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인 척한 고냥이 Jul 25. 2022

포도 품종: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싱그러운 샐러리, 파릇파릇한 아스파라거스, 풋풋한 잔디를 연상시키는 아로마에 상큼한 시트러스 풍미와 영롱한 미네랄 뉘앙스. 이 매력적인 와인은 탁 트인 강변의 잔디밭이나 녹음이 우거진 공원으로 피크닉을 떠날 때 치즈, 스낵, 과일과 함께 바구니 한편에 담아 가기에 딱 알맞다. 봄기운을 듬뿍 담은 봄나물이나 신선한 샐러드가 차려진 주말 식탁에 곁들이기도 좋다. 시원하게 칠링 된 소비뇽 블랑 한 모금은 춘곤증으로 노곤한 몸에 감로수가 될 것이다. 여름용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소비뇽 블랑의 상큼하고 깔끔한 맛과 산뜻한 스타일은 그야말로 찌는 여름의 갈증 해소용으로 제격이다. 바야흐로 소비뇽 블랑의 계절이 오고 있다. 


캐릭터, 그리고 스타일

소비뇽 블랑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의 엄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과 소비뇽 블랑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선하고 가벼운 화이트 품종인 소비뇽 블랑과 강건하고 진한 레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사이에는 ‘소비뇽’이라는 이름 말고는 공통분모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뇽 블랑의 풋풋함과 때때로 드러나는 매콤함에서 그 와일드한 성격이 일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소비뇽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야생적’이라는 의미인 ‘소바쥬(Sauvage)’다. 그 어원처럼 특유의 개성적인 풍미를 직선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고 터프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소비뇽 블랑 와인은 산뜻하고 가볍기 때문에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종종 쉽게 받아들인다. 소비뇽 블랑의 풍미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구즈베리(gooseberry)’다. 그런데 구즈베리는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보니 그 풍미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풋풋한 잔디나 신선한 생 허브 등 녹색이 연상되는 식물들이나 새콤한 레몬, 라임 등 시트러스 풍미를 떠올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역이나 생산자에 따라 아스파라거스나 초본류 같은 녹색 식물의 향이 부각되기도 하며 복숭아 같은 핵과나 멜론 같은 가벼운 열대 과일 풍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화사한 향기와 생생한 산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 오크 숙성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프랑스 루아르(Loire)와 보르도(Bordeaux),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 생산하는 일부 프리미엄 와인 중에는 오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오크 숙성을 하면 소비뇽 블랑 특유의 신선한 풍미가 줄어드는 대신 구조감이 좋아지고 맛이 원만해지며 병입 숙성 후엔 꿀 뉘앙스가 매력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주요 생산국

1) 뉴질랜드: 뉴질랜드에 처음 소비뇽 블랑이 식재된 때는 1973년. 불과 5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제 소비뇽 블랑 하면 뉴질랜드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뉴질랜드 남섬 북부의 말보로(Marlborough) 지역 소비뇽 블랑은 대부분 스테인리스 발효조에서 발효하여 산미를 잘 살리면서도 과일 풍미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특히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관된 스타일과 높은 품질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큰 강점이다.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 킴 크로포드(Kim Crawford), 빌라 마리아(Villa Maria) 등 수많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많은 애호가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근래에는 매력적인 오크 숙성 소비뇽 블랑 또한 속속 등장하여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2) 프랑스: 사실 소비뇽 블랑의 종주국은 프랑스다. 그 이름을 레이블에 내세우지 않아서인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루아르 지역의 상세르(Sancerre)와 뿌이 퓌메(Pouilly-Fume)에서는 소비뇽 블랑 100%로 절제된 과일 풍미에 날카로운 산미와 영롱한 미네랄이 두드러지는 와인을 만든다. 앙리 부르주아(Henri Bourgeois)와 알퐁스 멜로(Alphonse Mellot), 파스칼 졸리베(Pascal Jolivet) 등이 대표적. 에드몽 바탕(Edmond Vatan)이나 故 디디에 다그노(Didier Dagneau) 같은 명인들은 뉴트럴 한 오크를 사용하여 밀도 높은 풍미 속에서 미묘하고 절제된 오크 힌트를 느낄 수 있는 와인을 생산한다. 보르도, 특히 엉트르 두 메르(Entre-Deux-Mers) 지역에서는 보통 세미용(Semillon)과 블렌딩 하여 드라이한 테이블 와인을 만든다. 그라브(Grave)와 페삭 레오냥(Pessac-Leognan) 지역은 그랑 크뤼급 샤토를 중심으로 새 오크를 사용하여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와인들은 매력적인 소비뇽 블랑이라기보다는 그저 훌륭한 화이트 와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도멘 드 슈발리에(Domaine de Chevalier)나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ateau Smith Haut Lafitte) 같은 뛰어난 생산자의 와인들은 10년 이상의 숙성도 기대할 수 있다. 이외에 소테른(Sauternes)의 달콤한 귀부 와인에도 신선함과 산미를 더하기 위해 보조적으로 소비뇽 블랑을 사용하며,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서는 다른 품종과 블렌딩 혹은 단독으로 가성비 좋은 데일리 와인을 생산한다. 


3) 미국·남아공·칠레·호주: 미국의 경우 푸메 블랑(Fume Blanc)이라고도 부르는 오크 터치가 도드라지는 캘리포니아 소비뇽 블랑이 유명하다. 다년간의 숙성 후엔 꿀과 너티한 뉘앙스를 풍기는 퓌메 블랑은 최근 과거에 비해 절제된 오크 힌트와 섬세한 터치를 지닌 와인으로 변화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비뇽 블랑은 생기 있는 과일 풍미와 날 선 산미, 깔끔한 미네랄을 겸비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프랑스의 중간자적 스타일이랄까. 칠레의 경우 서늘한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청량하면서도 과일 풍미를 잘 살린 질 좋은 소비뇽 블랑 와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미 한국 시장에도 제법 수입되고 있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저렴한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뉴질랜드의 이웃 호주 또한 애들레이드 힐스(Adelaide Hills) 등 남호주의 서늘한 지역을 중심으로 양질의 소비뇽 블랑을 생산하고 있다. 서쪽의 마가렛 리버(Margaret River)에서는 보르도와 같이 오크를 사용하여 크리미 한 풍미와 질감을 더한 소비뇽 블랑을 만든다.  


4)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소비뇽 블랑은 의외로 한국에 많이 소개되었으나 그 대중적 인기나 인지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뿐더러 그뤼너 펠틀리너(Gruner Veltliner)나 리슬링(Riesling) 등 다른 화이트 품종들에 비해 그 존재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맛보게 되면 그 품질에 놀라게 된다. 오스트리아 소비뇽 블랑의 중심지 슈타이어마크(Steiermark) 지역의 테멘트(Tement)나 사틀러호프(Sattlerhof) 같은 명가들은 강렬하고 미네랄이 풍부하며 구조감과 파워를 갖춘 소비뇽 블랑을 생산한다. 북동쪽 캄프탈(Kamptal)의 중심에 위치한 유르취치(Jurtschitsch Sonnhof)의 우아한 소비뇽 블랑 또한 꼭 한번 마셔 볼 만한 와인이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탈리아 북동부에서도 질 좋은 소비뇽 블랑이 나온다. 생동감 넘치는 화이트를 만드는 프리울리(Friuli) 지역은 소비뇽을 프리울라노(Friulano)나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품종의 블렌딩 파트너로 활용하거나 단독으로 사용하여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알토 아디제(Alto Adige) 또한 블렌딩 혹은 단독으로 쇼비뇽 와인을 만드는데, 알로이스 라게더(Alois Lageder), 티펜부르너(Tiefenbrunner) 등 명성 높은 생산자들의 와인을 중심으로 골라 볼 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부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