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초저녁, 화장대 앞에 서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 둘째 아이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헙!"
장난이 성공해 뿌듯하게 웃는 나에게 아이가 말했다.
"나 방금 소리 지를 뻔했어 엄마! 지금 소리 질렀으면 다른 집에서 비명소리 듣고 큰일 난 줄 알았을 거야!"
"어, 미안..."
정말 철없는 엄마구나...
이 밤중에 소리 지르면 안 되지... 그래...
그런데...
비명?
"음... 근데 뭔가 큰일 났을 때의 비명이랑 장난쳐서 소리 지르는 거랑은 달라. 그러니까 네가 소리 질렀어도 아마 큰일 아닌 줄 다들 알았을 거야."
"뭐가 다른데...?"
"음... 그건......"
아이들에게는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넘어갔지만, '비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떠오르는 그 일을 한 번은 털어놓고 싶다.
(여기서부터 공포, 스릴러 싫어하시는 분은 읽지 마세요)
14년 전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전에 살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저녁이었고,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와계셨고, 남편은 집에 없었다.
아직 둘째는 태어나기 전이었다. 아마도 첫째가 기어 다닐 때 즈음...
빨래를 개키고 있는데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ㅡ악!"
찢어질듯한 그 비명 소리는 내가 평생 들어온 그 어떤 비명과도 달랐다.
'뭐지?'
느낌이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진 공포 때문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몇십 분쯤 흘렀을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계십니까?"
심장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올라왔다.(그때 우리 집은 10층)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그대로 굳었다.
쿵쿵쿵!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경찰? 경찰이라고? 네가 경찰인지 어떻게 확신하는데?'
공포에 잠식된 나는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는 낯선 사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 직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들었던 비명소리가 예사소리가 아니구나.
"경찰입니다!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나는 고민했다.
아무도 없는 척을 하고 있을 것인가... 대꾸를 할 것인가...
문을 열었다가 혹시나 저 사람이 누군가를 해치고 온 범인이고, 증인을 없애려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라면?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집 안에는 아기도 있고, 엄마도 계신다.
절대 위험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도 없는 척하는 것도 어려웠다.
자꾸 문을 두드리는 목소리에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아이가 소리를 내면 어차피 들킨다.
경찰 일 수도 있잖아...?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결국 떠밀리듯 대답했다.
"무... 무서워서 문을 못 열겠어요. 그냥 이대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현관문은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큰 소리로 답했다.
"...... 혹시, 조금 전에 창밖으로 뭐 보신 것 없으십니까?"
아...!
맞구나. 그 비명소리... 무슨 일이 있었구나...!
"아뇨. 아무것도 못 보고 비명소리만 들었어요."
"... 알겠습니다."
잠시 후, 현관문의 동그란 구멍으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걸쇠를 걸어놓고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봤다.
옆집 사람들과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집은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다 나와있었다.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유리창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 몸에서 저렇게 많은 양의 피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흥건한 핏자국과 하얀색 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실루엣.
십 수 명의 경찰과 그 주변에 둘러진 폴리스라인.
우리 집 베란다 아래는 사건현장이 되어있었다.
충격적인 광경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건 그것대로 또 충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교회에서 나오던 중년 여자를 노린 묻지 마 살인이었다.
여자는 목이 여러 차례 찔리고 베어 많은 피를 흘리고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내가 들은 그 비명소리는...
한 생명이 살해당하기 직전의 마지막 소리였다.
사건 당시를 목격한 증인을 찾지 못해 범인을 찾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얼마 후 이사를 했다.
비명소리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이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극 추진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나가 볼 것을...
범인을 더 빨리 잡을 수 있게 목격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가 보지 않기를 잘했구나...
그 상황을 봤다면 평생 잊을 수 없었을 텐데...
내가 그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구나.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도 가끔 그 비명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생각나고, 길에서 장난치며 소리치는 여자애들의 비명소리를 들을 때도 떠오른다.
잊을 수가 없다.