 대입 수시 실기시험은 벌써 시작되었고요. 2월 마지막 날까지 음대 합격자 발표는 이어지며 수험생과 부모들은 발을 뻗고 자기 힘들게 됩니다. 이제 입시의 계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입시를 앞두고 떨지 않는 법을 익히기 위해 인형 관객을 놓고 시뮬레이션 연주를 하는 딸입니다.


그 당시 아이가 예중 입시를 앞두고 긴장이 되니까 집에 있는 인형들을 전부 꺼내 의자에 앉히고 관객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 가운데 저희 집 개 님도 관객으로 로열석에 앉아주시고... .

마음 같아서는 8년전 딸아이 연주 동영상도 올려보고 추억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딸로부터 바로 sns 차단을 당할 것 같아서 그건 못하구요. 사진만 살짝 올려봤습니다.


애틋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남겨 둔 사진을 오늘 찾아 다시 보았습니다.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울컥합니다.


이제는 음대생이 된 아이가 오늘도 첼로를 등에 지고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다며 학교로 새벽같이 나가더군요. 키도 커서 첼로를 등에 져도 별로 버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많이 컸어요. 고사리 같던 손으로 연주하던 저 곡, 지금 연주하라면 더 깊고 풍부한 어른의 소리를 내겠지요.


오늘 들어보는 자끌린느 뒤 프레의 연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 마음속의 보케리니 첼로 협주곡은 어딘가 미숙하고 앳된, 바들바들 떨며 더러 틀려 가면서 연주하던 제 딸의 8년 전 연주로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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