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올로

Nebbiolo

by 개인 척한 고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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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앤 로지즈(Guns & Roses). 올드 락 팬이라면 알 만한 밴드다. 밴드는 모르더라도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이라는 그들의 히트곡은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뜬금없는 밴드 타령을 한 것은 네비올로 품종을 표현하는 '타르와 장미'라는 표현을 보니 문득 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재 감성, 해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네비올로는 오렌지 빛 감도는 옅은 루비 컬러에 장미 같은 붉은 꽃향기와 타르 미네랄, 야생 허브, 딸기, 체리 같은 붉은 베리, 붉은 자두, 감초, 정향, 사향 등 복합적인 풍미가 특징이다. 입에서는 탄탄한 구조와 벨벳 같은 타닌이 웜 스파이스 힌트와 함께 온화한 느낌을 선사한다. 몇 년 동안 숙성하면 담뱃잎, 송로 버섯, 그리고 낙엽 쌓인 부엽토 같은 고혹적인 뉘앙스가 더해진다.


네비올로는 대표적인 만생종이다. 10월 말이 되어야 겨우 수확할 수 있다. 네비올로의 주산지 피에몬테(Piemonte)의 언덕에는 수확기가 되면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네비올로라는 이름이 이탈리아어로 안개를 뜻하는 네비아(Nebbi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고귀한 포도라는 의미로 노빌레(nobile)라는 단어에서 파생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말이다. 둘 다 네비올로 품종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20230927120041187760.jpg [피에몬테의 주요 네비올로 생산지역(출처: 와인폴리)]

네비올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롤로(Barolo), 그리고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다. 바롤로는 명실공히 최고의 네비올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바롤로 마을을 비롯해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몬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 라 모라(La Morra) 등 열한 개 마을을 포함한다. 바르바레스코는 바르바레스코 마을과 네이베(Neive), 트레이소(Treiso), 산 로코 세노 델비오(San Rocco Seno d'Elvio) 등 네 마을이다. 토양과 미세 기후는 마을마다 다르다. 심지어 같은 마을에서도 포도밭마다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다양한 마을과 포도밭의 포도를 블렌딩해 와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르고뉴(Bourgogne)와 같이 포도밭별로 양조해 개별 크뤼(Cru)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바르바레스코도 마찬가지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MGA(Menzione Geografica Aggiuntiva)를 통해 그랑 크뤼급 포도밭을 공식화하는 중이다. MGA는 바롤로에 181개, 바르바레스코에 66개가 있다.


바롤로는 오크 숙성 18개월 이상 포함 최소 38개월 숙성해야 한다. 리제르바(Riserva)는 오크 숙성 18개월 이상 포함 최소 62개월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긴 숙성을 통해 타닌은 부드러워지고 복합적인 부케와 깊은 맛을 드러낸다. 보통 빈티지로부터 10년 후에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르바레스코는 바롤로보다 의무 숙성 기간이 짧다. 오크 숙성 9개월 이상 포함 최소 26개월 숙성하면 된다.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9개월 이상 포함 50개월 숙성한다. 때문에 바롤로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마실 수 있다. 모두 네비올로 100%로 양조한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바로 북쪽 타나로 강(River Tanaro) 건너편에 네비올로를 생산하는 DOCG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로에로(Roero)다. 바롤로, 바르바레스코와 유사한 스타일을 만들지만 가격은 더 저렴해 대안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네비올로를 95% 이상 사용해야 하며, 오크 숙성 6개월 이상 포함 최소 20개월 숙성해야 한다.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6개월 이상 포함 최소 32개월 숙성한다. 로에로에도 153개의 MGA가 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로에로를 포함한 랑게 지역을 커버하는 DOC는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다. 네비올로를 85% 이상 사용해야 하며, 숙성기간의 제한은 없다. 때문에 생산자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잘만 고르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환상적인 품질의 와인을 만날 수 있다.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보통 네비올로 100%로 미디엄에서 미디엄 풀 바디의 레드 와인을 만들지만, 전통 방식 혹은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양질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DOCG 가티나라(Gattinara)와 겜메(Ghemme)는 좀 더 북쪽이다. 바롤로에서 120km 거리에 있으며 포도밭 면적도 두 마을을 합쳐 200 헥타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철분이 풍부한 자갈 섞인 화산토양과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네비올로 재배의 최적지로 꼽힌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의 와인이 바롤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 같은 바롤로 생산자가 이 지역을 주목하는 이유다. 네르비(Nervi), 안토니올로(Antoniolo), 트라발라니(Travaglini) 등의 와인을 만난다면 꼭 맛보기 바란다. 이 지역에서는 네비올로를 스판나(Spanna)라고 부른다. 가티나라는 네비올로를 90% 이상 사용해야 하며, 오크 숙성 24개월 이상 포함 최소 35개월 숙성한다.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36개월 이상 포함 최소 47개월이다. 겜메는 네비올로를 85% 이상 사용한다. 오크 숙성 18개월 이상 포함 최소 34개월,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24개월 이상 포함 최소 46개월이다.


피에몬테 이외에 수준급 네비올로 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지역은 롬바르디아(Lombardia) 최북단에 위치한 발텔리나(Valtellina)다. 이 지역에서는 네비올로를 키아벤나스카(Chiavennasca)라고 부른다. 발텔리나 로쏘는 기본적으로 네비올로를 90% 이상 사용한다. 기본급은 피에몬테의 네비올로에 비해 타닌과 신맛, 바디감 등이 전반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DOCG 등급인 발텔리나 수페리오레(Valtellina Superiore)는 바르바레스코에 필적하는 스타일이다. 오크 숙성 12개월 이상 포함 최소 24개월 숙성하며, 리제르바는 3년 이상 숙성한다. 건조한 포도로 만드는 스포르자토 디 발텔리나(Sforzato di Valtellina)는 최소 알코올 기준이 14%로, 드라이한 풍미에 묵직한 바디감을 지녔다. 오크 숙성 12개월 이상 포함 최소 20개월 숙성한다.


네비올로는 피에몬테 등 이탈리아 북서부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적합한 재배지를 찾지 못한 것 같다. 호주는 빅토리아 북동부, 야라 밸리, 애들레이드 힐스 등 서늘한 지역에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주, 오리건, 캘리포니아 등에서 일부 재배한다. 재배 지역도 많지 않은데, 수입량 또한 현저히 적어 한국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네비올로 와인을 발견할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는 것 아닐까. 아이들와일드(IDLEWILD) 같이 잘 만든 와인을 맛본다면 흥미는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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