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늦은 밤, 가족들이 전부 잠이 들고 나도 자야 하는데 잠자리에서 뒤척인 지가 한참이 지났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만화가 그려지고 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아니 사람 잠은 재워야 될 거 아냐! 얘 또 해골 된 거 안 보여? 여기서 살 더 빠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이성세포가 발을 구르며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있다.
그의 공격을 받고 있는 세포가 입을 연다.
"... 책임질 거야?라고 이성세포가 말했다."
이성세포의 말을 따라 한 그 세포는 이 상황을 읽어주기만 할 뿐, 멈추지는 않는다.
"이... 이이익!"
이성세포는 분해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다.
이성 세포, 감성 세포, 사랑 세포, 패션 세포, 명탐정 세포, 불안 세포, 본심이...
그리고 작가 세포까지.
주인공 유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세포들이 존재한다.
웹툰 원작 드라마인데 최소 5번쯤은 봤던 것 같다.
그 영향일까...?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에 나레이션 세포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떤 세포 하나가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대본을 읽어주듯이, 나레이션을 읊조리듯이 머릿속의 생각들을 읽어준다.
그 세포는 추상적인 느낌이나 단어가 아니라 완성형 문장으로 읽는다.
마치 받아 적으라는 듯이...
그래서 이름을 주었다.
'나레이션 세포'
문득, 계획하고 있던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 세포가 읽어줄 때는 신이 나서 메모를 한다.
그런데 그 문장을 받아 적는 속도가 느려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손가락이 머리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게 당연한 건가...
고지식한 나레이션 세포는 두 번 읽어주는 법이 없다.
그럼 포기...
글을 쓰기 전에도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흘러나왔었지만 대부분 흘려버렸다.
받아 적지도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고부터는 훨씬 심해졌다.
아예 나레이션 세포라는 자아를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
그만큼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세포가...
설거지를 하는데 문장을 읽어준다.
청소를 할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가장 큰 문제는 잠자려고 누우면 계속 읽어재낀다는 것이다.
멈추지를 않는다.
그 괴로움에 못 이긴 나는 자아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성세포와 감성세포, 나레이션 세포와 불안세포로...
쿠션을 다리에 끼었다가 이불을 끌어안았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잠깐씩 생각나는 것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받아 적다 적다 적다 새벽을 향해가는 그때,
"이제 그만하라고!"
이성세포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깡!
머리를 맞은 나레이션 세포가 쓰러진다.
어?
정말 생각이 멈췄다.
이렇게 상상한 것만으로 생각이 멈추다니...
입꼬리를 살짝 올린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땅 밑에 있는 불안세포가 맨홀 뚜껑을 열며 나오려 한다.(드라마에서는 본심세포가 땅속에 산다.)
덜거덕, 덜거덕
"야잇!"
이성세포가 다다다 달려가 뚜껑을 발로 쿵쿵 밟는다.
쿵! 쿵! 쿵!
"제발! 나오지! 말라고!! 내일 아침에 일찍 검진받으러 가야 한다고!!!"
라고 나레이션 세포가 읽고 내 손가락이 기록하느라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