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망자

회상

by 윙글

'저것이 뭣이여?'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녀 십 수명이 버스 안에서 노랫소리에 맞춰 흥겨운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침울하거나 멍하니 앉아있는 망자들만 보다가 신나게 놀고 있는 망자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헛것을 보거나, 때로는 원한 가득한 망자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춤추고 노는 망자라니.

저승 버스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광경이었다.


"누구... 시죠?"

윤식의 곁에는 어느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아, 고생하십니다. 출장 정비사 김윤식이라고 합니다."

"아...! 새로 오셨다던 출장 정비사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남자는 좁은 어깨에 작은 키로 왜소한 몸집의 30대쯤 되어 보이는 차사였다.

덥수룩하게 긴 앞머리사이로 휘어진 눈매가 보이는데 딱 봐도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아, 지나가다 봉게 버스가 서 있길래 왔습니다. 이거 할라고 돌아다니고 있는디 안 불렀어도 고쳐드려야죠."


윤식은 정비사를 만난 차사가 당연히 반가워할 줄 알았다.

위기에 처한 버스를 고쳐주러 왔으니까.

허허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해줘야지, 생각했는데...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저희는... 고장 난 게 아닌데요."

"예?"

"고장 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세운 거예요. 달리는 버스에서 망자들이 하도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그래가지고..."

"뭔 망자가 춤추고 논다요? 그새 버스에서 친해졌대요?"

"아뇨. 저분들 단체로 관광버스에서 사고사 하신 분들이에요. 버스 안에서 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허이고... 그러믄 나 같으믄 춤은 쳐다도 안 볼 것인디..."

"그렇게요... 제 생각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어느 순간부터 흥얼거리시더니 단체로 노래를 부르고 일어나 춤까지 추는 바람에..."

"아니, 차사 양반이 조용히 하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블제 그러요?"

"저도 못하게 했죠. 주의도 주고 부탁도 드리고 화도 내봤는데... 안 됐어요. 전혀 제 말을 듣질 않아요."

젊은 차사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근다고 가만 놔두믄 쓴다요! 악을 써서라도 뭐라고 해야제!"

이야기를 듣던 윤식의 목소리가 되레 커진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버스를 세우고 이대로 지박령이 되든 말든, 조용히 있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협박하는 차사가 어디 있냐면서 싸움이 되가지고..."

"... 차사하고 망자가 싸웠다고요?"

"... 예.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심지어 찌그러진 버스도 그가 망자들과 싸우다 생긴 일이라고 한다.

자기가 휘두른 주먹에 버스가 그렇게 찌그러져 버릴 줄은 몰랐다며 그의 어깨가 한없이 처졌다.


"내가 버스 정비만 했던 사람이라, 찌그러진 거 복원까지는 못하고... 대신 점검이나 한번 해주고 갈라요."

"네. 감사합니다."

차사의 등을 두드려준 윤식은 헤드램프에 불을 밝히고 엔진룸을 훑어보았다.


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버스 밑도 살펴보려고 했으나 춤추는 망자 때문에 포기했다.

"근디... 저 사람들은 저승 가는 길에 뭣이 신난다고 저렇게 논다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저분들 말로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더 신나게 놀자고, 인생은 즐겨야지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으면 안 된대요."

무기력...?

윤식은 마지막 말이 가슴 속 어딘가를 쿡 찌르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전 마지막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년퇴직을 하고 한 달만 푹 쉬기로 마음먹었던 윤식은 그대로 저승버스를 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용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낚시마저도 단 한 번을 간 적이 없었다.

그저 시장에서 사 온 음식과 소주, 그것들을 방 안에 앉아 TV를 보며 마시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취해있는 시간이 더 늘어갔다.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이 말한 무기력한 삶이 바로 나의 노후였구나.


엔진룸 덮개를 닫으며 애써 찜찜한 마음도 닫아버렸다.

저 시끄러운 버스가 괜히 속만 시끄럽게 하는구나.

정비 버스로 돌아가려던 그는 얄미운 버스를 돌아보았다.


아까는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버스 밖에 나와 있는 조용한 승객들.

특히, 간이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중년의 운전사가 옆에서 손전등을 비춰주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뜨개질 완성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곧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만큼 더욱 캄캄한 새벽, 그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생산적인 모습은 저승 버스와 또 다른 의미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에게서 낚시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은 어째서일까?

윤식은 홀린 듯이 할머니의 곁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어르신, 아직 해도 안 떠갖고 잘 보이도 않은디, 뭣을 그렇게 만드신다요?"

"이거? 의자 카바 만들고 있제."

"의자 카바요?"

옆에 쌓아둔 작업물의 양은 그 수가 상당했다.

"혹시... 버스 의자 말씀이요?"

"그려."

"아니, 뭣 허러......"

뒷말을 삼킨 윤식 대신 할머니가 답했다.

"뭣 허긴 뭣해. 안에 들어가서 의자 꼬라지 좀 보시요. 어떻게 돼있는가! 이 뒤에 타는 구신들이 저것을 보므는 참말로 이쁘다 허것소."

반어법이 확실한 할머니의 말도 확인할 겸, 윤식은 버스 유리창을 들여다보았지만 의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구신나오게 만들어 놓믄 누가 저것을 타고 싶겄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윤식은 완성돼 있는 의자커버를 하나 들어보았다.

"오메! 어르신, 이거 갖다가 팔아야 쓰겄는디? 아따 어르신 솜씨 좋소이...!"

"......"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솜씨가 좋은 할머니는 윤식의 칭찬에 답이 없었다.


"어르신, 안 힘드시요? 너무 많이 만든 거 아니요? 인자 그냥 쉬시제..."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성실함에 윤식이 만류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죽어브러서 인자 관절도 안 아프구만 뭣이 힘들다요?"

"솔직히... 저승 가는 버스에 누가 의자 카바를 씌운다요...? 저렇게 제정신 아닌 놈들은 해줘밨자 좋은지 어쩐지도 모를 것인디..."

윤식은 속없는 망자들이 할머니의 고생 끝에 나오는 이 예쁘고 정성스러운 물건을 누린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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