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일 한다는 건

프리라서 햄볶아요

by 윙글

9월 18일


2년 전, 맞벌이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됐다.

계획했던 수술과 계획에 없던 수술후유증으로 인해...


처음 수술 후유증으로 퇴사를 할 때는 더 이상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진다는 걱정에 막막했다.

물론 돈이 중요하냐, 건강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같았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라도 가끔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하는 사업의 디자인을 도와주는 것을 시작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 연이 닿았던 분들이 주는 일 한 두 가지까지.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집에서 일을 하니 출퇴근에 쏟을 체력과 시간,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점은 완전 꿀이다.

현관에서 아이를 보내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 문턱만 넘으면 그대로 출근이다.

문턱 넘으면 회사! 문턱 넘으면 집!


물론 단점도 있는데 운동부족, 활동량 부족이다.

활동 반경이 좁으니 걸을 일이 없다.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걷기였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그리고 더 큰 단점은 매월 통장에 찍히던 월급의 부재이다.

그 부재만큼 남편의 어깨에는 부담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무심하게 괜찮다고 말 하지만...

남편에게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 모든 가장들의 중압감이 언뜻 보일 때면 마음이 아린다.



그. 러. 나.


마음이 아릴 때는 아리더라도...

업무 마인드로 돌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편은 성격도, 일하는 스타일도, 말하는 방식도 완벽하게 나와 반대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사생활을 나누는 부부에서 갑자기 업무를 함께 하는 동료가 되다 보니 초반에는 대혼란이 있었다.

신혼시절에 겪었던 대혼란을 또 겪는 기분이랄까...? 으악...


사장님이나 직원들이 주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서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직장 스트레스와 완전 다른 영역이었다.


직장에서야 뭔 말을 듣던 내 가족이 아니니 인성쓰레기여도 큰 상관이 없고, 말을 개차반으로 해도 뒤에서 험담 좀 하고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조금만 삐딱하게 말을 해도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있는 대화의 폭이 훨씬 좁았다.


일을 하다 서운한 일이 생겨도 어디다 험담을 할 수도 없고...

감정 기복이 하늘과 지하세계를 오가는 나는 참지 못하고 남편과 부딪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동안 직장에서 팀장으로 일하며 내가 계획한 대로 이끌어가고 나름의 방식과 자존심이 생긴 상태인데,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 남편은 오죽할까...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이 굳어진 상태에서 손발을 맞추다 보니 주도권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결과물이 왜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하려고 하면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다'라고 하고, 설명 없이 결과물만 보여주면 왜 이렇게는 수정 안 해봤냐고 하고...

바쁜 와중에 일일이 설명 들을 정신도 없었겠지만, 내 설명을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경험상 일반인은 왜 결과물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모두 보여주어야만 이해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일반인이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래서 설명을 하려고 한 거였는데...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사장님은 설명하지 않아도 결과물을 보고 대강 가늠을 해 주었다.

결과물이 왜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남편과 일하면서 그게 감사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싸움도 여러 번 있었는데, 둘 다 서로의 말을 끊는 것에 그렇게나 예민했다.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잖아."

중저음으로 내리누르듯 뱉어내는 남편의 그 말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작업자가 훑어보고 질문하는 게 효율적인 거 아니야?"

다다다 따지는 나도 지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똑같은 문제로 또 으르렁거리고...

그렇게 몇 번의 싸움을 반복을 하다 보니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같이 잘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서로 상처만 주는 건 아닌가...

이래서 부부는 같이 일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배고픈 연기자가 연기를 잘한다고 했던가!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싸워도 또 같이 일을 했다.


한 달, 두 달, 1년... 2년.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딪히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배고픔과 시간을 이길 것은 없나 보다.

우리는 이제 거의 부딪히지 않고 손발이 잘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평화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남편의 성격이 분명 한몫을 했다.

남편은 화가 나도 그것을 그때그때 모두 폭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남자다.


내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며 화를 내다가 바닥을 뚫고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도 그냥 지상 위에 두 다리를 딛고 서서 흐뭇한 얼굴로 나를 기다려 준다.

그럼 또 나는 여기저기 왔다 갔다 울고 불고 난리 치다가,

"어? 그런 거였어? 얘기를 하지 그랬어!"

하며 남편에게 달려간다.


그러면 늘 남편은

"얘기했어. 또 잊어버렸구나?"

하며 쓰담쓰담해 주고 넘어간다.

그가 언제까지 이렇게 받아주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변덕을 잘 받아주고 있다.


물론, 이런 사람이 돌아서면 무섭다는 것을 바보가 아닌 이상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적당히 하자...라고 나를 타일러 본다.


여기서 결론은,

부부가 함께 일을 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장점: 불만을 다 풀 수 있다.

단점: 불만을 다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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