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평안을 위해 제사를 받아들였다

by 윙글

9월 26일


일주일 뒤면 추석연휴가 시작이다.

언제부터인가 연휴가 시작되면 공항에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뉴스가 당연하다는 듯 나온다.

다들 어디로 그렇게들 떠나는 것일까?

좋겠다...


연휴 동안 양쪽 어머님과 형제들을 언제 만날지 남편과 오늘 이야기를 나눴다.

긴 연휴인데 일 때문에 여행계획도 잡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명절 후반에 연휴가 있는 좋은 기회는 드문데...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도 명절연휴에 여행을 가는 건 꿈도 못 꿔봤다.

당연히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내 또래와 다른 것은 시댁이 아닌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부담이었고 언쟁이 오고 갔다.

나이도 어린 내가 제사상을 차리고 차례를 지내고...

이제 막 결혼 생활에 적응했는데, 무언가 또 얹어진다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내가 발을 담근 현실은 이미 그렇게 정해져 버렸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시부모님은 내가 남편을 만나기도 전에 이혼하셨고, 시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렇게 아버님이 모시던 제사가 우리에게 넘어오면서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의 제사까지 우리에게 넘어왔다.


남편은 장손이다.

작은아버지들은 장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사를 가져가지 않았고 당신들의 부모님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까지 한꺼번에 우리에게 넘겼다.

어차피 이제 우리 부부가 시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하고, 장손이 결혼했으니 제사를 가져가라는 말씀일 것이다.

대신 제사비용을 모아 보내주셨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그때의 나는 그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제사를, 차례를... 피할 수는 없는 건가?

내 나름대로 거부의 몸부림을 쳐보기는 했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사람들이 왜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지 모르는 건가...?

그 변화를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게 해야 의무를 다 했다고 여겨지는 것인가?

요즘은 절에 모신다는 집도 많던데 그런 선택지도 없는 것인가?


가족이 함께 모여 간단히 밥을 먹고 부모님의 산소나 추모관을 둘러보고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하면 안 되는 건가?

잘 먹지도 않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제사가 끝나면 냉동실에 쌓아놨다가 결국 일부는 버려지는 악순환을 왜 반복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살아야 하며, 언제까지 한꺼번에 그 많은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남들보다 몇십 년은 이른 나이에 왜 벌써 내가 제사를 주관해야 하는지, 너무 부담스러웠다.

내 또래의 여자들은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지, 본인이 주관해서 지낸다는 경우는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어떤 논리를 가져와도 움직이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고 소리를 치지도 않지만 본인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큰아들의 큰아들로 태어난 남편은 수많은 제사를 챙기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고,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동생들을 감싸며 책임감으로 꽉꽉 채워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제사가 넘어왔으니...

나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과연 그때 내가, 나의 생각을 끝까지 남편에게 관철시키려고 들었다면 우리는 지금 한집에 살고 있을까?

어떤 것도 장담은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더 솔직히는 반은 포기, 반은 기다림이었다.

부부의 생각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겠구나...

다르면 다른대로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어차피 할 일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은 제사를 지냄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고로 나는 남편의 평안을 위해 이것을 받아들이자.


남편도 무조건 밀어붙이지만은 않았다.

몇 가지 음식은 주문하고 몇 가지 음식은 집에서 만들자.

내가 도와주겠다.


나의 포기와 남편의 배려로 우리 집의 평화는 지켜졌다.

이제는 당연하게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아이들과 절을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도가 바위를 깎아내듯 남편의 귀에 설득을 흘려 넣어 음식도 많이 간소화시켰다.

심지어 이제는 '지방'을 내가 쓰고 있다.

내가 쓴 한자가 가지런하다고 남편이 내게 펜을 넘겼다(한글은 악필인데...).


우리는 이번 명절에도 차례상을 차릴 예정이다.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


아버님, 할아버님, 할머님!

며느리 한자 이쁘게 잘 쓰죠?

부족한 며느리지만 이 사람과 사랑하고 이해하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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