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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Dec 05. 2021

식당 사장 하루 종일 사부작거린 이야기

자잘한  일과로 채워졌지만 소중한 오늘 하루

제가 하는 식당의 일요일은 손님이 별로 안 계셔서 바쁘지 않습니다.


블로그 체험단이라든지 리뷰 이벤트 마케팅, 이런 걸 해야 소문이 많이 나서 먼 곳에서도 손님이 좀 오실 텐데 그걸 하지 않으니 그런 것 같아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블로그 체험단' 하라는 마케팅 회사 전화를 받지만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다 보니 아직은 차차 입소문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대신 가까운 곳에 계신 분들이 주중에 이용을 해주시는 빈도가 늘어서 주중에 번 돈으로 먹고 살아가는 중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오늘 역시 '한가한' 일요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땅거미가 질 시간이네요. 어둑어둑해지는 이 시간은 제가 제일 좋아하면서도 제일 싫어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한 일을 정리해 보면서 한 주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연하게 커피도 한 잔 내려왔어요.

먼저 오늘 한 일 가운데 가장 품이 많이 든 일은 유리창 닦기였습니다. 바깥 테라스 쪽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걸 한 달 전쯤 철거했거든요. 제가 들어오기 전에 먼저 가게를 하시던 분이 만든 창고인데 그걸 헐고 나니 맞닿았던 유리창이 드러나면서 닦아야 했습니다.


마음으로만 벼르고 벼르다가 오늘 해치웠습니다. 창이 아주 맑아졌어요. 어스름 해가 질 시간이 되니 주변 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고 바깥이 어두워지면서 그 진가가 드러나네요. 역시 유리창 닦는 데는 신문지가 제일이더군요.

그리고 테라스에서 키우던 로즈메리 등 허브 화분을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겨우내 실내에서 동거해야 할 텐데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손이 닿으면 물 안 먹어도 잘 큰다는 선인장도 얼마 안 지나 명을 다 하니까요.

손님이 오시면 매일 연주하는 그랜드 피아노도 싹 닦아주었습니다. 뽀얗게 묻어나는 먼지를 보면서 좀 창피하고 미안했어요.

집에 가져갈 반찬도 만들었습니다. 메추리알 장조림, 가지무침, 감자채 볶음, 돼지고기 김치찌개, 새우가스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반찬입니다. 냉동해두었던 호두 파이도 몇 조각 넣어주었구요.


가지무침은 처음부터 기름을 넣고 볶으면 가지가 기름을 한없이 흡수해서 너무 느끼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오븐에 구워 수분을 제거하고 바로 양념을 묻히곤 합니다. 그러면 오득오득 씹는 맛도 있고 기름지지도 않지요.

중간에 도시락 포장 주문도 들어와서 부랴부랴 해 냈습니다. 한식 도시락인데 가끔 배달이나 포장으로 주문이 들어옵니다. 한식 도시락은 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요리를 좀 하는 분들은 느끼실 테지만 한식이란 메뉴가 만드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배달 도시락을 보면 대부분 반찬이 다양하게 들어간 메뉴보다는 덮밥이나 1-2찬 정도의 단품 도시락이 많습니다. 반찬 만들어 구색 맞춰 채운다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서요.

신메뉴도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가지 치즈구이'입니다. 가칭이라서 이름이 좀 길어요. 재료와 조리법이 한눈에 직관적으로 읽힐 수 있는 기가 막힌 이름을 짓느라 고민 중입니다. 레드 와인이랑 잘 어울리는 메뉴인데 손님들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녁 겸 간식 겸 만들어 본 떡볶이와 군만두입니다. 군만두는 비비고 제품인데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저렇게 먹음직스러운 컬러의 군만두가 나옵니다. 떡볶이도 색감이 그럴듯하지 않나요?


와인바 사장이 떡볶이도 제법 잘 만듭니다. 와인바 열기 전에 분식집 할 때 컵 떡볶이도 팔았었는데 그때 참 행복했어요. 하굣길 학생들이 제가 만든 빨간 떡볶이 한 컵씩 들고서 꼬치에 찍어 먹으며 재잘재잘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 예뻤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꾸는 먹는장사 관련한 꿈은 정말 이루어지나 봅니다. 예전에 아나운서로 방송일을 할 때 제 꿈 중의 하나가 나중에 퇴사하면 작은 떡볶이집 하면서 컵 떡볶이랑 꼬치 어묵 팔아보는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다음에는 와인 술집을 하나 차려서 좋아하는 와인을 팔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여기까지 두 가지의 꿈은 이룬 것 같아요.


기왕이면 '큰 부자가 되는 식당'에 관한 꿈을 꾸어볼걸... 그렇게까지 꿈이 구체적이진 않았던 것이 좀 후회가 되네요.


일요일은 저녁 8시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습니다. 아직 와인바가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서 휴일은 따로 없구요. 일단 매일 문을 열고, 또 코로나로 인해 영업에 제한도 받는 마당이라서 눈치를 좀 보는 중입니다. 대신 하루 정도는 휴식 시간을 좀 길게 갖기 위해 일요일에 문을 좀 일찍 닫습니다.


만들어 놓은 반찬 가지고 집에 가서 냉장고 정리도 하고, 강아지 두 마리랑 밀린 놀이도 좀 하고, 드라마 다시 보기로 힐링도 하면서 한 주를 마감하려 합니다.


내일부터는 당장 방역 수칙이 달라져서 인원수 제한을 받게 되는데 손님들이 많이 오실지 어떨지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연말 특수를 누려봐야 할 텐데 거의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지요?


어떤 숫자로 매출 장부가 채워질지, 어떤 손님들을 또 새롭게 만나게 될지, 자잘한 일상은 또 어떻게 채워질지 새롭게 펼쳐질 한 주가 그래도... 그래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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